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못쉬겠어” 호소 외면 경찰 5년 만에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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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흑인의 죽음과 반성 없는 백인 경관의 현실

“대니얼 팬털레오가 더 이상 뉴욕시 경찰관으로 봉사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지난 8월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경찰청장 제임스 오닐은 5년여 전 미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흑인 남성 에릭 가너(사망 당시 43세) 사망사건에 연루된 백인 경찰관의 해임을 발표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정확히 1860일 만이었다. 백인 경찰이 공권력을 이용해 흑인 남성을 죽여도 기소조차 잘 되지 않는 미국에서 책임을 물어 경찰을 해임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흑인 에릭 가너가 2014년 7월 17일 오후 미국 뉴욕경찰국(NYPD) 소속 사복경찰 2명에 의해 체포되는 과정. 대화를 하던 중 더스틴 다미코가 수갑을 꺼내자 뒤에 있던 대니얼 팬털레오가 금지된 목조르기 수법을 동원해 가너를 제압하고 있다. / 뉴욕데일리뉴스 웹사이트 캡처

흑인 에릭 가너가 2014년 7월 17일 오후 미국 뉴욕경찰국(NYPD) 소속 사복경찰 2명에 의해 체포되는 과정. 대화를 하던 중 더스틴 다미코가 수갑을 꺼내자 뒤에 있던 대니얼 팬털레오가 금지된 목조르기 수법을 동원해 가너를 제압하고 있다. / 뉴욕데일리뉴스 웹사이트 캡처

에릭 가너 사건은 일반적인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남성 사망사건과 많이 달랐다. 백인 경찰이 비무장 흑인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하는 사건은 비일비재하지만 가너의 죽음은 총기와 무관했다. 가너는 거대한 체구였지만 경찰에 저항하지 않았다. 위협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달아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경찰도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도 경찰은 금지된 ‘목조르기(chokehold)’로 제압해 그를 사망케 했다.

1860일 만의 승리, 그러나 시작일 뿐

에릭 가너 사망 논란은 사건 발생과정을 담은 동영상에서 비롯됐다.

아내와 6남매, 3명의 손자를 둔 가너는 2014년 7월 17일 오후 3시30분쯤 뉴욕시 5개구의 하나인 스탠튼아일랜드 거리에서 뉴욕경찰국(NYPD) 소속 사복 경찰관 2명을 맞닥뜨린다. 대니얼 팬털레오와 저스틴 다미코다. 두 경찰이 그를 제지한 이유는 불법 담배 판매. 가너는 팬털레오의 목조르기 공격을 받고 쓰러지기 전까지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뭐 때문에 도망가겠어? 아무 짓도 안 했어. 당신들은 볼 때마다 날 못살게 굴어. 정말 진절머리가 나. 오늘부로 이런 일은 끝나야 돼(It stops today). 여기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두 다 말해줄 거야. 내가 아무 짓도 안 했다는 걸….”

그 사이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한다. 그 순간 팬털레오와 함께 있던 다미코가 수갑을 꺼내며 가너에게 다가가자 그 뒤에 있던 팬털레오는 목조르기로 가너를 쓰러뜨린다. 4명의 경찰이 쓰러진 그의 몸을 누른다. 팬털레오는 여전히 그의 목을 조르고 있다.

“숨을 못쉬겠어(I can’t breathe). 숨을 못쉬겠어. 숨을 못쉬겠어. 숨을 못쉬겠어. 숨을 못쉬겠어. 숨을 못쉬겠어. 숨을 못쉬겠어. 숨을 못쉬겠어. 숨을 못쉬겠어. 숨을 못쉬겠어. 숨을 못쉬겠어.”

