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의 보잘것없는 웹디자이너에서 트럼프의 오른팔이 된 스토리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성실성과 기회포착 능력 그리고 우연이다.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마케팅과 웹사이트를 만드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로 성장한 브래드 파스케일(44)도 그랬다. 2020년 미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재선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그는 키 2m7㎝에 트레이드마크인 바이킹 턱수염을 한 탓에 격투기 선수를 연상시킨다. 대학 시절 부상 전까지만 해도 그는 미국프로농구(NBA) 진출을 꿈꾸던 농구선수였다. 부상이 디지털에 관심을 기울이고 행운의 기회를 잡게 한 원동력이 됐다.
파스케일이 트럼프 재선캠프 선대본부장이 된 때는 2018년 2월 27일(현지시간)이다. 대선을 979일이나 앞둔 시점이었다. 전임자 버락 오바마가 재선 출마를 선언한 때보다 397일이나 빠르다. 탄핵 정국 종료와 민주당 경선 시작으로 2020 미 대선 레이스의 막이 오르며 그는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불과 4년여 전만 해도 샌안토니오의 보잘것없던 웹디자이너가 어떻게 트럼프 가족의 웹마스터가 되고, 2016년 대선캠프의 디지털 국장이 돼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켰을까. 트럼프는 뭘 믿고 재선의 운명을 그에게 맡겼을까.
두 번의 전환점과 트럼프와의 인연
파스케일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두 가지 사건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은 식중독이다. 지난해 6월 플로리다 지역 언론 <데이토나비치 뉴스저널>에 따르면 2002년 어느 날 파스케일은 샌안토니오의 한 서점을 들러 비즈니스 부문 베스트셀러인 웹디자인 책을 샀다. 당시는 만사가 잘 풀리지 않던 때였다. 캔자스주의 주도 토피카 출신인 그는 텍사스대에 농구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다리와 등 부상으로 그만두면서 트리니티대로 옮겨 국제 비즈니스와 경제학을 공부했다. 이후 그는 아버지와 함께 사업을 했으나 실패한 터였다. 그때 산 웹디자인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던 차에 식중독에 걸린 그는 하는 수 없이 책을 읽었다. ‘파스케일닷컴’을 세운 그는 낮에는 비즈니스에, 밤에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이를 계기로 2011년 7월 그래픽 및 웹디자이너 질 자일스와 함께 ‘자일스-파스케일’을 설립해 향후 성공의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다.
두 번째 전환점은 그로부터 몇 년 뒤 찾아왔다. 한 여성의 전화였다. 2011년 어느 날 아침, 파스케일은 웹사이트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이야기를 나눴다. 6개월 뒤 케시 케이라는 여성이 ‘전화를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케이는 당시 트럼프 가문의 부동산회사 ‘트럼프 오거나이제이션’의 세일즈와 마케팅 담당 책임자였다. 파스케일은 당시 케이와의 통화 내용을 회고했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남성과 우리 웹사이트가 얼마나 나쁜지, 웹디자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당신의 전화번호를 줘서 전화했다.” 케이는 파스케일과 통화 중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가 지나간다면서 통화하기를 원한다며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파스케일은 이방카가 아버지와 장남 도널드 주니어와 이사회 회의 중이라면서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 웹디자이너인지 그들에게 말했다”고 소개했다. 8만 달러짜리 집에 다지 다트를 모는 형편없던 파스케일이 트럼프와의 인연의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파스케일은 2012년 4월 ‘트럼프 인터내셔널 리얼티’ 웹사이트 디자인 요청을 받았다. 이틀 뒤 1만 달러에 하겠다고 제안했다. 며칠 뒤 트럼프 차남 에릭이 전화를 걸어왔다. “브래드, 문제가 있어요. 우리 생각에 ‘0’이 하나 빠진 것 같아요. 당신이 바보이거나 뭘 하려는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네요.” 파스케일은 2018년 11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나는 샌안토니오에서는 보잘것없는 인물이었지만 트럼프를 위해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며 트럼프를 고객으로 만들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가족의 웹마스터가 된 그는 2015년 2월 ‘대통령 예비위원회’ 웹사이트 구축(1500달러), 2015년 6월 ‘트럼프 대선 캠페인’ 웹사이트 구축(1만 달러) 끝에 마침내 트럼프 권력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기회를 맞았다. 2016년 6월 트럼프 대선캠프 디지털 미디어 국장 임명이었다. 