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유럽팀 잇달아 격파한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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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선수들 조금만 더 관리해준다면”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와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 동남아시아 최정상을 가리는 스즈키컵 결승에서 만난다면 한국인은 어느 나라를 응원해야 할까? 이런 즐거운 상상이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해 19세 이하 팀을 이끌고 간 유럽원정에서 유럽팀을 잇달아 격파하면서 인도네시아 축구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해외에서 타국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신 감독의 한국축구에 대한 시각은 더 객관화됐고 날카로워졌다. ‘김재현의 생각 있는 스타톡’은 잠시 귀국한 신 감독을 만나 그 얘기를 들어봤다.

[김재현의 생각있는 스타톡](3) 유럽팀 잇달아 격파한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먼저 인도네시아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부임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성과가 상당하다고 들었다.

“인도네시아는 FIFA 랭킹 173위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가서 선수들을 선발해야 했기 때문에 현지에 있는 로컬 코치들에게 선수들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약 60명을 모았고, 자카르타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치카랑’이라는 곳에 가서 5일 동안 합숙했다. 첫 경기를 해보니 의욕이 넘쳐 20분 동안은 축구를 너무 잘하더라. 그래서 ‘아, 희망이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머지 시간은 걸어다니더라. 20분만 축구를 하고 나머지는 힘이 든다며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확 들었다. 그때 ‘멘탈과 체력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발한 30명의 선수를 데리고 바로 태국의 치앙마이로 전지훈련을 갔다. 하루에 3번씩 훈련을 진행하니 처음에는 선수들이 너무나 힘들어했다. 하지만 열흘, 보름이 지나자 실력이 느는 것을 본인들이 보고 느끼니 스스로 훈련을 하더라.”

-한국 축구선수들은 근성과 투혼이 있는데.

“그동안 인도네시아 선수들은 운동하다가 숨이 차면 쉬었다. 본인 체력의 70% 정도가 되면 멈췄기 때문에 ‘데드포인트’를 치고 올라가지 못했다. 100%라는 것이 없었다. 월드컵 예선전을 5전 5패 하는 동안 다리에 쥐가 난 선수가 단 1명도 없었다. 보통 2~3명은 교체가 되기 마련인데, 그런 경우가 전혀 없었다. 여기서 문제점을 파악하게 됐다. 선수 개인 기량은 좋은데 멘탈이 최악이었다. 그래서 선수들의 멘탈을 건드려주었더니 자연적으로 체력이 좋아지고 실력이 향상됐다. 또 잔기술은 뛰어났지만, 축구에 정말 필요한 코어운동과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번도 듣지도, 해보지 않았다더라. 그래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운동을 진행했다. 점점 힘이 붙기 시작했고, 스스로가 변화를 느끼니 개인운동 자체를 몰랐던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 전지훈련에서 현지 팀들과 경기도 했다. 달라진 점은?

“인도네시아에서 인터넷TV로 모든 경기를 생중계했다. 5승 3무 3패를 했는데, 선수들과 팬들 모두 깜짝 놀랐다. 우리가 유럽을 가서 이러한 결과를 낼 줄 아무도 몰랐다.”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의 전지훈련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2002년 히딩크 감독이 왔을 때, 외국팀과 경기를 하면 져서 ‘오대영 감독’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당시 히딩크 감독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실력 차가 있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외국에 나가서 실력이 좋은 해외선수들과 겨루어봐야 함을 느꼈던 것이다. 나도 이러한 부분을 많이 활용한다. 그래서 체육부 장관급 관계자에게 이야기했다. ‘해야 한다. 처음에는 10 대 0으로 질 수 있다. 하지만 점차 점수 격차가 줄어들 것이고, 이길 수도 있다. 이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로드맵’이다.”

[김재현의 생각있는 스타톡](3) 유럽팀 잇달아 격파한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수 시절부터 은퇴 후 지도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나.

“그렇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축구 지도자의 길을 생각했다. 내가 축구를 하면서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꿈은 자주 바뀌더라. 경북 영덕에서 축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축구로 대학교도 가고 싶었고, 고등학생 때는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다. 은퇴한 후에는 히딩크·박종환 감독 같은 지도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그렇게 됐다.”

-지도자로서 느낀 세계 무대와 한국축구의 격차는 어떤가.

“내가 20세 월드컵 감독, 23세 올림픽 감독, 성인 A대표팀 감독을 모두 다 해봤다. 사실 인프라에서 큰 차이를 느끼진 못했다. 2002 한일월드컵축구를 기점으로 한국축구 인프라가 많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면서 과학적 시스템도 갖춰졌다. 우리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건 신체적 조건이다.

