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프로배구 돌풍의 주역 이상렬 KB손보 감독 “한국배구 발전 위해 2군제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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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로배구 V리그 최대 이슈는 KB손해보험 스타즈(KB손보)의 돌풍이다. 만년 하위권으로 평가받던 KB손보는 개막 이후 선두권을 질주하고 있다. KB손보는 그간 약체로 분류됐던 팀이다. 지난 2005년 프로배구 리그가 출범한 이래 정규리그 및 챔피언결정전에서 단 한차례도 우승하지 못했다. 심지어 지난 15시즌 중 승률 5할을 기록한 것도 세 번뿐이다.

[김재현의 생각있는 스타톡](2)프로배구 돌풍의 주역 이상렬 KB손보 감독 “한국배구 발전 위해 2군제도 필요”

KB손보 돌풍의 중심에는 19세 괴물용병 케이타 선수가 있다. 말리 특급으로도 불리는 케이타는 현재 득점 1위에 올라 있다. 케이타 돌풍은, 그러나 프로배구에 또 다른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이 과도하게 높아지면서 한국배구의 전체 경쟁력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야구·축구·농구 등 모든 프로 스포츠 분야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돌풍의 주역인 이상렬 KB손보 감독은 어떻게 생각할까. 직접 만나 의견을 들어봤다.

-KB손보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 팀이 최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케이타 선수의 역할이 큰 것 같다. 프로배구는 외국인 선수를 트라이아웃(공개선발)을 통해 스카우트한다. 올해는 비대면으로 선발했는데 선수선발에 어려움은 없었나?

“사실 직접 보고 뽑아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영상이라는 게 선수들이 잘했던 모습만 편집해서 보낸 거라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화면으로 보니 이 선수도 잘하는 것 같고 저 선수도 잘하는 것 같더라. 사실 펠리페를 많이 봤다. 그러다가 벌떡벌떡 뛰는 친구(케이타)가 하나 있었다. 나이도 어리고, 키도 2m6이고, 점프력이 좋으니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 선수의 포지션이 라이트가 아니라 레프트이더라. 그래서 고민을 좀 했다. 결정하고 막상 뽑으러 갔더니 이 선수를 주목하는 팀이 몇 있었다. 특히 한국전력이 1순위가 될 확률이 높았다. 우리가 운이 좋아서 1순위가 되는 바람에 데려올 수 있었다.”

-케이타는 어떤 선수인가?

“나하고 비슷한 스타일이다. 공만 뜨면 때리는 게 인상적이어서 ‘저 친구 볼 때리는 욕심이 있다. 열아홉 살인데 두려움이 없다. 긴장도 안 하고 앞으로 굉장히 기대되는 선수다’라고 생각했다. 최근 다른 나라에서도 케이타가 관심을 받고 있다. ‘잘못하면 다른 데 가겠다’라는 생각에 고민을 좀 하고 있다(웃음).”

-케이타는 어린 선수라 경륜이 부족할 수 있다.

“KB손보 감독 제의를 받았을 때 ‘계약기간만 마치고 나오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큰딸이 2000년생, 둘째가 2002년생인데 케이타는 2001년생으로 그 또래다. 내 딸들이 이런 상황이면 ‘내가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제가 선수들한테 다짐한 게 있다. ‘화를 내지 않겠다’다. 윽박지르면 더 긴장을 하기 때문에 가급적 다독이며 하려고 한다. 시합할 때 순간순간 화가 날 때가 있지만 속으로는 ‘화내지 말자’를 주문 외우듯이 계속 읊는다.”

-대한항공 산틸리 감독이 최근 인터뷰에서 외국인 선수를 늘리면 한국배구가 발전한다고 했다. 리그 수준 향상을 위해 용병을 늘리는 게 답인가?

“산틸리 감독은 이탈리아 출신이다. 이탈리아는 배구 수준이 높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가 와도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배구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 프로팀도 7개밖에 안 되기 때문에 전체 선수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의 비율도 높다. 산틸리 감독의 이야기가 사실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양면성이 있다. 외국인 선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일단 팀이 많아야 한다. 7개팀이 2군을 만들면 14개팀으로 확대된다. 그러면 선수와 지도자, 심판 등 배구 관련 종사자 수가 늘어나 팀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한국배구 발전을 위해서는 2군제도가 필요하다. 그게 가장 절박하다.”

[김재현의 생각있는 스타톡](2)프로배구 돌풍의 주역 이상렬 KB손보 감독 “한국배구 발전 위해 2군제도 필요”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보자. 선수 시절 ‘코트의 야생마’라 불린 최고의 스타였다. 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서울 연희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입학과 함께 육상선수를 했다. 200m와 400m 계주가 주종목이었다. 4학년 때 몸이 약해 병원에 몇달 입원했는데 퇴원하고 복귀하니 배구부가 생겼더라. 당시 배구 담당 선생님이 운동장에 키 큰 학생이 보이니까 배구를 하라고 제안했다. 4학년 말쯤 전문 선수가 아닌 특별활동처럼 학교 대항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배구를 하고 있다.”

