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정신’은 인간으로서 도덕과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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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알베르 카뮈가 쓴 <페스트>를 다시 읽었습니다. 1947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알제리의 오랑이란 도시에 페스트가 만연하면서 생긴 지역사회 갈등과 분열, 페스트를 극복하기 위한 연대와 기쁨, 언젠가 또 다른 ‘페스트’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얻는 교훈이 담겼습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상황들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읽는 내내 놀랐습니다. 카뮈는 천재 중 천재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습니다.

카뮈는 스포츠기자들이 좋아하는 인물입니다. 소문난 축구광이었습니다. 10대 때 동네 주니어 축구클럽 ‘RUA’에서 9년 동안 골키퍼로 활약했습니다.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17세 때 결핵에 걸리면서 선수 꿈을 포기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고 철학가 겸 소설가였지만 ‘소설가와 축구선수 중 하나를 택한다면’이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축구선수”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축구에 대해 남긴 명언은 축구, 아니 단체 스포츠가 인간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는지 통찰력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Everything I know about morality and the obligations of men, I owe it to RUA(football).” 해석하면 “내가 인간으로서 도덕과 의무에 대해서 배운 모든 건 RUA(축구) 덕분이다.” 정도가 되겠죠.

인간이 갖춰야 할 도덕과 의무는 무엇일까요. 협동·희생·양보·배려·질서·노력·책임감·미안함·패자 격려·도전정신 등일 겁니다. 인간이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배구·농구·야구 등 모든 단체종목에는 이런 요소가 반영돼 있습니다. 배구는 내 몸을 던져 공을 살려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도 공을 연속으로 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서 볼을 받은 동료가 다른 동료에게 좋은 볼을 넘겨주는 게 중요합니다. 수비수도 동료들이 블록해야 상대 스파이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농구도 내가 스크린을 걸어야 동료에게 좋은 득점 기회가 생깁니다. 야구에서도 동료 뒤쪽으로 커버플레이를 들어갑니다. 단체종목은 인생 축소판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은 많은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폭행·사기·분열·무질서·개인주의·한탕주의·방종·왕따·이기심·남탓, 불신…. 이 모든 게 사회 분열을 초래하고,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 엄청난 비용과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저는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단체종목을 많이 했다면 다를 텐데’라며 체육교육 부족을 아쉬워합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 최의창 교수는 지난 2월 발간한 <한 장 글쓰기>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스포츠를 기술로 보면 수단이 되지만 도리로 보면 삶의 기준이 된다”고요. 직업을 위해, 상급학교 진학이나 돈벌이를 위해, 유명세를 위해 익힌 스포츠는 수단에 머뭅니다. 그러나 정정당당·페어플레이 등 스포츠정신을 좇아 인생을 살면 스포츠는 가치 기준이 됩니다. 카뮈는 단체종목이 가진 교육적 기능을 중요시했고, 스포츠 정신에 따라 인생을 살았습니다. 코로나19도 그렇고, 반복되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그렇고, 이래저래 카뮈가 자주 생각나는 시기입니다.

<페스트> 표지

<김세훈 스포츠산업팀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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