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민회관 ‘부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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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들어 위상 추락… 최근 들어 다양한 행사로 시민들 발길 늘어

1973년 10월 10일, 부산 동구 범일동에서 부산시민회관 개관식이 열렸다. 공식행사에 이어 열린 축하공연에 회전무대를 이용해 연주단이 등장하자 관람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공간이 부족해 상하좌우로 움직이지는 않아도, 무대가 회전하는 것만으로도 당시로서는 ‘최신식’이었다. 볼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무대가 돌아가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이야깃거리였다.

부산시민회관 전경 / 권기정 기자

부산시민회관 전경 / 권기정 기자

부산시민회관은 ‘200만 도시’ 부산의 자부심이었다. 1963년 직할시로 승격됐지만 변변한 공연장 하나 없던 부산시민에게 시민회관 건립은 10년의 숙원사업이었다. 2200석 규모의 대강당과 소강당, 전시실 등을 갖춘 4층짜리 건물로 9억6000만원이 투입됐다. 부산의 상징인 바다와 민속놀이인 강강술래에서 착안해 외부의 기둥을 곡선으로 설계한 것도 현대적 대형 건축물이 많지 않던 시절엔 참신함이었다.

70~80년대 대중예술 공연의 메카

시립예술단이 상주하면서 순수예술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렸지만 부산시민이 기억하는 시민회관은 대중예술이었다. 음악회, 연극 등은 관람석을 채우기에 급급했지만 대중가수의 공연은 인기가 높았다. 개관 첫해 월간팝송사에서 개최한 제3회 팝스·그랑프리 시상식 및 기념공연에는 관람석이 가득 찼다. 포크 부문에서 이장희와 양희은이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듬해엔 양파들(어니언스)과 윤항기가 수상했다.

공연, 전시회 외에도 패션쇼, 합동결혼식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1974년 3월에 열린 소설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버질 게오르규의 문학강연에는 자리가 모자라 관람객들이 바닥에 앉아 강연을 듣는 진풍경을 빚었다. 74년 12월에는 일본 도쿄의 한 사찰에 있던 2차 세계대전 전몰 한국인의 유골 922위가 봉환되면서 시민회관에서 위령제가 거행돼 주목을 받았다. 정권의 동원행사장으로도 많이 이용됐다. 유신헌정수호단합대회,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반공궐기대회 등은 단골 행사였다. 이 같은 행사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어쨌든 시민회관은 이때가 전성기였다.

많은 부산시민은 “70~80년대 시민회관 공연 관람 자체가 호사였다”고 입을 모았다. 공무원 김태우씨(52)는 “부산시민이면 시민회관이 어디에 있다는 건 알아도 안에 들어가보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며 “초등학교 시절 공연 관람 후에 며칠 동안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88년 부산 남구 대연동에 부산문화회관이 문을 열면서 시민회관의 위상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시립예술단이 문화회관으로 옮겨간 뒤 회관 운영도 어려움을 겪었다. 급기야 어린이들의 영화 단체관람 장소로 이용되는 형편이 됐다. 당시 상영된 대표적 작품이 김청기 감독의 영화 <우뢰매>였다.

1976년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제22회 아시아영화제’ / 부산시민회관 제공

1976년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제22회 아시아영화제’ / 부산시민회관 제공

소통하는 공연·전시로 다시금 주목

조각가 오유경씨(40)는 “어린 시절 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우뢰매>를 단체관람했다”며 “자리가 없어서 상영 내내 서서 봤는데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오씨는 “30년이 지나 그때 나이의 아들과 함께 시민회관을 찾아오니 감회가 새롭고, 시민회관이 항상 같은 자리에서 반겨주는 것 같아 흐뭇하다”고 말했다.

2001년 대규모 보수·증축공사를 실시해 2002년 재개관한 뒤 부산시 시설관리공단이 위탁운영을 하면서 변신을 꾀했다. 그러나 시민의 문화욕구를 충족하기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용객을 위한 카페도 만들고, 각종 공연 외에 월요일에는 국내외 영화를 상영했으나 시민회관은 시민의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문화사랑회원을 모집했지만 2017년 실적은 595명에 불과했다. 2003부터 2017년까지 해마다 빠짐없이 20억~30억원씩 적자가 났다. 부산시의 공식행사 외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8년 부산시민회관은 부산문화회관과 통합, 재단법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부산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선보이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시민뜨락축제’다. 봄꽃으로 예쁘게 단장한 시민회관 야외광장에선 매주 금요일 낮 12시를 전후해 작은 공연이 펼쳐진다. 직장인과 상인들은 우연히 공연을 마주하고는 광장 계단에 앉아 커피를 즐긴다. 부산시향과 지역 예술단체, 해외단체가 무대에 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시민회관에서 다양한 형태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 부산시민회관 제공

최근에는 부산시민회관에서 다양한 형태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 부산시민회관 제공

‘천원 음악회’도 인기다. 새해음악회와 송년음악회 입장료로 1000원을 받았다. 공연형식도 기존 틀을 깼다. 앙코르 연주시간에는 자유롭게 사진촬영을 하도록 했다. 낮은 도수의 샴페인과 와인도 제공했다. 관객의 호응도는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무료공연도 심심찮게 열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악극 <조선왕 멕베스>와 미술장터인 아트페어의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올해는 ‘반려동물전’과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클래식 음악회’를 무료로 진행할 계획이다. 또 부산관광공사와 함께 태종대에서 ‘반려동물 산책대회’를, 구포 개시장에서 ‘반려동물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전시실은 서예전 위주의 엄숙한 전시회에서 벗어나 과감한 기획전을 유치하면서 젊은이들이 모이고 있다. 오는 4월 30일까지 열리는 사진작가 노먼 파킨슨의 <스타일은 영원하다> 전시장은 색다른 분위기로 젊은이들이 인증샷을 찍는 명소가 됐다. 공연장 무대 체험행사인 ‘백스테이지 투어’는 참가 신청이 폭주하고 있다. 참신한 기획과 무료행사가 시민회관을 찾는 시민이 늘어나는 이유다.

박태성 부산시민회관본부장은 “공공 문화기관답게 공익성을 추구하는 게 부산시민회관의 목표”라며 “시민들이 편하고 쉽게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부산·권기정 전국사회부 기자 kw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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