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링 윌버리스 「Handle With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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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Been beat up and battered round
Been sent up, and I’ve been shot down
You’re the best thing that I’ve ever found
Handle me with care

Reputations changeable
Situations tolerable
Baby, you’re adorable
Handle me with care
(…)

[내 인생의 노래]트래블링 윌버리스 「Handle With Care」

내가 선호하는 음악 취향의 변화는 곧 내가 버텨왔던 시간이 ‘제 잘난 맛’으로 승화되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내 인생의 최초의 ‘제 잘난 맛’은 초등학생 때 들었던 피비 케이츠의 <파라다이스(Paradise)>였다. 또래의 소년들이 만화 주제곡 따위에 열광할 당시에 나는 피비 케이츠 누님의 ‘팝송’을 들으며 희열을 느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록을 듣기 시작했다. 소년·소녀들이 이문세와 이선희의 테이프 구입에 열광할 당시에 나는 동네 레코드점 사장님과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의 더블라이브 앨범 LP를 거래했다.

그때는 그랬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더욱더 ‘제 잘난 맛’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장르가 프로그레시브 록이었다. 재즈를 듣는 것은 일종의 ‘꼰대’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핑크 플로이드나 킹 크림슨, 혹은 뮤제오 로젠바흐나 안젤로 브란두아르디가 적당히 폼도 나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음악들은 ‘제 잘난 맛’에 따라 변화했다.

몇 주 전 원고청탁을 받았다. 내 인생의 노래가 주제란다. 고민이 됐다. 내 인생의 음악도 아니고, 내 인생의 노래라니. 어딘가 모르게 가요를 선정하는 게 적절해 보였다. 게다가 이제는 ‘제 잘난 맛’보다는 남 잘나 보이게 만드는 일을 통해 돈을 버는 나이가 됐다. 결국 유튜브의 재생목록을 열었다. 한 곡이 눈에 띄었다. 그래 이 곡이 있었구나! 적절하게 폼도 난다. <핸들 위드 케어(Handle With Care)>.

만약 조용필과 김현식·전인권·조동진·김수철 등이 모여 밴드를 결성한다면 어떤 음악이 탄생했을까? 어지간한 상상력 없이는 조합하기 힘든 이러한 밴드들이 음악계에서는 실제 다수 존재한다. 음악계에서는 이러한 밴드들을 슈퍼그룹이라 부른다. 에릭 클립튼이 몸담았던 ‘크림’이나 ‘데릭 앤 더 도미노스’, 영국의 사이키델릭·블루스 록 밴드 ‘블라인드 페이스’, 그리고 포크록의 슈퍼스타들이 모인 ‘크로스비·스틸스·내시&영’ 등이 대표적인 슈퍼그룹에 속한다. 하지만 음악 역사상 최고의 슈퍼밴드는 단연 ‘트래블링 윌버리스’일 것이다.

트래블링 윌버리스 멤버들은 다음과 같다. 밥 딜런, 로이 오비슨, 조지 해리슨(비틀스), 톰 페티(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 제프 린(ELO). 멤버 하나하나가 팝과 록 음악의 역사이자, 살아 있는 전설들이다. 물론 이들은 활동을 그리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로이 오비슨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이유로 트래블링 윌버리스는 종종 밴드보다는 프로젝트로 인식된다. 아쉽다.

<핸들 위드 케어>는 이들의 대표곡이자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성을 집합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다. 물론 이 곡은 팝과 록의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은 아니다. 그냥 기본에 충실하다. 그런데 그게 감동을 준다. 연륜과 명성이 책임지는 곡이랄까? 나이가 들수록 기본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때로는 이게 잘못된 선택인 걸 알면서도 그 길을 향해 걸을 수밖에 없는 선택지에 도달하게 마련이다. 묵묵히 걸어가야 할 시간이 온다. 그때마다 다짐한다. 그냥 기본으로 가자. 이게 내가 오늘 소개할 수 있는 최상의 ‘제 잘난 맛’이다. 부디 Handle With Care.

<이성원 영화 전문 팟캐스트 ‘배드 테이스트’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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