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전태일’ 대표 김종민 “결국 노동조합 결성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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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이민호군이 죽었다. 공장의 큼지막한 적재기가 머리 위로 내려오는데 이군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동영상은 마치 세월호 침몰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세월호 참사의 고2나 이민호의 고3이나 비슷한 또래다. 기자는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학생보다 현장실습 도중 숨진 산업과학고 이군의 죽음이 더 가슴 아프다.

이군의 산업재해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나오겠지만, 필시 세월호 참사처럼 어른들의 탐욕이 주된 원인이었을 것이다. 지난 1월에는 통신사 콜센터에서 실습 중이던 고3 여학생이 ‘아빠, 나 오늘도 콜 수 못 채웠어, 늦게 퇴근할 것 같아’라는 문자를 남기고 자살했다. 언제까지 어른들의 탐욕에 이렇게 어린 노동자들이 희생돼야 하는가.

청년 노동운동 단체인 ‘청년 전태일’ 김종민 대표(32)는 사고 직후부터 제주도 현장에서 머물고 있다. 청년 전태일은 전태일이 그랬듯이 청년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노동문제를 바라보고, 스스로 개선책을 논의하는 단체다.

“민호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회사는 민호가 정지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적재기를 고치러 갔다는 등 사고의 책임이 민호 과실이라는 내용으로 된 산재신청서에 부모의 사인을 받았다. 민호 아버지가 나중에 그 서명이 잘못됐으니 바꾸겠다고 하는데도 회사는 ‘바꾸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사장은 처음에 조문조차 않다가 이 사건이 언론에 크게 문제가 되니까 그때서야 와서 사과했다. 회사 차원의 재발방지 대책도 아직 마련하지 않고 있다.”

[원희복의 인물탐구]‘청년 전태일’ 대표 김종민 “결국 노동조합 결성이 답이다”

촛불 든 특성화고 권리연합회

으레 그렇듯 회사는 이번 사고에서 책임회피에 급급했다. 게다가 회사는 이군의 사고가 난 다음에도 다른 실습생들에게 야근을 시킨 것으로 드러나 공분을 사고 있다. 현재 이군의 장례절차는 중단돼 있다. 민주노총과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등 20여개 단체가 합쳐 제주지역 대책위를 만들어 유가족을 지원하고 있다.

김 대표는 ‘특성화고 권리연합회’ 멘토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번 사고가 났다는 얘기를 듣고 청년 전태일 회원들과 특성화고 권리연합회는 20일부터 광화문에서 “왜 현장실습을 하다 죽어야 합니까?”라며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21일 그는 제주로 달려갔다.

-이번 사고의 원인은 뭐라 보나.

“우선 회사가 문제다. 회사가 실습생을 학생으로 대하지 않고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기계를 혼자 맡겼다.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특성화고 실습생을 사용한 것이다. 또 해당 학교와 교육청 등이 학생이 실습 나간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실제적 차별 등 이 세 가지가 빚어낸 참극이다.”

-이군과 회사는 현장실습 표준협약서까지 작성했다. 어떤 부분이 법을 위반한 것인가.

“이군은 하루 평균 14시간을 근무했다. 실습생은 7시간 근무에 본인 동의하에 1시간 연장해 하루 8시간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표준협약서는 아무리 본인이 동의하고 서명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취업을 하려는 당사자들은 그것을 거부하기 어렵다.”

-산업재해에 대한 회사의 안전불감도 주요 원인 아닐까. 회사 정규 책임자가 퇴사한 상태에서 실습생이 5일 만에 사실상 책임자가 됐더라. 안전확보 인력이 없으면 가동을 중단하는 것이 정상인데, ‘설마 사고가 나겠나’라는 ‘설마’가 또 사람을 잡은 것 아닐까.

“그렇다. 실습생을 혼자 작업하게 둔 회사의 안전불감증이 문제다.”

세월호 참사도 그렇지만 ‘설마’ 하는 안전불감증의 배경은 돈을 더 벌기 위한 어른들의 탐욕이다. 낡은 배의 구조를 변경하고 과적하고, 값싼 인력을 쓴 것이나, 정규사원 없이 안전장치가 고장난 기계를 계속 돌린 것이나 똑같다. 특히 2008년부터 특성화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취업률과 연계시키면서 학교는 무분별하게 학생을 취업전선으로 내몰고 있다.

이번 사고에 대해 특성화고 권리연합회는 현장실습 5대 문제와 대안을 제시했다. 그것은 ▲의무와 강요인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학생 선택형으로 전환할 것 ▲비정상적인 특성화고 3학년 2학기 수업을 ‘사회진출학기제’로 개선할 것 ▲현장실습 전담기구를 설립할 것 ▲청소년 노동보호법을 제정할 것 ▲즉시 현장실습 전수조사를 실시할 것이다.

