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관 ‘남으로 창을 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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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보금자리를 산촌 마을로 이끌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갱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내 인생의 노래]홍순관 ‘남으로 창을 내겠소’

내 인생에서 음악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초등학교 시절 성적표에 ‘우수수’ 사이로 유일하게 ‘양’이 있었으니 바로 음악이다. 중학교 시절 교회 청소년부 선생님이 나를 포함해 몇몇 아이들을 위해 공짜 음악 과외로 음계를 가르쳐 주었지만 나는 아직도 음계를 읽을 줄 모른다. 내 위로 네 명의 형들이 학창 시절 모두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지만 나만 유일하게 기타를 칠 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 시간에 하모니카 반에 들어갔지만 한 곡을 제대로 연주하지 못했다. 대학 시절 단과대학 풍물패에 들어갔지만 ‘덩덩덕쿵덕’ 몇 번 치고 나서 끝내 장구채를 내려놓았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노래는 항상 가까이 있는 위안이다. 음계를 모르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어도, 귀와 입은 있어서 듣고 따라 부를 수는 있기에 형들이 부르는 노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을 따라 불렀다. 중학교 시절 여름방학 끈적끈적한 방바닥에 등을 쩍 붙이고 <가요대백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음정과 박자를 무시하며 아는 노래는 죄다 부르며 질풍노도를 건너왔다. 대학 시절 거리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 목청을 높이기도 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노래방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스쳐간 수많은 노래 가운데 하나를 꼽는다면 ‘남으로 창을 내겠소’이다. 중학교 시절 국어 시간에 외웠던 시를 2005년 겨울 노래로 만났다. 김상용 시인의 시에 백창우가 곡을 붙이고, 홍순관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를 포함해 백창우가 곡을 붙인 시 노래를 밤마다 틀어놓고 잠들곤 했다. 백석의 ‘자작나무’, 김수영의 ‘풀’, 한하운의 ‘보리피리’, 김준태의 ‘감꽃’, 김동환의 ‘북청 물장수’,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꿈속인 듯 아닌 듯 담담하고 편안한 노래들 속에서 밤새 떠돌았다.

시 노래 ‘남으로 창을 내겠소’가 나를 이끌었다.

남으로 창이 나 있는 집으로
차 소리는 없는 새소리가 있는 곳으로
방울토마토, 가지, 고추, 상추, 감자, 땅콩,
강냉이가 심어진 밭으로 밭 사이 풀들에게로
호미로 풀을 솎아낸다.
풀 사이 숨어 있던 모기들이
내 엉덩이와 허벅지, 귀밑에 달라붙어
피를 뽑아 먹는다.
잠시 허리를 펴고 허벅지를 긁어대며
멀리 월악산 영봉에 걸려 있는 구름을 본다.
지금이 강냉이를 뚝 따서 삶아 먹기에
딱 알맞게 익을 때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알갱이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는 ‘남으로 창을 내겠소’처럼 살고 싶어 2016년 충북 제천으로 귀촌했다. 아내는 시골 마을에서 아낙들과 세 아이는 시골 학교에서 친구들과 북적북적 행복스럽게 살고 있다. 지금 나는 일주일에 닷새는 빌딩에 둘러싸인 서울 한복판에서 건조하게, 이틀은 산에 둘러싸인 산촌에서 촉촉하게 살고 있다. 전생에 나라를 세 번 구한 덕분에.

<김영재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미조직비정규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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