디지털 미디어와 온라인 선거자금 모금, 라디오와 TV 같은 전통 매체의 전략을 총괄하는 자리다. BBC에 따르면 당시 트럼프 차남 에릭은 파스케일 임명에 대해 “브래드는 2016년 우리의 성공을 이끈 중심인물이었다”며 “그는 대선 캠페인 책임자로서 완벽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파스케일이 트럼프 가문으로부터 신뢰를 얻은 데는 트럼프 자녀들의 환심을 사는 전략도 주효했다. 파스케일은 디지털 전략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파스케일은 시간이 날 때마다 트럼프 일가를 띄워줬다. 트럼프를 “제2의 아버지 같다”, “트럼프는 수십 년간 지속할 가문”이라고 했다. 쿠슈너에 대해서는 “위대한 지도자”, “천재이자 지금까지 만난 최고의 멋진 남자”라고 치켜세웠다. 차남 에릭은 파스케일의 최대 지지자였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에릭은 “브래드를 계속 찾아가는 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파스케일의 정치 감각은 형편없었다.
<프로퍼블리카>에 따르면 트럼프 대선 출마 선언 열흘 뒤 파스케일은 공화당 간부 두 명과 점심을 먹었다. 그 자리에서 대선보다 자신의 샌안토니오 시의원 출마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그 자리 있었던 인사는 “그는 그 문제에 대해 엄청 진지했다”면서 “브래드가 트럼프의 대선 출마 선언을 장기적인 일로 여기지 않아 우리는 낄낄댈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트럼프 백악관 입성시킨 ‘프로젝트 알라모’
파스케일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전략가였던 칼 로브에 비견된다. 페이스북·트위터·구글 같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광고를 선거전략에 활용했다. 데이터의 중요성을 알고 캠페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특정 유권자를 겨냥한 ‘마이크로 타깃’과 페이스북 직원을 파견받아 이들의 플랫폼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2016년 대선에서 파스케일이 소셜미디어 광고전을 가능하게 한 유권자 정보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는 ‘프로젝트 알라모’로 불린다. 나중에 이 프로젝트는 선거자금 모금과 정치광고 등을 총망라했다. 파스케일은 처음에 이 프로젝트를 샌안토니오 산업단지 사무실에서 운영하다 대선 한 달을 앞두고 뉴욕의 트럼프타워로 옮겼다. 약 2억 달러에 이르는 선거광고 예산을 관장하게 된 파스케일은 절반은 TV 광고에, 절반은 페이스북 같은 디지털 플랫폼에 투입했다. 트럼프는 페이스북에 거액의 자금을 쓰는 데 몹시 화를 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10월 중순 트럼프는 파스케일의 사무실이 있는 트럼프타워 14층에 기습적으로 들어와 선거에서 이기는 비법인 TV 광고 대신 페이스북 광고로 수백만 달러를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30분간 파스케일에게 침이 튀도록 화를 냈다고 한다. 파스케일은 “다음 대통령이 되려 한다면 페이스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맞섰다. 두 사람 간 다툼을 지켜본 트럼프 고위 보좌관은 파스케일이 그만두기 직전이었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다툰 뒤 몇 시간 동안 맨해튼을 거닐던 파스케일은 “트럼프가 내게 고함친 것은 처음이었다. 트럼프 가족 모두가 전화를 걸어와 ‘신경 쓰지 말라’고 해” 머물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포와 충격’이라고 이름 붙인 페이스북 광고 전략은 상대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압도했다. 그는 특정 유권자에게 어떤 것이 효과적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다른 사진이나 색상, 표현을 테스트하고, 그 뒤 그 광고를 자신들이 수집한 마케팅 정보를 특별 유권자들에게 겨냥하는 마이크로 타깃을 활용했다. 파스케일은 “우리는 유권자들에게 맞추고 대통령으로부터 듣고 싶어하는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계속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 광고를 활용해 경합 주의 개인 유권자들을 파고든 마이크로 타깃 전략은 박빙의 승부처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결정타가 됐다. 후버연구소의 첸란히는 <가디언>에 파스케일의 갑작스러운 부상에 대해 “현대 정치에서의 디지털의 중심적 역할을 잘 보여준다”면서 “2010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지만 디지털 기능이 선거과정을 관통하는 경우 캠페인의 디지털 부분을 이해하는 디지털 디렉터는 믿을 수 없이 강력해졌다”고 말했다.