가너는 쓰러진 지 불과 30초도 안 된 시간에 숨을 쉴 수 없다고 11번이나 호소했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가너는 경찰이 구급차를 기다리는 7분 동안 누운 채로 있었다. 경찰은 심폐소생술과 같은 기본적인 응급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을 촬영한 램지 오타의 14분43초 분량의 동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z0j-7L094d0)을 보면 가너는 쓰러진 뒤부터 들것에 실리기까지 약 13분 동안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가너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약 1시간 만에 사망했다. 뉴욕시 법의학자가 밝힌 가너의 사인은 ‘과실치사’. 부검 결과 가너는 경찰이 물리적 제지를 가하는 동안 목과 가슴에 입은 압박과 엎드린 자세 탓에 숨졌다. 가너가 앓고 있던 천식과 심장병, 비만도 사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제시됐다. 건장한 체구의 가너가 이런 병력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고 경찰은 발뺌했지만 본질은 대응수칙을 지키지 않은 데 있다. 목조르기는 NYPD가 1993년 이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너에게 목조르기를 한 팬털레오는 사흘 뒤인 7월 20일 내근부서로 배치됐다.

백인 경찰관이 5년여 만에 해임됐지만 가너 가족은 반발했다. 팬털레오뿐만 아니라 나머지 연루 경찰관 6명의 처벌까지 요구해온 가너 가족은 팬털레오의 해임은 그 과정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가너의 어머니 그웬 카는 “끝나지 않았다. 팬털레오 뒤를 따라가야 할 또 다른 경찰관들이 있다”고 말했다.

에릭 가너를 목조르기로 사망하게 한 뉴욕 경찰 대니얼 팬털레오. / AP연합뉴스

에릭 가너를 목조르기로 사망하게 한 뉴욕 경찰 대니얼 팬털레오. / AP연합뉴스

경찰들도 반발했다. 뉴욕시 최대 경찰조직인 PBA는 성명을 내고 오닐 청장을 “반경찰 극단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팔은 안을 굽는다’고 민간인 신분인 청장이 되기 전까지 NYPD 국장을 지낸 오닐도 가너의 죽음을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이라고 하면서도 “만약 내가 경찰이었다면 아마 나도 화가 났을 것”이라고 했다.

에릭 가너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3주 뒤인 8월 9일에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교외지역인 퍼거슨에서 18세 흑인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관 대럴 윌슨이 쓴 총에 맞아 사망했다. 당시 브라운은 고교를 졸업한 지 8일밖에 되지 않았다. ‘퍼거슨 사태’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미 전역은 다시 한 번 경찰의 무차별적인 공권력 행사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다.

여전히 흑인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다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2012년 2월 26일 플로리다주 샌퍼드에서 17세 흑인 트레이번 마틴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백인 자경단원 조지 짐머맨이 2013년 무죄평결로 석방되면서 울려퍼지기 시작한 구호다. 마이클 브라운 사건과 에릭 가너 사건을 계기로 이 구호가 미 전역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경찰이 흑인들의 목숨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는 많다. 경찰 폭력을 집계하는 미국 단체 ‘매핑폴리스바이얼런스’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경찰에 의해 사망한 사람은 1147명이었다. 그 중 25%가 흑인이었다. 미 전체 인구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 13%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다. 영국 언론 <가디언>의 2017년 10월 보도를 보면 2016년에 15~34세 흑인 남성의 경우 다른 미국인에 비해 경찰에 의해 죽는 비율은 9배나 높았다. 이는 미 연방수사국(FBI)이 해마다 집계하는 과실치사 숫자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올해 8월 미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8월 실린 연구결과를 보면 흑인 어른과 소년 1000명 중 1명 꼴로 경찰의 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백인 남성이나 아이보다 2.5배 많다.

반면에 유색인종을 숨지게 한 경찰관이 기소되거나, 기소되더라도 유죄선고를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미국경찰위법행위보고계획이 2009년 4월부터 2010년 말까지 3238건의 범죄행위를 대상으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33%만 유죄선고를 받았다. 유죄선고를 받은 경찰관의 36%만 징역형을 살았다. 경찰관의 유죄선고 및 유죄선고자의 징역형 비율은 일반인의 절반 수준이었다.

실제로 2012년 트레이번 마틴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백인 자경단원 조지 짐머맨은 무죄평결을 받았다. 마이클 브라운을 숨지게 한 백인 경찰과 대런 윌슨은 대배심이 정당방위로 인정해 불기소됐다. 2015년 4월 19일 볼티모어에서 경찰 체포과정에서 다쳐 일주일 만에 숨진 25세 청년 프레디 그레이 사건 연루 경찰 6명도 전원 석방됐다. 2014년 11월 22일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한 공원에서 장난감 총을 든 12세 흑인 소년 타미르 라이스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경찰관은 1년 반 뒤 해임됐지만 그의 경찰 채용과정에서 빚어진 비리가 사유였다.