고졸 청년들의 요구와 목소리 대변

김 대표는 지난해 5월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진상조사단에도 참여했다. 그때도 안전과 청년 비정규직 문제가 한참 거론됐다. 사실 구의역 사고 이후 정부와 정치권은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개정안과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으나 상임위 논의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현장 실습생에게 ‘업체의 요구를 준수하고, 아니면 어떤 처벌도 감수한다’는 서약서까지 쓰게 만든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폐지를 권고했지만 17개 교육청 중 14곳은 아직 폐지하지 않고 있다. 사고가 났을 때만 반짝 호들갑을 떨지 계속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정부는 12월 1일 대대적인 개선책을 발표했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청년 전태일’은 2016년 2월 김 대표를 비롯한 청년노동자들이 만든 단체로 현재 13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나눈다는 명분으로 저성과자 해고와 함께 노동자에게 불리한 근로조건을 도입할 수 있는 2대 노동개악을 추진했다.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청년 일자리를 하도 강조해 당사자인 우리 청년들의 요구와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로 이 단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미 ‘청년유니온’이나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청년하다’ 등의 청년 노동운동 단체가 있지만, 이들은 대체로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청년 전태일은 고졸자가 저지 않다. 그동안 청년 전태일은 지하철 안전업무직 청년들의 정규직 전환 운동과 청년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을 돕는 연대활동을 해 왔다. 올 들어 최저임금 1만원 실현운동을 추진, 회원들이 1만원짜리 탈을 쓰고 문재인·안철수 대통령 후보를 찾아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5월에는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장미파업’ 행사를 가졌고, 최근에는 강사들을 모시고 사회심리학과 노동문제 등을 공부하는 ‘퇴근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김종민 대표를 비롯한 ‘청년 전태일’ 회원들이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요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청년전태일 제공

김종민 대표를 비롯한 ‘청년 전태일’ 회원들이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요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청년전태일 제공

-청년노동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사회가 됐다. 일부 공무원이나 공사 등과 중견기업 정규직 입사자를 제외한 나머지 80% 이상이 다 비정규직·저임금이다. 이 불안정하고 열악한 구조적 조건에서 청년들은 극심한 심리적 좌절과 갈등을 겪고 있다.”

-서울대 병원 실습 간호사도 수십만 원밖에 임금을 주지 않고, 유명 패션회사도 100만원도 안되는 임금으로 열정페이를 강요하고 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가는 이유가 뭔가.

“스펙이 된다고 하니까 간다. 일자리가 없는 상태에서는 청년들끼리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인턴 경험을 쌓아야 나중에 취업이 용이하다. 그것을 악용하는 회사들이 많다. 젊은 사람들의 열정을 값싼 노동력으로 대체하려는 것, 우리는 그것을 ‘꿈을 빨아 먹는다’고 한다.”

-대기업 노조가 귀족 노조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 세대가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자식 세대를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나.

“우리 회원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사회의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이 둘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에게 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야 한다. 추가고용을 않는 회사에 대해 규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이 늘상 하던 얘기가 ‘요즘 젊은이들은 힘들거나 지방에서의 일을 안 하려 한다’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부모님 세대들은 그런 인식을 가질 수 있지만, 만약 자기 자식을 일이 험하고, 근무지도 시골에 보낸다면 동의할까. 게다가 그런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에 미래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생활 자체가 어렵다.”

효선·미선 촛불 들면서 사회활동에 관심

김 대표는 1986년생으로 중앙고·서울시립대 국사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총학생회장 시절인 2003년 효선·미선 촛불 청소년 대책위원회 일을 하면서 사회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4~2005년 ‘18세 선거권 낮추기 공동연대’ 대표로 선거권을 19세로 인하하는 데 기여했다.

2011년 대학 총학생회장으로 반값 등록금 운동을 벌여 박원순 서울시장과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는 “2011년 서울시립대 황승원 학우가 아르바이트를 하다 이마트 냉동창고에서 질식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그는 등록금 대출금 빚 1000만원을 갚기 위해 그 멀리까지 알바를 갔던 것”이라고 당시 반값 등록금 운동 배경을 설명했다.

2012년 8월 대학을 졸업하고 2014년 군대에 다녀온 그는 방과후 강사 자격증을 따 초등학교 역사논술 강의를 했다. 그는 “13만명이나 되는 방과후 강사 역시 비정규직(특수고용직)에 보수도 굉장히 열악하다”면서 “2개 학교 방과후 강사를 했지만 월 90~100만원 정도 수입밖에 안됐다”고 말했다.

청년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며 요구한 것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였다. 최소한 법대로, 법을 지켜달라는 요구였다. 이를 위해 특성화고 3학년 학생들에게 노동법이나 최소한 근로기준법 교육을 시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자신의 노동권리를 알고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최근 몇 시간씩 하고 있는데 강당에 몇백 명 모아놓고 형식적으로 강의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전태일 죽음 이후 결국 청계피복노조를 만들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고, 이나마 노동조건 개선이 이뤄졌다.

김 대표도 “결국 노조가 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노조 가입률이 10% 남짓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노조를 쉽게 만들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를 불온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여전하다. 바로 1년 전 박근혜 정부는 쉬운 해고와 노조 무력화를 시도하는 이른바 2대 지침을 만들고, 심지어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하고, 조합원 80만명의 합법적 노조위원장까지 구속했다.

새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는 소득주도 성장에서 중요한 것은 노조의 역할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역시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조차 속시원히 이행할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글·사진 원희복 선임기자·우철훈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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