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발군의 업적을 내고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의 삶에는 그런 업적을 낼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추론하게 된다. 남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런 업적을 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재교육과 창의력 제고에 관해 세계적인 학자로 꼽히는 김경희 윌리엄메리대 교수의 최근 강연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자신의 분야에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학자인 만큼 강연 내내 겸손하지만 자신있는 자세로 창의력과 한국의 미래에 대해 자신의 연구 결과와 소신을 잘 전달해줬다.

김경희 윌리엄메리대 교수 / 예문아카이브 제공
김경희 윌리엄메리대 교수의 최근 강연
강연을 듣는 동안 내용도 좋았지만, 계속 필자의 마음 한편에서는 ‘어떤 힘’이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자기 분야에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지에 대해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필자는 김 교수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필자가 주임으로 있었던 교육대학원 상담심리전공에 그가 입학하면서부터 알게 됐다. 그 후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김 교수는 ‘창의력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E 폴 토런스에게 직접 배웠다. 2018년에는 ‘창의력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토런스상’을 외국인 처음으로 수상했다.
30세가 넘은 나이에 8살짜리 딸과 4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낯선 미국으로 떠나 ‘창의력 교육의 메카’라고 불리는 조지아주립대에 입학한 지 불과 2년 반 만에 박사학위를 받은 그 저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또 미국인 교수들도 평균 6~7년이 걸리는 종신교수 자격을 불과 3년 만에 딸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직도 보이지 않게 인종 편견이 존재하는 미국의 대학사회에서 동양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의 편견을 이기고 창의력 분야에 우뚝 선 학자로 성장하게 된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강의가 진행될수록 필자는 그 해답을 찾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해답은 한마디로 부모에게서 받은 인정(認定)과 사랑, 그리고 그런 심리적 자산 위에 쌓아올린 ‘긍정성’이었다. 김 교수의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까지만 수학하고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만 다니셨다. 그리고 글을 읽지 못한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글을 가르쳐줘 성경책을 읽게 되었다고 했다. 과수원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후에 교회 장로가 되셨다. 김 교수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은 ‘지식’이 아니었다.
김 교수가 초등학교 때 산수시험에서 30점을 맞았다. 그녀는 그것이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시험지를 접한 어머니가 “30점이나 맞았다니 너는 참 공부를 잘하는구나”라고 칭찬을 해주시면서 자신이 가지고 놀던 구슬로 더하기와 빼기를 알려주셨다. 그는 자신이 공부를 잘하는 줄 알았다. 지금도 그는 객관적인 사실과 관계없이 주관적으로는 자신이 공부를 잘하는 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그렇다고 하셨으니까.”
항상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과 같은 심리적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와서 물을 퍼가 저녁 때에는 물이 다 떨어지지만 염려할 필요가 없다. 밤을 지나고 나면 다시 맑은 물이 고일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 대부분은 어렸을 적에 부모에게서 마르지 않는 ‘인정’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비록 객관적인, 외적인 집안형편이 어려웠을지라도 부모로부터 끊임없는 인정과 사랑을 받으면 평생 동안 ‘마르지 않는 샘’을 마음속에 가지고 사는 큰 복을 누리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살면서 경험하는 시련에 굴복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높이뛰기 위한 ‘발판’으로 이용한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샘에서 나오는 인정을 먹으며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추진력을 갖는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또 하나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이다. 그의 어머니는 비록 세 아들을 일찍 잃었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 확신하셨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긍정적인 자세를 배웠고, 이것은 내 인생이라는 길에서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게 되는 힘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밑 빠진 독’과 같은 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아무리 낮에 열심히 물을 길어다 붓지만 아침에는 빈 독만 남아있는 것을 보고 좌절한다. 그리고 다시 낮 동안 쉬지 않고 독 안에 물을 부으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밤 사이 물이 빠져나간 빈 독을 보고 좌절하는 일을 반복한다. 마치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의 운명을 매일 되풀이하면서 살아간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다. 매일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독에 물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속 빈 강정’과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당연히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참된 기쁨을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
우리의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들은 한결같이 “남들처럼 해준 것이 없다”면서 자책한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많은 내담자를 만나면서 확신하게 된 사실은 ‘자녀는 부모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유한 부모를 두었지만 비행(非行)을 저지른 10대들은 한결같이 “우리 부모는 나에게 관심이 없어요. 용돈만 넉넉히 주면 할 일 다한 줄 알아요”라고 울면서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은 용돈이 아니라는 것’을 호소한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50대 후반의 한 남자도 아버지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면서 결국 오열하며 말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아버지가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어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 말을 듣고 싶어요.”
자녀들이 원하는 것은 값비싼 선물이나 두둑한 용돈, 고액과외가 아니다. 그것들은 부수적인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자녀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부모로부터의 ‘인정’과 사랑이다. 자녀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말이다. 그리고 “나는 네가 큰사람이 될 거라는 것을 믿는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라”라는 긍정의 마음이다.
돈이 없어도,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참 크고 많다. 오직 부모만이 줄 수 있는 큰 선물은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값지다. 모든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다. 오늘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사랑한다. 네가 멋있는 사람이 될 것을 믿어”라는 말을 해주자. 그러면 용기백배해서 더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