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반항하는 자녀와 순종하는 자녀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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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공개적으로 대드는 청소년 자녀는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순종하는 자녀보다는 심리적으로 더 건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자녀는 지금 청소년기에 해결해야 할 발달과제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17일 서울 관악구 학업중단지원센터에서 한 청소년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10월 17일 서울 관악구 학업중단지원센터에서 한 청소년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기르다가 나이 들면 죽는다. 이 과정에서 발달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을 발달주기라고 부른다. 각 시기에는 다른 시기와 다른 특징이 있고, 또한 그 시기에 해결해야만 하는 발달과제가 있다. 각 시기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면 다음 시기를 성공적으로 보내기가 쉽지 않다. 이미 성장해 다음 시기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지만 계속 미처 해결하지 못한 과제에 집착하기 때문에 충분한 발달을 이룰 수 없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가족도 발달해 간다. 각 발달단계를 보면 그 구조나 기능에 공통적인 특징과 변화가 나타난다. 각 단계 및 그에 해당하는 시기의 표준을 측정한 것이 가족주기이다. 가족주기는 가족이 생성되어 유지되고 소멸되기까지의 과정을 말한다. 부부와 미혼의 자녀로 이루어지는 핵가족을 모델로 삼는다면, 가족은 성인남녀의 결혼에 의해 성립되며 신혼기·육아기를 거쳐 성인이 된 자녀가 결혼하고 독립하면 다시 두 사람만 남아 중년기와 노년기를 보내게 된다.

중년 부모와 청소년이 제일 갈등 많아

2017년 통계청 인구동향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초혼연령은 32.9세이고 여자의 초혼연령은 30.2세다. 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가족은 남녀 모두 30대 초반에 시작된다. 그리고 결혼한 지 평균 2년이 지난 후 첫아이가 태어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2년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부부의 평균 출생아 수는 1.8명이었다. 결혼을 하면 평균 2명의 아이를 가진다고 보면 무방할 것 같다. 그리고 첫째와 둘째 사이에 2~3년의 간격이 있다면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점점 빨라지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는 시기인 13세를 청소년기의 시작이라고 볼 때 아버지의 나이가 48세, 어머니의 나이가 45세일 때 자녀가 청소년이 된다. 즉, 부모가 중년기에 접어드는 시기에 자녀는 청소년기에 접어든다고 볼 수 있다. 부모와 자녀의 생애발달주기를 가족주기와 함께 살펴보면 첫 번째 시기는 부모가 젊고 자녀가 어린 시기이다. 두 번째 시기는 부모가 중년이고 자녀가 청소년인 시기이다. 그 다음에는 부모가 노년이고 자녀가 성인인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부모가 사망하고 성인인 자녀만 남는 시기이다.

각각의 가족 구성원들은 이 과정에서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발달을 이루어간다. 가족주기 중에 제일 갈등이 많은 시기는 부모가 중년, 자녀가 청소년일 때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생애주기 중 제일 심리적 갈등이 많고 불안정한 두 시기 즉, 중년과 청소년이 겹치기 때문이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신의 중년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갈등이 많은데, 자녀는 또한 청소년이 되어 많은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중년은 그야말로 젊음과 늙음 가운데 낀 시기이다. 중년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더 이상 젊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시기’이다. 젊은이의 특징과 늙은이의 특징이 함께 나타나는 시기이다. 젊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을 느끼기 때문에 더욱더 일에 매달리고 성취지향적인 성향을 보인다. 동시에 젊음이 점차 사라지고 원하지 않는 늙음이 나타나는 것을 의식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옛날 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젊음이 사라진다는 것은 ‘한계’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늙어간다는 것을 부정하고 분노하고 억울해한다.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어보지 못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다고 느낀다. 이제 한 번 잘 살아볼 수 있을 시기에 늙어간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야속하다. “한 번만”을 외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이직을 하기도 하고, 미루던 이혼을 결행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더 늦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보려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중년의 부모는 자신의 한계를 자녀를 통해 극복하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자녀가 잘 되는 것이 곧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원히 사는 길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다시 관심이 자녀에게로 쏠리고 자녀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녀가 성공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주려는 노력을 한다.

더 이상 자녀를 붙잡지 말고 떠나보내야

청소년(靑少年)은 문자 그대로 어린이(少年)과 어른(靑年)이 함께 혼재하는 시기이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더 이상 어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시기이다. 어린이다운 삶에서 벗어나 어른의 삶을 살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생식이 가능한 시기로의 변화를 겪는 시기이다. 심리적으로는 부모에게 의존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한 성인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한편으로는 부모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독립하려는 마음이 혼재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갈등이 많고 불안정하다.

자녀와 가까워지려는 부모와 달리 청소년 자녀는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므로 부모와 신체적·심리적으로 멀어지려고 한다.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위해 청소년들은 의식적으로 부모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부모를 원망한다. 어렸을 때는 양순하고 부모 없으면 큰일날 것같이 따르던 자녀가 어느 날 갑자기 ‘괴물’로 변해 대들고 반항한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청소년 자녀들이 ‘이유 없는 반항’을 한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지만 세상에 이유가 없는 행동은 거의 없다. 다만 그 행동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중년의 부모, 특히 아버지들은 자녀들의 무례한 행동이나 언어를 유독 못참겠다고 호소하곤 한다. 부모에게 공개적으로 대드는 청소년 자녀는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순종하는 자녀보다는 심리적으로 더 건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자녀는 지금 청소년기에 해결해야 할 발달과제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모습이 거칠게 나타날 뿐이다. 순종적인 자녀는 아직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할 준비가 안 되어 있어 계속 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순종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부모와 자녀 모두 중요한 삶의 과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필요한 갈등이 증폭되고 회복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자녀만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서 독립해야 한다. 더 이상 자녀를 위해 자신이 희생했다는 마음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을 살아갈 준비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자녀를 붙잡지 말고 떠나보내야 한다. 떠나보내야 다시 돌아온다. 떠날 때보다는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의 원리는 가족 간에도 적용된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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