특히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의 유소년 시스템이다. 상급학교로 진학하려면 성적이 필요한데, 그 성적을 내기 위한 축구를 한다. 현재 한국축구는 17세까지는 좋은 성적을 내지만 19세 이후에 성적이 좋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적을 내기 위해 조직적인 축구를 가르치지만, 유럽에서는 스킬(기술)을 가르쳐 개인 기량을 높인다. 이게 성인 무대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이 부분이 고쳐지면 선진 축구와의 벽을 좁힐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 <슛 포러브>에서 초등학생 유망주들을 데리고 영국까지 갔다 왔다. 유망주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깜짝 놀랐다. 유소년 선수들의 실력이 아주 좋아졌다. 기술 등 여러 면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유스팀에 뒤지지 않았다. 그런 친구들을 체계적으로 잘 키워야 하는데 중·고등학교를 거친 후에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좋은 축구 DNA를 가진 친구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육성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지도자가 된 후에 선수 때와 달리 축구에 대해 생각이 달라진 게 있다면?

“많이 달라졌다. 선수생활을 할 때는 호랑이 선생 같은 감독에게 축구를 배웠다. 그런 분들에게 배웠기 때문에, 나도 지도자가 되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주에서 퀸즐랜드 로어FC 코치생활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벤치에서 우리팀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을 때다. 우리팀 왼쪽 풀백이 반대로 공을 넘겼으면 일 대 일 찬스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선수가 킥을 잘못해 왼발의 아웃사이드를 맞고 공이 힘없이 나가버렸다. 만약 나라면 욕이란 욕은 다 했을 것이다(웃음). 그런데 감독이 오히려 ‘That’s good idea!’라면서 그 선수를 격려해줬다. 처음에는 속으로 ‘이러니까 축구를 못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개월, 6개월이 지나고 나니 그 선수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그때 ‘축구를 이렇게 가르쳐야 하는구나’라고 생각이 확 바뀌었다. 그 후 한국에서 선수들과의 관계를 수평으로 맞추려고 노력했고, 감독 첫해부터 성적을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선수들이랑 장난을 많이 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스물세 살의 선수가 불만이 있으면, 내가 스물세 살일 때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선수가 스물다섯 살이라면 스물다섯 살로, 서른세 살이라면 서른세 살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본다. 나도 선수로서 그 나이를 경험해봤기 때문에, 왜 불만이 있는지 그 선수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선수들이 불만을 가졌다고 혼내는 것보다, 그렇게 한번 생각해보면 선수들을 이해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

-감독을 하려면 축구 외적으로 고민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사람은 스킨십이 중요하다. 사실 베스트11 선수들은 내가 출전시켜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를 좋아한다. 하지만 출전을 못 하는 선수들은 내가 잘해줘도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선수들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늘 고민한다. 나는 그런 선수들에게 일부러 더 스킨십을 한다. 워밍업이나 훈련을 할 때 다가가서 발로 차기도 하고, 귀도 당기면서 장난을 친다. 그러면 처음에는 ‘출전도 안 시켜주면서 왜 자꾸 나한테 장난치나’ 하며 귀찮아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친해지고, 경기를 뛰지는 못하지만 감독이 자기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자기 실력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80% 정도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100%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 20%의 차이를 스스로는 느끼지 못한다. 그걸 깨닫게 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지도자 이전에 아버지로서, 어린 선수들이 축구를 어떻게 배웠으면 좋겠나?

“시스템적으로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성적 위주다 보니, 어렸을 때 잘하는 선수들이 혹사를 당한다. 나중에 진짜로 꿈을 펼쳐야 할 때, 이미 수술을 두세 번씩 받은 상태다. 좋은 재목들이 너무 일찍 희생돼 다 사라진다. 어릴 때 잘할수록 출전 시간을 제한하면서 보호해야 하는데, 잘하는 선수가 뛰지 않고 팀이 성적을 내지 못하면 다른 선수들이 진학을 못 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이 너무 많다. 중·고등학생 시절에 한두 번 수술을 받아버리면 선수 생명이 끝난다. 이런 문제가 비일비재한데, 이게 고쳐지면 좋을 것 같다. 다행히 학원 축구가 클럽 시스템으로 바뀌어서 문화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

-현재 ‘최고’인 손흥민 선수를 지켜봤을 때, 다른 선수들과 자기 관리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나?

“손흥민은 톱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장에 나오면 가장 앞에 서서 솔선수범한다. 꾀를 부리지도 않고, ‘내가 손흥민’이라며 거들먹거리는 것이 단 1%도 없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톱클래스 위치를 유지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손흥민이 골을 잘 넣는 ‘손흥민 존’이라고 있다. 손흥민은 경기 훈련이 끝나면 최소 20분 정도는 그 자리에서 혼자 훈련을 한다. 정말 무단한 노력을 한다.”

-인도네시아팀 축구감독으로 신 감독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지금은 몸담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최선을 다하는 멋진 감독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베트남에 계신 박항서 감독과 함께 나도 응원을 많이 해주면 고맙겠다. 국위선양을 열심히 하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 한국축구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 아울러 대한민국 축구 ‘벤투호’가 잘될 수 있게끔 많은 응원 부탁한다. 파이팅!”

<글·진행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 사진·동영상 청년서포터스 ‘젊은 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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