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중년, ‘좋은 시절’ 다 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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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가 중년의 멋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이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경험과 자산을 나누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년은 제일 나누어줄 ‘자산’이 많은 시기입니다.

중년은 ‘가운데(中) 있는 시기(年)’라는 뜻입니다.

영화 <가족의 탄생>의 한 장면 /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화 <가족의 탄생>의 한 장면 / 경향신문 자료사진

삶의 여정에서 청소년기와 함께 갈등이 많은 시기입니다. 그 이유는 두 시기가 겹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기의 갈등은 ‘어린이(少)’와 ‘젊은이(靑)’가 혼재되어 있는 데서 연유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중년을 갈등의 시기, 또는 위기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젊은이(靑年)’와 ‘늙은이(老年)’가 겹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더 이상 젊은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늙은이도 아닌 시기입니다. 젊음과 늙음이 겹치고 함께 공존하는 시기입니다.

현재 나는 잘 살고 있나?’ 평가의 시간

신체적으로 변화의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이 변화는 여성에게 더욱 극적으로 나타납니다. 이제는 폐경과 함께 생식력이 중단됩니다. 남성들도 이처럼 극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성욕이 떨어지거나 성기능이 저하됩니다. 이 증상들을 단지 나이 들면 나타나는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전성기가 지난 것으로 주관적으로 해석하면 ‘위기’가 나타납니다. 중년에 나타나는 우울증의 원인은 거의 “더 이상 젊지 않다. 좋은 시절이 다 갔다”라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젊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좋은 시절이 간 것은 아닙니다. 생식의 능력이 멈추는 것은 더 이상 불필요한 생식에 귀한 에너지를 투입하지 말고, 그 에너지를 더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라는 자연의 지혜입니다. 중년은 중년대로 긍정적인 면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적으로 어렸을 때의 특징인 부모나 어른들에게 의존해서 살던 어린이에서 독립을 하고 자립적으로 살아가던 젊은이 시기를 거쳐 이제는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아우르며 상호-의존의 시기로 들어가는 시기입니다. ‘나’는 없고 ‘너’와의 관계에만 의존하는 시기나, ‘너’는 없고 오직 ‘나’만이 중요한 시기도 모두 심리적으로 미성숙한 시기입니다. 중년이 되어 ‘나’와 ‘너’가 서로 없어서는 안 될 상호 의존할 수 있는 소중한 관계로 인식될 때 비로소 성숙한 삶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중년기에는 ‘현재 나는 잘 살고 있나?’를 판단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재평가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는 과거를 돌아보면서 잘한 것은 더욱 잘하고, 아쉽거나 불필요한 것은 버리려는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더 이상 시간이 흐르기 전에 더 좋은 삶을 위한 평가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평가가 그렇듯이 중년에 하는 평가도 불안하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비록 스스로 하는 평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평가는 삶에서 제일 중요한 두 영역인 ‘사랑’과 ‘일’의 영역에서 주로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주로 가정생활 특히 결혼생활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중년이 되면, 이 결혼생활을 지속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평가를 합니다. 만약 계속할 것으로 결정이 되면, 부족한 것은 시정하고 좋았던 점을 더욱 보완해서 젊었을 때보다 더 즐거운 결혼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만약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해보아도 원했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이혼’을 하게 됩니다. 중년에 이혼이 늘어나는 연유입니다.

중년에는 주위에서 ‘이직’을 했다는 소식도 자주 들립니다. 물론 자신이 몸담고 일했던 조직에서는 더 이상 승진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따른 이직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 이상 ‘남의 조직’에서 일하지 않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의미심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청춘을 보냅니다. 젊은이들이 취업을 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은 연봉, 근무조건, 근무환경 등입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젊은이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중년이 되면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한 번도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죽을 수 있겠다는 다급한 마음이 듭니다. 이것이 이직을 하는 연유이기도 합니다.

중년이 위기의 시기인 연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위기’는 ‘위태하다(危)’와 ‘기회를 모은다(機)‘의 합성어입니다. 이혼과 이직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위태롭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그런대로 안정적인 삶이 더욱 위태로워질 개연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가 없이는 기회도 없습니다. 그래서 중년은 불안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이 불안하다고 속시원히 이야기하기도 어렵습니다.

가족의 진정어린 공감과 이해가 중요

가정적으로도 자녀들은 이제 독립을 할 시기가 됐기 때문에 반항하고 상대를 해주지 않습니다. 이제는 자녀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 자녀가 어렸을 때와는 반대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부모가 젊었을 때 어린 자녀는 애정을 주는 대상으로 중요합니다. 하지만 중년의 부모에게 자녀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제는 중년의 부모가 자녀의 눈치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이어가 ‘미완의 꿈’으로 끝날 자신의 계획을 영속시켜주어야 할 자녀들이 점점 더 심리적으로 중요해집니다.

배려가 중년의 멋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이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경험과 자산을 나누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년은 제일 나누어줄 ‘자산’이 많은 시기입니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제일 풍부할 때입니다. 이때 자녀를 포함한 다음 세대에게 많이 베풀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노년에 필요한 경제적 자산을 다 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경제력 이외에도 오랜 경험에서 나온 문제해결 노하우와 넓은 인적 교류망 등 배려해줄 것이 많이 있습니다.

중년은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중요합니다. 소통은 ‘막힌 것이 트여서 통하는 것’입니다.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대화를 잘 해야 합니다. 대화는 ‘상대(對)’와 ‘이야기(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보다 먼저 상대의 마음을 잘 읽어야 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공감해 준 후에 나의 생각을 전해야 설득이 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 못지않게 나의 마음을 잘 느끼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깁니다. 특히 남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남성들은 자신의 감정을 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폭발을 하든지, 술의 힘을 빌려 ‘술김’에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년에는 무엇보다 가족이 중요해집니다. 자신의 신체와 경력에서 한계를 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계를 느끼면서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제일 친밀한 관계인 가족으로부터 오는 진정어린 공감과 이해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여야만 가족이 도와줄 수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저희의 부족한 글을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보내주신 칭찬에 힘을 얻어 졸고를 계속 쓸 수 있었습니다. 또 때로는 매서운 질책을 해주셔서 더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희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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