파스케일 전략, 2020 대선에도 통할까
대선 레이스가 본격 시작함에 따라 최대 관심사는 ‘2016년 페이스북 활용 전략이 2020년에도 통할까’ 하는 점이다. 파스케일은 지난 2년간 유권자 휴대전화 번호 확보, 인구정보 구매, 여론조사, 정당 가입 및 투표이력 정보 작성, 지역구별 트럼프의 성적, 모든 정보의 업데이트 등 정보 모으기에 집중해왔다면서 “우리는 민주당에 비해 광년이나 앞서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대선 말기에 우리는 900만~1000만 명의 직접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을 확보했다”면서 “내가 하고 있는 절차에 따르면 6000만 명 이상 모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가 특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지난해 여름에 시작한 캠페인 앱이다. 트럼프의 유세장에 참석하는 열혈 지지자를 겨냥한 앱이다. 지지자들이 기다리는 동안의 경험을 게임으로 만들었다. 파스케일은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의 사진을 얻고 싶으면 100명에게, 공짜 모자를 받고 싶으면 20명에게, 좋은 자리를 원하면 30명에게 앱을 다운로드 받게 하라.”
파스케일은 페이스북이나 e메일, TV 광고가 아닌 휴대전화가 2020년 대선의 ‘성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시에 소액 기부자를 대상으로 하는 웹사이트로 개설할 예정이다. 2016년과 달리 공화당 전국위원회(RNC)를 장악한 점도 그에게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파스케일의 오보 디지털 전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 하원 감사개혁위원회 대변인을 지낸 커트 바델라는 <가디언>에 “그들이 2016년에 활용한 소셜미디어 활용 전략은 사실을 왜곡하고 미국인을 호도해 백악관에 다시 들어가려고 사기를 치려는 것”이라며 “이것이 파스케일이 선대본부장이 된 부분적인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승리로 명성과 부를 동시에 안은 파스케일은 지난해 1월 샌안토니오를 떠나 플로리다로 거처를 옮겼다. 포트 로더데일에 있는 그의 집은 침실 4개, 화장실 3개 딸린 240만 달러짜리 저택이다. 5월에는 해변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콘도도 구입했다. 그는 플로리다로 옮긴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우선 워싱턴 통근 거리를 단축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텍사스는 워싱턴으로 비행하기에는 너무 멀다”고 했다. 둘째는 절세 목적이다. 그는 “워싱턴의 소득세율은 8.5%인데, 플로리다는 소득세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속셈이 있다. 트럼프가 자주 찾는 마러라고 리조트가 파스케일의 거주지로부터 70여㎞ 북쪽에 있다. 또 플로리다주는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고전한 곳으로, 2020 대선에서 다시 한 번 승리를 이끌어내야 할 전략지역이다. 파스케일은 “트럼프가 언젠가 뉴욕을 떠나 플로리다 운전면허증을 따길 바란다”면서 “정보나 선거유세,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플로리다는 트럼프 나라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스케일은 최근 트럼프 선대본부가 있는 버지니아주 알링턴 인근 로슬린에 아파트를 마련했다. 선거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취미가 없다. 내 취미는 폭스뉴스, CNN, MSNBC를 보고 신문을 읽는 것이다. 책도 일 때문에 읽는다. 1896년 이후 모든 선거와 관련해 읽었다”고 말했다.
<조찬제 선임기자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