-배구선수가 가져야 할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인가?

“일단 키가 크면 유리하다. 하지만 내가 늘 강조하는 것은 ‘강한 멘탈’이다. 멘탈이 약한 친구들은 아무리 좋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어도 자기 신체를 활용하지 못한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나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머리가 나쁘면 운동도 못 한다. 과거에는 운동을 중시하느라 학업을 못 받다 보니 그랬던 거지, 운동 잘하는 선수들을 보면 아이큐도 높고 비상하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많이 나온다.”

-80년대 후반 세계랭킹 1위 미국 대표팀 감독이 전 세계 배구선수 베스트 6를 꼽으며 이상렬 선수를 언급했다.

“그분이 인터뷰에서 ‘한국에 이상렬 선수 같은 선수가 한명만 더 있으면 굉장히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있다’고 말해 이슈가 됐다. 그분이 저를 잘 봤다.(웃음) 예전에 이탈리아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왔다. 그때가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 게임을 앞두고 있을 때라 군대문제도 있었고, 해외 진출을 규제하기도 해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이상렬 감독은 KB손보 배구단의 레전드다. 전신인 럭키화재와 LG화재에서는 선수를, LIG손보에서는 코치를 했다.

-마침내 KB손보 감독까지 됐다. 팀을 이끌고 있는 소감은?

“처음에는 고등학교 코치로 들어가서 감독이 됐다. 경력이 쌓이면서 총감독이 됐고, 발령을 받아 교사를 했다. 그러다가 경기대 감독을 맡게 됐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긴 했지만 유니버시아드 감독직에 발탁 됐다. 내가 거친 곳은 모두 지도를 하거나 감독을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거친 곳은 다 감독을 해봐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래서 KB손보 감독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팀에서도 제안이 있었지만 내가 KB손보 배구단의 감독을 선택한 이유다. 나는 국가대표 수석코치도 했는데 국가대표 감독은 못 했다. 기회가 된다면 KB손보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명예롭게 은퇴를 한 뒤 국가대표 감독도 도전을 해보고 싶다.”

-아마추어팀과 프로팀의 지도자로서 차이가 많은지?

“한국배구 발전을 위해서는 프로팀도 중요하고 대표팀도 중요하지만, 초·중학교 좀 더 나아가 고등학교 감독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초·중·고 감독들이 선수들을 잘 이끌어주셨을 때(그 선수들이 성장해) 프로나 대표팀 선수가 되어 외국에 나가 국위선양을 하고 성적을 올릴 수 있다. 대학교, 프로팀 감독들은 초·중·고 감독들을 지원해주고 도와줘야 한다. KOVO 한국배구연맹이나 대한배구협회가 유소년 발전에 대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도 많다. 한국배구는 지금 위에는 풍성한데, 뿌리가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 뿌리가 단단해져야 한다. 배구뿐만 아니라 전체종목에서 유소년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프로팀 감독으로서 서로 경쟁을 하는 상황이지만 함께 힘을 합쳐서 뿌리를 다시 튼튼하게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같이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배구인으로 살아왔다. 프로 감독까지 하면서 어떤 길이 제일 힘들었나?

“어떻게 보면 나는 아웃사이더였다. 내가 잘못된 부분에 대해 항의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다른 배구인들이나 배구연맹과 갈등이 있어서 힘들었다. 하지만 몸담고 있는 배구계가 잘 되길 바라고, 후배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많은 혜택을 받으며 운동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배구선수 말고 도전해보고 싶은 직업이 있나?

“사실 저는 운동이 잘 안 맞다. 단지 신체적인 조건이 좋다 보니 주위에서 운동하라는 권유로 운동을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 때문에 조용한 곳에서 혼자 작업할 수 있는 작곡가·작가·화가 같은 직업을 갖고 싶다. 현실적으로는 은퇴해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도 웨이트트레이닝을 많이 하고 있다. 피트니스로 실버모델을 ‘나이 먹어도 이렇게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배구라는 종목을 가지고 유튜브를 할 생각도 있다. ‘이상렬은 배구는 이렇게 했다. 이상렬 배구는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줘 어린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고 싶다. 배구는 개인레슨이 없지만 사실은 아주 필요한 종목이다. 외국 프로선수들을 보면 개인 트레이너, 개인 마사지, 개인 요리사 등 전부 개인으로 가고 있다. 저를 필요로 한다면 개인으로 가르쳐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글·진행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 사진·동영상 청년서포터스 ‘젊은 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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