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키의 저주 용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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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설화가 괴수 장르를 만났을 때

애초의 전설에서 환생한 나키는 자신의 엄마를 죽인 사람들에 분노해 사람들을 몰살시켰지만, 현신한 스로이나 나키는 무자비한 학살을 거듭하는 나가에 맞서 싸운다.

제목 나키의 저주 용의 부활

영제 Nakee 2

제작연도 2018년

감독 퐁파트 와치라번종

출연 우랏야 세뽀반, 나뎃 쿠키미야

상영시간 93분

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19년 9월 10일

라온아이

라온아이

신화는 매력적이다. 은유를 넘어선다. 단순한 교훈을 넘어 많은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다. 영화 <나키의 저주 용의 부활>은 할머니의 입을 빌려 가루다와 나가의 천년전쟁을 언급하고 있다. ‘신조(神鳥)’를 일컫는 가루다는 인도부터 동남아시아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신화다. 나가는 뱀신이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그 오랜 전설을 이렇게 말한다. “여성 나가 ‘나키’는 살해될 뻔했는데, ‘차이야싱’이라는 청년이 목숨을 걸고 그녀를 구했어. 인간과 나가는 사랑에 빠졌고, 자신의 아이가 흰 장어로 태어나길 기도했지. 당시 가뭄이 극심했는데, 왕실의 예언가는 흰 장어의 출현이 저주 때문이라고 했어.”

할머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나키는 1000년 후 환생했고, 전생의 업보가 그를 괴롭혔다. 자신의 모친이 살해되자 눈이 뒤집힌 나키는 마을사람들을 몰살했고, 1000년 동안 묵상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야기의 원형에 해당하는 전설은 이후 전개될 스토리에 대한 암시다.

천 년 전설의 재연 또는 ‘부활’

마을사람들은 이 뱀신 나키를 믿고 있다. 이 마을에 새로 부임한 퐁프랍 경위는 젊고 잘생겼다(영화의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다). 사원에는 나키의 석상을 모시고 있다. 어린 시절 저 전설을 반복해 들려달라고 졸랐던 처녀 스로이는 할머니와 함께 석상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신단에 바칠 꽃이나 기념품 같은 것을 팔며 사원을 관리하고 있다. 퐁프랍 경위의 부임과 함께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 단순 원한이나 도박빚 따위로 생각하며 범인을 추적하던 퐁프랍은 자신이 한눈에 반한 처녀 스로이가 살인사건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 스로이는 매일 악몽에 시달린다. 꿈속에서 그녀는 개울에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희생자들 속에 망연자실 서 있는데, 꿈을 꾼 다음엔 여지없이 현실 속의 그 인물들이 희생당한다. 마을사람들 사이에 나키의 화신(化身)인 스로이가 범인이라는 소문이 돈다. 퐁프랍은 “뚜렷한 증거 없이 그녀를 매도하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마을사람들은 그녀를 잡아 꽁꽁 묶어 산속에서 불태워 죽이려 한다. 여기서 영화의 장르는 바뀐다. 갑자기 나타난 용신들이 격투를 벌인다. 혼비백산한 마을사람들은 도망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나키, 그러니까 싸우는 용신이 자신의 엄마라는 것을 불현듯 깨달은 스로이는 흰색 용으로 변신해 달려들지만 모녀 용의 싸움은 역부족이었다. 그때 갑자기 가루다가 나타나 불의의 일격을 가하고 사라진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한 듯하면서 다층적이다. 한국 공포영화 서사의 핵심 메타포라고 말하는 ‘근대에 대한 전근대의 복수’ 도식은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이 태국 영화의 서사를 읽는 데도 유용한 도구다. 젊고 잘생긴 퐁프랍 경위는 근대와 계몽을 상징한다. 그와 함께 일하는 경찰들은 마을사람들이다.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보고 ‘나키의 저주’라고 벌벌 떤다. 퐁프랍은 믿지 않지만, 전근대적 믿음은 반석 같은 것인 줄 알았던 근대의 ‘기초’를 서서히 허물며 사실로 드러난다. 전근대의 복수다.

