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떠돈다. 괴벨스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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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 극장>은 독일 나치스 정권 시절, 선전 장관을 지내며 히틀러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삶을 그린 연극이다. 어릴 적 골수염에 걸려 평생 한쪽 다리를 절며 살아야 했고, 그 때문에 학교에서나 군대에서나 무시당했던 그가 교묘한 선전·선동을 통해 나치스의 주요 인물로 급부상하게 된 것은 매우 드라마틱한 인생역전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히틀러가 자살한 다음날, 총리관저에서 아내 및 자식들과 함께 자살한 괴벨스의 최후는 그 자체로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괴벨스 자체가 매우 독특하고 흥미로운 인물이라 그의 삶의 궤적만 따라가도 재미있지만, 이 작품이 보다 의미를 갖는 지점은 실존 인물의 삶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절대권력이 어떻게 사람들을 선동하고 길들이는지, 또한 이를 위해 그들이 어떻게 검열 시스템을 사용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극단 파수꾼 제공

극단 파수꾼 제공

어린 시절, 괴벨스의 선생님은 “국가는 우리의 절대자이고 나는 국가의 음성을 듣는 자”라고 하면서 애국 의식을 강요하고, 국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는 학생은 무자비하게 처벌한다. “우리의 절대자는 하느님이고 나는 그 분의 음성을 듣는 자”라고 이야기하는 목사는 괴벨스의 장애야말로 하느님의 형벌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회개와 고통을 강요한다. 강압적이고 타자에게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자란 괴벨스는 절대자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깨닫고, 이를 국가 정치에 그대로 적용시키고자 한다.

히틀러를 찾아간 괴벨스는 “사람들은 분노하고, 분노를 풀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그 대상을 찾아주면 됩니다. 공공의 적을 만들어 줘야 이들이 분노하고 증오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야말로 국민을 열광시키는 힘이 있으니까요!” 하고 그를 설득해 나치스의 유태인 박해에 힘을 실어준다.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그 분노를 증폭시킨 뒤 그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아내 희생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는 방식은 나치스뿐만 아니라 수많은 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용해온 방식이다. 또한 대중을 길들이기 위해 언론을 장악하고 검열을 자행하는 괴벨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몇 년 전 한국의 현실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작품은 2016년 가을, 정부의 예술 검열을 화두로 이루어졌던 <권리장전 2016-검열각하> 시리즈를 통해 초연되었다. 당시의 민감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괴벨스 극장>의 메시지는 보다 선명하게 울려 퍼졌고, 지난해 재공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공연이 초연된 시기와 올 여름 사이에는 분명한 정치적·사회적인 온도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극중 괴벨스가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고 자신들의 ‘적’을 정의했듯이, 끊임없이 ‘우리’와 다른 쪽을 찾아내 분노하고, 그러한 분노를 이용하려는 움직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괴벨스 극장>에 등장하는 괴벨스의 경고는 오늘, 이곳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8월 8~19일, 대학로 예술공간 서울.

<김주연 연극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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