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을 돌이켜볼 때 떠올릴 노래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나무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강에게로
산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질 때
나무와 산과 강에게로
걸어가는 길은 아름답다
해가 질 때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산그늘처럼 걸어가는 일만큼
아름다운 일은
세상에
세상에 없다
![[내 인생의 노래]권진원 ‘해가 질 때’](https://img.khan.co.kr/newsmaker/1393/1393_70.jpg)
노래를 좋아한다. 스무 살 시절부터 많은 노래가 힘이 되어주었다. 쓸쓸할 때는 혼자 노래를 듣고, 기쁠 때는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요즘은 주로 지하철로 출퇴근할 때 노래를 듣는다. 혼자 차를 타면 노래를 따라 부른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도 내가 좋은데 어떠랴. 음원 서비스 월정기 구독이라는 신세계를 만난 지 1년쯤 되었고, 듣는 노래는 다양해졌다. 취향에 맞는 노래를 추천해주는 기능 덕분에 선우정아의 <공항가는 길>, 안치환의 <선운사에서> 같은 노래들도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신세계가 아닐 수 없다.
‘내 인생의 노래’를 청탁받고 고민에 빠졌다. 세상에 좋은 노래와 의미 있는 노래는 많고, 들어온 노래도 많은데 어떻게 한 곡만 고르나? 그래도 쭉 따져보니 내가 주로 듣는 노래들은 상당수가 시에 곡을 붙였다. 좋은 시는 그 자체로 좋은 노래다.
<민들레처럼>(박노해), <돌멩이 하나>(김남주), <꽃씨를 거두며>(도종환), <편지>(윤동주) 같은 노래를 자주 불렀고, 최근에는 안치환이 부른 <선운사에서>를 자주 듣는다. 1994년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 실린 시인데 노래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최근에 알았다. 시인은 서른 살에 깨달은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 이해하고 있다. “잊는 것 또한 순간이면 좋겠다.”
시를 노래한 음반 중에서 보물상자이자 결정판은 2006년쯤 나온 네 장짜리 CD와 두 권의 책으로 구성된 <백창우_시를 노래하다>이다. 음반을 사고 처음에는 차에 두고 듣다가 어찌어찌하여 컴퓨터로 다운받았고, 그 뒤로는 휴대전화를 바꿀 때 맨 먼저 하는 일이 이 음반의 음원 파일을 옮기는 일이다. 이 노래들은 아직까지 음원 서비스도 되지 않는다. 기형도 시인의 <빈집>, 백석 시인의
<자작나무>, 이성복 시인의 <남해금산>, 홍순관·방기순이 부른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 오장환 시인의 <붉은 산>… 64곡의 수록곡 한 곡 한 곡이 모두 명곡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를 노래로 만든 것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이 모든 시에 곡을 붙인 백창우 선생이야말로 대단하다. 낭송하는 시와 곡을 붙인 시는 사뭇 다르다.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시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 같다.
이 음반에서도 손에 꼽는 노래는 <해가 질 때>이다. 김용택 시인의 시에 백창우가 곡을 붙이고 가수 권진원이 불렀다. 산그늘이 지는 저녁 무렵,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작은 길을 걸어가며 이 노래를 듣노라면 저 아래서부터 따뜻함이 밀려온다. 이 여름은 여러 이유로 제대로 숨쉬기조차 힘든 시절이다. 코로나19가 이번 주 사실상 2차 대유행에 접어들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경계하고, 내가 감염원이 되지 않을까 경계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어야 할까? 2020년 여름은 나중에 어떻게 기억될까? 그래도 이 참혹한 시간이 지나고 모두 집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0년 8월 내 인생의 노래는 이 노래다.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