제임스 오닐 뉴욕 경찰청장이 지난 8월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니얼 팬털레오의 해임을 발표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제임스 오닐 뉴욕 경찰청장이 지난 8월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니얼 팬털레오의 해임을 발표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비극의 뿌리는 백인의 인종주의적 공포

에릭 가너 사건을 비롯해 백인 경찰의 폭력에 희생된 사건의 핵심은 ‘흑인은 위험하다’는 오랫동안 인종주의에 기반한 백인의 흑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흑인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해온 문화에 있다.

<혐오사회>(2017·다산초당)에서 에릭 가너 사건을 상세히 다룬 독일 언론인이자 작가인 카롤린 엠케는 “백인의 폭력에 대한 공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집단체험이자 노예제의 유산”이라고 진단했다. 엠케에 따르면 이 사건은 언제나 흑인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해주는, 역사적으로 학습된 시각에 따른 것이다. 엠케는 프랑스 정신의학자이자 정치가이자 저술가였던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 나오는 흑인의 몸을 바라보는 백인의 시선을 인용하면서 “흑인이 추워서 몸을 떠는 것도 분노의 표현으로 해석해 흑인을 항상 기피하거나 두려워해야 마땅한 존재로 바라보도록 교육받은 사회에서 백인의 폭력에 의해 희생된 흑인은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더라도 늘 위협적인 존재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에릭 가너를 비롯해 트레이번 마틴, 마이클 브라운, 타미르 라이스는 그런 문화에서 정당화된 백인들의 피해망상의 희생자였다. 그런 위험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 백인 경찰의 임무로 정당화되는 게 미국 사회다. 가너에게 목조르기를 한 팬털레오가 아무런 악의나 증오를 느끼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흑인이 느끼는 공포는 경찰의 불심검문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한 에릭 가너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상화돼 있다. 흑인은 백인에게 잠재적인 범죄자일 뿐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경찰의 검문은 흑인에게 “체계적인 모욕”이다. 그래서 엠케는 “흑인의 육체에 대한 인종주의적 공포는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재생산되는 반면, 그런 낙인이 찍힌 흑인이 백인 경찰의 폭력에 대해 느끼는 근거 있는 공포는 바로 그 인종주의 때문에 사각지대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억울한 역설”이라고 지적했다.

미 작가 리베카 솔닛도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솔닛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2018·창비)에서 라틴계 청년 알레한드로(알렉스) 니에토의 죽음을 자세히 다뤘다. 나이트클럽 보안요원으로 일하던 니에토는 2014년 3월 21일 저녁 7시 무렵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한 공원에서 경찰관이 5분 동안 쏜 59발의 총알 중 14발을 맞고 사망했다. 니에토가 테이저건으로 경찰관들을 겨냥했고, 경찰관들은 테이저건을 총기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솔닛은 “백인 주민들이 동네를 걷거나 운전하거나 돌아다니거나 하는 그냥 살고 있는 유색인종 주민들을 범죄 용의자로 간주하는 일이 가끔 발생한다…. 니에토의 죽음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여러 명의 백인 남성이 그를 실제보다 더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가 죽었다는 것이다”라고 썼다.

“오늘부로 이런 일은 끝나야 돼.” 에릭 가너가 목조르기를 당하기 전에 한 말이다. 그 말에는 체념이 묻어 있다. 카롤린 엠케는 가너가 한 말 중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라고 했다. 엠케는 “수없이 검문당하고 체포당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사람이 영원히 모욕당하고 멸시당하는 흑인의 역할을 태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당한 연극에서 더 이상 그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사람의 말”이라고 했다. 가너의 바람대로 ‘이런 일’이 끝나는 날이 올까? 11번이나 “숨을 못쉬겠어”라는 호소를 듣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경찰들을 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

<조찬제 선임기자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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