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헤어진 부모님의 재결합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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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재혼한 아내와 몇 년 전 사별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 후 아버지는 여러 심경의 변화를 겪으며 많이 달라졌다. 전처인 어머니와 진심으로 화해하길 바랐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은 냉랭했다.

사회가 점점 고령화 시대로 간다. 주변에 초고령 부모를 모신 머리 하얀 노인 자녀들을 종종 만난다. 의술의 발달로 고령 환자들의 수술도 적극 권장하며 삶의 질을 높인 수명 연장이 추세다. 90세를 훌쩍 넘긴 노인들이 고관절 수술이나 임플란트 시술을 받는 것도 가끔 보게 된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 / 경향자료사진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 / 경향자료사진

외면할 수 없는 아버지의 외로움

지난봄 집 근처 공원에서 만난 모녀가 생각난다. 귀밑머리에 예쁜 꽃을 꽂은 103세의 어머니를 75세 된 딸이 휠체어를 밀며 휴대폰으로 요리조리 사진 찍는 모습을 봤다. 시술하고 회복하는 중에 햇빛도 쐬고 꽃구경시켜 드리러 매일 나온다는 딸의 말이 참 듣기 좋았다.

꽃밭에서 할머니는 예전에 알던 노래를 작은 목소리로 부르며 아이같이 즐거워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103년을 견뎌온 할머니의 굽이진 삶에 존경의 미소를 건넸다. 나 또한 할머니께 “어쩜 이렇게 고우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주름진 손을 흔들어 답례하며 그 옛날 어릴 적 노래를 계속 흥얼거렸다. 한 세기가 지나는 세월 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은 저렇듯 평안해 보이는 모습이 참 경이로웠다.

이렇듯 고령의 노인들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에서 혜택이 보장된 복지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몸의 건강을 위해 의약품과 의술, 제도 등을 날로 발전시키는 반면 상대적으로 마음의 건강을 위한 배려는 더딘 것을 볼 때 참 안타깝다. 몸과 마음이 어디 죽는 날까지 떨어지는 법이 있을까. 몸 건강을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는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과 함께, 관계 맺고 있는 상대의 도움 없인 불가능하다. 특히 가족관계에서…. 그래서 103세 어머니와 75세 딸 모녀가 더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중년을 넘긴 자녀들이 노쇠한 부모를 모시는 문제로 종종 힘들어하는 것을 주변에서 본다. 사실 현재 자신들이 당면한 크고 작은 문제 대부분은 각자의 부모로부터 기인된 것이 많다. 그들은 ‘누가 부모님을 모시고, 어떻게 모시고,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 부담하는지’ 등 현실적인 문제로 괴로워하는 샌드위치 세대들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것을 인지하고 풀기도 전에 이미 그 문제에 직면해 있다.

병수씨 역시 부모 때문에 평생 마음이 아팠다. 일찍이 그의 부모는 성격상 문제로 다툼이 잦았고 아버지의 외도로 마침내 헤어졌다. 그는 어머니와 살았지만 다행히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지냈기에 부모 사이를 왕래하며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았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물론 어머니는 마음고생과 경제적 고충을 겪으면서도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버지 역시 재혼과 함께 딸 둘을 낳았지만 맏아들에 대한 애정과 경제적 지원만큼은 한결같았다. 그런 부모였기에 그는 지금 더더욱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를 용서 못하는 어머니

어머니는 남편의 외도와 이혼으로 어렵게 살았지만 이제는 주변 친구들과 어울리며 여생을 보낼 만큼 여유도 생겼다. 반면 아버지는 재혼한 아내와 몇 년 전 사별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 후 아버지는 여러 심경의 변화를 겪으며 많이 달라졌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전처인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아들을 잘 키워준 고마움을 깨닫고 어머니와 진심으로 화해하길 바랐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은 냉랭했다. 병수씨는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알기에 아버지의 회한과 외로움을 외면할 수 없었다. 수차례 화해를 시도했지만 어머니의 단호한 거절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어머니의 고통과 수치심을 누구보다 알지만 아버지의 외로움 또한 공감할 수 있었다.

“두 분은 나이에 비해 건강하고 경제적 여유도 있으니 이제라도 서로 합쳐 여생을 의지하며 지내면 좋겠는데 어머니께서 완강하네요. 어머니의 응어리진 마음이 풀릴 수 없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진심으로 어머니께 지난 과오를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지만 어머니의 완강한 태도에 쓸쓸히 혼자 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여동생들 역시 두 분이 합치길 원해요. 저 또한 어머니와 외롭게 자랐기에 어설프지만 이제라도 아버지랑 동생들이 함께하는 가족이길 바라는데 어머니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나 봐요.”

사람의 마음은 수학문제처럼 더하기 빼기의 문제가 아니다. 정서적인 문제다. 옆에서 보는 제3자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당사자들만이 느끼고 경험됐던 생생한 감정들이 세월이 지나도 고스란히 존재하는 법이다.

병수씨 아버지는 혈혈단신 월남해서 닥치는 대로 일했고 고생 끝에 돈 버는 방법을 터득하며 자기 사업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내와 함께 사는 방법은 어디서도 배우지 못했다. 자신이 고생해서 돈 벌어다 주는데 왜 아내가 불평하며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도무지 몰랐다. 아버지의 쓸쓸한 회한을 들으며 병수씨는 마음이 울컥했다. 이제는 자신도 그 당시 아버지 나이가 되어 가끔은 아내에게 느끼는 서운한 감정이기에 아버지 마음을 더 알 것 같았다.

“네 엄만 내가 그 여자에게 홀딱 빠져서 가정을 팽개친 줄 알지만…. 아니다. 고집 센 네 엄마가 그 당시 나를 조금만 받아줬음 좋았을 텐데. 내가 돈 버는 기계는 아니지 않니. 그때는 네 엄마가 나를 외면한다고만 생각하고 너무 화가 났었다. 이런 나를 네 엄마처럼 재혼한 그 여자도 힘들어했다. 그래서 결국 몸에 암이 생겨 죽은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두 여자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구나.” 아버지의 회한은 계속됐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야 겨우 알았다. 소중한 것을 모르고 너무도 내 맘대로 했다는 것을. 이제 내겐 너와 네 동생들, 가족이 전부다. 그리고 그 중심엔 네 엄마가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은데….” 그날 밤 소주잔을 앞에 놓고 풀어놓은 아버지의 얘기는 끝이 없었다.

병수씨의 아버지는 오늘도 혼자다. 그에게는 아들도 딸도 있고, 비록 이혼했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낳아준 아내도 있다. 무엇보다 이혼하고 사별하면서까지 집착하며 일군 재산도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중심을 잃은 지금 그에게 아무 것도 의미가 없었다.

용서는 첫 마디가 시작이다. 아무리 완강한 병수씨 어머니라도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목구멍을 타고 내뱉는, 가슴 터질 것 같은, 그래서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첫 마디를 누구보다 되뇌어 봤을 것이다. 오늘도 병수씨 어머니는 밖으로 나간다. 타들어가는 첫 마디를 위해 그 옛날 눈물 뿌리던 설움을 만나러 간 것은 아닐까. 열 마디 백 마디의 되새김을 통해 남편을 향한 어색한 첫 마디가 온전히 완성되는 날을 상상해본다. 노부부의 마음이 그들의 건강한 몸처럼 자유롭고 생기가 돌길 기대한다.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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