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성인 발달, 나이가 중요한가? 사건이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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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발달 연구에는 크게 두 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규범적 위기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사건의 발생시기 모델’이다.

발달을 ‘성장’으로 보는지 ‘변화’로 보는지에 따라 우리 삶을 대하는 자세가 크게 달라진다. 전통적으로는 발달을 성장으로 보았다. ‘발달’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 정서, 지능 따위가 성장하거나 성숙함’ 또는 ‘학문, 기술, 문명, 사회 따위의 현상이 보다 높은 수준에 이름’이다. 발달은 항상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현재 발달이 이뤄졌다는 것은 전보다 어느 면에서건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청년기에는 신체나 지능이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체격을 보더라도 청년기에 가장 크고 그 이후에는 유지되거나 작아질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청년기까지만 발달한다.

영화 <웨딩드레스>의 한 장면 / 경향자료

영화 <웨딩드레스>의 한 장면 / 경향자료

하지만 발달을 성장으로 이해하는 이런 견해는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더 이상 우리의 삶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게 됐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인구의 ‘고령화’다. 즉, 현대인은 더 이상 청년기에 멈춘 발달의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청년기 이후에도 오래 산다.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82세이다. 이 말은 82세 즈음에 거의 대부분 사망한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사망 당시의 나이를 모두 평균했을 때 82세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발달이 청년기까지라면 그 이후의 긴 세월을 변화 없이 살아간다고 가정하는 것이 오히려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

기존의 이론이 현실을 잘 설명하지 못하면 다른 이론이나 설명체계가 기존의 것을 대체하게 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생애 발달’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전생애 발달심리학에서는 발달을 ‘변화’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즉, ‘발달은 시간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변화’라고 정의한다. 발달이 변화라면,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발달한다. 왜냐하면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신체적 측면, 심리적 측면, 영적 측면

우리의 삶은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신체적 측면이고, 둘째는 심리적 측면이며, 마지막으로 영적 측면이 있다.

이 세 가지 측면은 나이가 들면서 서로 다른 변화의 양상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신체적 측면은 나이가 들면서 긍정적으로 변화하다가 청년기에 절정에 이르고 후에는 점차 쇠퇴하는 양상을 보인다. 심리적 측면은 청년기 이후에도 계속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다가 노년기 말년에 이르러서야 쇠퇴한다. 예를 들면, 대인관계를 맺는 능력이라든지 사건이나 사물을 이해하는 능력은 청년기 이후에도 발달한다. 마지막으로 영적 측면은 아동기와 청년기에는 서서히 변화하다가 중년기 이후에 가서야 크게 변화한다. 다시 말하면 일반적으로 중년기 이후에 이르러서야 영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변화하고 발달한다.

성인발달 연구에는 크게 두 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규범적 위기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사건의 발생시기 모델’이다. 규범적 위기 모델에서는 사람이 연령에 따라 일정한 단계로 변화해간다고 가정한다. 이 모델에 따른 설명은 주로 삶을 몇 가지 시기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나누는 중요한 근거는 ‘생물학적’ 나이(연령)이다. 유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아동기는 대략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7세에 시작하고, 청소년기는 소위 ‘틴에이저’라고 부르는 13세 전후에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물론 우리의 삶을 몇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옳은지, 또 어떤 심리적 특징을 중심으로 나누는 것이 옳은지는 학자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이 모델에 속한 이론들은 공통점이 있다. 삶을 여러 시기로 나누고, 각 시기의 발달 양상은 다른 시기와 뚜렷이 구별되고, 또 각 시기에는 꼭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가정한다.

이 모델을 ‘규범적’ 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시기에는 동일한 행동 특성을 보이고 동일한 과제를 수행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규범에 크게 어긋나면 발달에 문제가 있는, 즉 ‘발달장애’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 각 시기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리고 ‘위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한 시기에서 다음 시기로 넘어갈 때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전 단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행동들이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다양한 각 시기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이 과제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하느냐 여부가 다음 단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성인기를 통해 연령과 관련된 변화의 순서를 예측할 수 있다는 규범적 위기 모델은 우리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 모델도 한계점이 있다. 성인기에 관한 많은 연구결과에 의하면, 연령과 성인발달 사이에는 처음에 가정했던 것보다 상관관계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의 발달은 환경이나 문화적 영향보다는 생물학적 영향을 크게 받지만, 성인기는 연령보다는 각자의 삶의 경험과 살아온 환경과 문화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 가지 모델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생

이런 제한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온 이론이 ‘사건의 발생시기 모델’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성인기 발달, 특히 성격 발달은 연령이 아니라 각자가 어떤 사건을 언제 경험하는지가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생물학적 나이’에서 ‘사회적 나이’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인생에서의 특정 사건들과 그 사건들이 발생하는 특정한 시기에 반응하며 발달한다.

인생의 중요한 사건은 ‘규범적’ 사건과 ‘비규범적’ 사건으로 나눌 수 있다. 규범적 사건은 성인 대부분에게 일어나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인생사건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대부분의 젊은이가 결혼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기에 결혼하는 것은 ‘규범적’ 사건이다. 하지만 만약에 40대가 넘어서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거나 10대에 결혼을 했다면 이것은 ‘비규범적’ 사건이 된다. 따라서 어느 사건이 규범적인지 비규범적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발생시기다. 대부분의 성인은 특정한 인생사건이 언제 일어나야 되는지에 대해 나름대로 예상하는 시기가 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사회적으로 규정돼 있다. 각 문화마다 결혼적령기가 정해져 있다. 특정 사건이 ‘적령기’ 즉, ‘적절한 시기(on-time)’에 일어나면 ‘적절치 않은 시기(off-time)’에 일어났을 때보다 무난히 넘어간다는 입장이다. 많은 스트레스를 야기하고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적령기를 벗어나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사건의 발생시기 모델은 규범적 위기 모델이 지나치게 성인발달을 연령을 기준으로 설명한 한계점을 극복하고 다양한 번인들의 중요성을 밝혔다. 하지만 이 모델 역시 한계점이 있다. 사건의 발생시기 모델은 안정보다는 변화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우리의 삶의 기본이 안정이고 이 안정이 위협받거나 깨지면 긴장이 발생하는 것인지, 아니면 변화가 기본이고 당연히 변화에 따른 긴장이 삶의 기본인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다만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변화에 의한 긴장이 발달의 원동력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변화보다는 안정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하나 사건 발생시기 모델이 더 분명히 밝혀야 할 주제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특정 사건인지 혹은 일상생활에서 겪는 지속적 경험 때문인지를 규명해야 한다. 예를 들면, 불행한 결혼생활의 원인이 ‘적절치 않은’ 시기에 결혼을 해서라기보다 오히려 배우자와의 지속적인 다툼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일지도 모른다. 삶은 어느 한 가지 모델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모델에 집착하기보다는 다양한 모델들을 살펴보는 것이 더 필요하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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