(4)제주도에서 아열대 바다 생물종 연구하는 고준철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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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다 생태계는 지금 소리 없는 전쟁”

2015년 여름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제주도 해수욕장에서 작은 문어를 구경하던 중 손가락을 물린 사람이었다. 그는 며칠이 지나도 손뼈가 시릴 정도의 고통과 어지러움을 느낀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연구소는 그에게 “파란선문어에 물린 것 같으니 빨리 독성 전문의를 찾아가라”고 조언했다. 덕분에 사건이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수과원의 젊은 과학자들](4)제주도에서 아열대 바다 생물종 연구하는 고준철 연구사

파란선문어는 2012년 잠수조사 중 발견됐다. 연구소의 고준철 연구사(49)는 “왜 모양이 화려하게 생겼지? 싶어 온라인으로 찾아보니 호주에 있는 맹독성 문어였다”고 말했다. 파란색 점들이 선처럼 이어져 있는 이 문어는 5~10㎝ 정도의 크기지만, 복어류가 가진 독(테트로도톡신)을 지니고 있어 살짝만 물려도 위험하다. 파란선문어는 2012년 이후 해마다 제주 바다에서 발견되고 있다.

파란선문어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제주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생물들이 제주 바다에 나타나 살고 있다. 원래 아열대 바다에 살던 생물들이다. 고 연구사는 이런 생물들이 언제·얼마나 유입됐는지, 이런 생물의 특성은 무엇인지를 조사한다. 제주 바다에 사는 아열대 생물을 조사하는 기관은 제주수산연구소가 유일하다.

지난 10년간 제주 바다를 조사해온 고 연구사는 “새로운 생물들의 유입으로 제주 바다에서는 지금 소리 없는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며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난 5월 2일 제주도 제주시에 있는 연구소에서 고 연구사를 만났다.

-한국에서 아열대 바다에 대한 연구는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됐나.

1990년대 초부터 다이버들과 어민들 사이에서 못 보던 물고기들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눈으로 보일 정도면 그 전부터 아열대화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이런 이야기가 언론 등을 통해 더 많이 알려지면서 제주 바다 생태계 변화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해양수산부에서 기후변화 대응지침을 만들어서 예산이 생겼고, 2012년부터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모니터링은 어떻게 진행되나.

“우리 팀에 나를 포함해 총 6명의 연구원이 있다. 2, 5, 8, 11월에 제주도 동서남북에서 분기별 조사를 한다. 배를 타고 나가 그물을 걸어두고 어떤 어류들이 잡히는지 본다. 잡은 물고기들을 연구소에 가져와 종별로 분류하고 무게는 어떤지, 무얼 먹고사는지, 산란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살펴본다. 처음 보는 어류라면 원래 어디에 서식하는지, 이름은 무엇인지부터 확인한다. 어류뿐 아니라 해조류, 무척추동물을 보기 위해서 잠수조사도 한다. 이렇게 해서 어류, 무척추동물, 해조류 등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데이터를 쌓아나간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주 바다의 변화를 진단하고 관리방안을 만들어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에 건의한다.”

지난 2018년 9월 제주 북촌 앞바다에서 제주수산연구소 자원변동실 연구원들과 어민이 분석작업에 쓸 아열대성 어류를 낚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지난 2018년 9월 제주 북촌 앞바다에서 제주수산연구소 자원변동실 연구원들과 어민이 분석작업에 쓸 아열대성 어류를 낚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이전에는 없던 연구 분야다. 연구를 시작할 때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기후변화라는 현상 자체가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바다 아열대화에 대한 기준도 없었다. ‘피시베이스’라는 세계적인 사이트에 등록된 정보를 참고한다. 현장에서 처음 보는 물고기가 잡히면 피시베이스에서 어느 해역에 사는지를 확인한 다음 아열대 어종인지 아닌지 분류하는 식이다. 일본 오키나와에 가서 직접 확인도 했다. 오키나와는 열대 해역이기 때문에 우리 바다와는 다른 생물들이 산다. 앞으로 우리 바다 생태계가 어떻게 변할 수 있겠다는 걸 직접 가서 본 거다. 파랑돔, 샛별돔, 흰동가리(니모) 같은 애들이 오키나와에 살더라. 지금 제주 바다에도 이런 애들이 산다. 그만큼 물이 따뜻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아열대 생물이 많이 늘었나.