관광과 외세: 전통에 맞선 근대

살해를 당한 남자들은 하나같이 ‘지저분한’ 외모를 갖고 있다. 말하자면 ‘나는 악당’이라고 써 있는 듯한 얼굴이다. 나키를 모신 사당에서 횡포를 부렸거나, 도망치면서 스로이의 할머니를 위협하는 등 ‘마땅히 죽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석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 고래의 뱀신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 희생당하는 사람들 중에 미국에서 온 ‘몬스터 사냥꾼’이 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 뚱뚱한 남자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몬스터’, 정확히 말하면 그 지역에만 서식하는 동물들을 잡아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렸는데, ‘나가’, 그러니까 태국사람들이 숭배하는 물뱀을 포획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돈에 눈이 먼 그의 ‘태국인 협조자’도 함께 희생양이 된다. 관광과 ‘외세’를 태국의 전통을 말아먹는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의 전설에서 환생한 나키는 자신의 엄마를 죽인 사람들에게 분노해 사람들을 몰살시켰지만, 현신한 스로이나 나키는 무자비한 학살을 거듭하는 나가에 맞서 싸운다. 이 점에서는 인류의 잘못으로 탄생한 거대괴수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공생해야 하는 인류를 위해 다른 거대 괴수들에 맞서 싸우는 존재로 진화하는 현대 괴수물과 유사하다. 영화의 절정부에서 거대 용들의 격투 장면이나 난데없기는 하지만 가루다의 출현 장면은 현대 괴수물의 전통적 촬영방식-초고속카메라를 동원한 촬영-을 따른 게 아니라 컴퓨터그래픽(CG)으로 작업되어 있는 것이 살짝 아쉽다. 사실 필름카메라가 촬영 현장에서 완전히 퇴출된 지도 거의 20년 가까이 되는 마당에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여러모로 흥미로운 영화다.

동남아시아의 뱀과 새 숭배설화

[시네프리뷰]나키의 저주 용의 부활

나가는 뭐고 나키는 또 뭔가. 영화에서 아무런 설명도 하고 있지 않는 가루다는 또 뭐고. 태국 문화에 문외한이다 보니 위계와 구도가 낯설었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찾아보니 태국뿐 아니라 인도나 캄보디아, 몽골까지 동아시아에는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설화였다. 동북아시아에서 곰과 호랑이가 신화의 주인공이듯, 동남아시아에서는 뱀과 새가 숭배의 대상인 것 같다. 뱀신이 나가, ‘신조’가 가루다다. 가루다는 인간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를 갖고 있고 부리, 날개, 다리, 발톱을 갖고 있는 존재다. 힌두전설에서 가루다는 우주의 수호자이자 비슈누의 신봉자로, 비슈누를 태우고 날아다니면서 악령이나 사악한 뱀과 싸우는 존재다. 그리고 그 사악한 뱀이 나가다. 영화 속 ‘나키’는 뱀신 중 하나이고….

동북아시아에서 곰이나 호랑이가 숭배대상이 되는 것은 그들이 가진 힘 때문이다. 인간 개개인으로서는 맞서 싸울 수 없고, 종종 공격당하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한다. 숭배를 통해서 이 자연의 지배자가 갖는 ‘힘’을 나눠 갖는다는 토템사상이다. 그렇다면 뱀이나 새는? 새의 경우, 독수리 역시 상당한 힘을 가진 존재다. 성인은 몰라도 서너 살짜리 꼬마는 종종 하늘에서 기습 강하하는 독수리에게 끌려가곤 했다. 업그레이드된 뱀인 용에 대한 설화는 전세계에 퍼져 있는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는 전세계의 땅 속에서 종종 발견된 공룡화석이 이 용 전설을 만들어낸 원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자료를 찾아보니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는 가루다를 국장(國章)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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