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나쁘지 않은데?” 5월 하순, 인터넷에 올라온 디자인을 본 누리꾼 품평이다. 올해 2월 아시아에 이어 지난 5월 초 이탈리아에서 열린 ‘2020 A´ 디자인 어워드’에서 ‘올해의 디자인’ 상을 받은 한 한국인이 낸 알약 디자인이 화제다. 천편일률적인 동그란 모양에서 탈피해 신체 장기를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심장병약은 하트 모양으로, 간질환약은 기호화한 간 모양으로 만드는 식이다. 출품자는 이 디자인에 ‘피모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약(pills)’과 ‘이모지(emoji·스마트폰용 그림문자)’의 합성어다. 영문으로 된 출품서를 보면 “시각장애인들, 특히 노인들이 직관적으로 자신이 복용하는 약의 효능을 알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특히 노인은 복용하는 약이 여럿인 경우가 많은데, 약별 효능을 혼동하거나 까먹어서 오남용하는 사고가 잦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최종훈 제공](https://img.khan.co.kr/newsmaker/1379/1379_9b.jpg)
최종훈 제공
누리꾼들의 반응이 모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제약 회사가 모두 바보라서 동그랗게 만든 것은 아니다. 약이 저런 형태가 되면 병 안에서 서로 부딪혀 마찰로 뾰쪽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 약 용량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즉 파손을 줄이기 위해 약을 동그랗게 만들었다는 것. 이런 지적에 대해선 “PTP 포장으로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반론이 나온다. PTP 포장이란 플라스틱 시트를 열로 성형한 뒤 밑을 얇은 알루미늄 판박지로 붙인 포장형태를 말한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기약 등의 포장을 떠올리면 되겠다. 이런 궁금증도 있다. “각 장기 모양을 심볼화해 약을 만든다면 발기부전치료제는 어떤 모양으로?” 그건 제작자에게 물어보자.
해당 디자인을 한 최종훈씨(24)와 연락이 닿았다. 놀랍게도 아직 학생이다. 협성대 산업디자인학과 4학년. 15학번이다. ‘디자인만 염두에 두고 실용성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20년 전쯤에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 기능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듯 현재는 현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누리꾼이 궁금해하는 대목, 비아그라와 같은 발기부전치료제는 역시 남성 성기 모양? “수요층을 생각한다면 그쪽으로 가도 괜찮을 듯싶은데요?” 수상 후 연락 온 제약업체가 현재까진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