“현재까지 확인된 아열대성 어류는 83종이다. 새로운 종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체 어류 대비 아열대성 어류가 차지하는 비율은 48~52%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2013년도가 아열대성 어류 비율이 53%로 가장 높았던 해다. 문제는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파란선문어, 코브라과 바다뱀, 작은상자해파리 등 독성이 있는 아열대 생물들이 들어오고 있는 점이다. 못 보던 생물들이기 때문에 어떤 독을 가지고 있는지, 이동 경로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수과원에서 계속 연구 중이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상어가 오기도 한다고 들었다.

“우리 바다에도 원래 상어가 살고 있다. 최근 몇년 해수욕장에 나타난 상어들은 먹이를 찾으러 얕은 바다에 잠시 왔다가 해수욕장까지 들어간 경우로 보인다. 따뜻한 바다에 사는 상어 종류가 더 많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상어가 등장하는 햇수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상어는 추우면 절대로 오지 않는다. 상어가 오면 물고기가 다 도망가기 때문에 어민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제주도 제주시 북촌 앞바다에서 제주수산연구소 직원들이 채집한 아열대물고기들 / 이준헌 기자

제주도 제주시 북촌 앞바다에서 제주수산연구소 직원들이 채집한 아열대물고기들 / 이준헌 기자

-잠수조사를 통해 확인한 제주 바다의 변화는 무엇인가.

“잠수조사에서는 해조류, 무척추동물 등을 확인한다. 아열대 생물 지표 중 하나가 그물코돌산호와 빛단풍돌산호다. 최근 이런 애들이 빠른 속도로 제주도 전 연안에 퍼지고 있다. 1990년도 초반에는 일정 지역에서만 보였는데 지금은 제주 전 연안에서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물코돌산호가 암반 위를 덮는 방식으로 자란다는 점이다. 산호가 암반을 덮으면 원래 거기에 살던 작은 생물들이 죽거나 도망간다. 감태나 미역, 모자반 등 해조류도 암반에 착상을 못 한다. 오키나와 같은 아열대 바다에 해조류가 거의 없는 이유다.”

-해조류가 사라진다는 기사는 오래전부터 조금씩 봤던 것 같다.

“연구소가 연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제주도의 골프장이나 공장 등 육상에 있는 오염물질이 바다로 내려가면서 갯녹음(연안 암반 지역에서 해조류가 사라지고 흰색의 석회 조류가 달라붙어 암반 지역이 흰색으로 변하는 것) 현상이 나타났다. 그런 와중에 수온이 높아지니까 더 빨리 해조류가 줄어든다. 다시마나 미역 같은 갈조류, 파래 같은 녹조류는 높은 수온에서는 살지 못한다.”

-어민이나 해녀 일에도 변화가 클 것 같다.

“새로운 어종이 들어오고 개체수도 많아지니까 어민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새롭게 나타난 어종을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수과원에서 하고 있다. 해녀들 상황은 다르다. 해조류가 줄어드니까 이런 것을 먹고사는 전복이나 오분자기(떡조개), 소라 등도 자연히 줄어든다. 1980년대에 비해 전복, 소라류의 생산량은 60% 감소했다. 1980년대를 100으로 보면 지금 40밖에 없다. 반면 수온이 높아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생물 중에서 해녀가 잡아서 이용할 수 있는 건 아직 없다. 그렇다고 해녀들의 일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10년 뒤에는 대왕조개 같은 애들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고.”

-앞으로 제주 바다는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나.

“지금 제주 바다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종류의 생물이 산다. 당연히 생태계가 더 복잡해졌다. 인간 생활에 사용할 수 있느냐와는 별개로, 종이 다양해졌다는 건 생태계에 좋은 징조다. 10년 정도 조사를 하면서 느낀 건 아직까지는 단정지어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확한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0년, 20년 더 지켜봐야 한다.”

-수온이 높아졌다는 건 많이 알려졌지만, 바닷속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눈에 안 보여서 그렇다. 체감을 빨리 못 한다. 지금 바닷속에서는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 환경·과학적인 면을 떠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제주 바다에 사는 생물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한다. 특히 독이 있거나 먹어서는 안 되는 생물을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어민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연구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인력과 예산이다. 수산 쪽 기후변화 관련한 연구는 사람이 너무 적다. 예산도 10년째 1년에 1억원이다. 데이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는데 대중적인 관심이 많지 않아서인지 연구 환경이 열악하다. 6명이 제주 바다 아열대 생물을 조사하고 있다.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만큼 더 많은 인력, 예산, 연구가 필요하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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