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자유한국당, 김장겸과 함께 침몰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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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년간 집권을 하면서 현 자유한국당 세력은 과거 정권에 대한 종북공세와 색깔론으로 부패와 무능을 덮었고, 거기에 동원된 일등공신은 MBC였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몰려갔다. 방통위가 공석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들을 합법적으로 선임하는 걸 막겠다는 이유였지만 그 의도는 명확해 보였다. 일종의 그림 만들기다. 새로 선임된 2명의 방문진 이사들을 포함하면 9명 중 5명의 이사가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해 불신임할 태세이니 그걸 빌미로 국회를 보이콧하겠다는 게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협박이었다.

자유한국당의 어깃장은 거꾸로 그동안 MBC가 얼마나 자유한국당과 극우세력들의 입맛에 맞는 기관방송이었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정원 문건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민의 재산인 공영방송을 지난 9년간 마음대로 이용해 왔다는 점은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와 유사하다. 구성원 90%, 2000여명이 파업을 해 공영방송사가 완전히 망가져 가는데도 해결을 하려는 게 아니라 김장겸 사장만을 보호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 행태는 마치 구치소에 가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키지도 못하고, 친박 핵심 의원도 정리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양새와 비슷해 보인다. 국민 여론을 거꾸로 읽어 함께 몰락하는 꼴이다.

자유한국당 방송장악저지투쟁특위 소속 의원들이 10월 2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항의방문을 마친 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공영방송 보궐이사 임명 문제와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를 항의방문하면서 오전 예정됐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는 파행됐다. 한편 자유한국당은 이날 오후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국감 일정 보이콧 방안 등을 논의했다. / 연합

자유한국당 방송장악저지투쟁특위 소속 의원들이 10월 2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항의방문을 마친 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공영방송 보궐이사 임명 문제와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를 항의방문하면서 오전 예정됐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는 파행됐다. 한편 자유한국당은 이날 오후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국감 일정 보이콧 방안 등을 논의했다. / 연합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MBC

사실 지난 9년간 집권을 하면서 현 자유한국당 세력은 과거 정권에 대한 종북공세와 색깔론으로 부패와 무능을 덮었고, 거기에 동원된 일등공신은 MBC였다. MBC가 세월호 참사 보도는 축소하고, 고위공직자 비위 보도는 외면하고,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은 언급조차 회피하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구여권 세력은 흥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망했다. 권력에 줄을 댄 MBC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패와 무능으로 얼룩진 경영진들이 그걸 비판하는 노동조합을 악의 축으로 내몰며 실력 있는 구성원들을 내쫓았는데, 결국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고, 지금 신뢰도나 시청률 모두가 바닥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자유한국당과 MBC는 결탁을 넘어 행동방식도 비슷한 일란성 쌍둥이가 아닐까 싶다.

대중의 신뢰도 잃고 내부 구성원의 90% 이상에서 불신을 받는 실력 없는 MBC 경영진은 지난 9년간 연줄과 인맥, 로비로 자신들만의 공고한 성을 쌓았다. 김장겸 사장은 친박 핵심들과 모임을 하고, 안광한 전 사장은 정윤회와 연줄을 만들려고 안달을 했다. 사실 그렇지 않다면 이들이 그 높은 곳을 차지할 이유는 없었다. 정상적인 MBC였다면.

김재용 기자는 한국방송대상을 받은 유능한 기자였는데, 보도국에서 쫓겨나 수년간 예능을 홍보해 왔다. 그는 김장겸 사장이 기자 시절 작성한 모든 기사를 전수분석했다. 특징들이 있었다. 먼저 리포트 숫자는 눈에 띄게 적었고, 눈에 띄는 특종은 없었다. 김 사장이 한마디로 유능한 기자라고 할 만한 근거는 부족했다. 기자 시절 김 사장에 관한 설화(舌禍)는 풍부했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향해서는 ‘노무현과 비슷한 × 아니냐’는,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서는 ‘완전 깡패네’라는 막말을 주변에 거침없이 했다. 김 사장은 정치부장과 보도국장 시절 문재인·안철수 관련 대형오보를 냈고, 오보들은 방통심의위로부터 큰 감점을 받았다. 이런 치명적인 하자에도 MBC 사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일부 정치세력의 비호와 특정 인맥이 동원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MBC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저널리즘과 방송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과 실력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권력에 충성하고 복종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면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는 연수와 특파원, 부장, 국장, 본부장과 지역사 사장으로 이어지는 풍부한 떡고물이 주어졌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다.

손석희와 최승호

손석희와 최승호. 이 두 사람은 부박한 한국 저널리즘에서 단연 돋보이는 저널리스트이고 지금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는데, 커리어를 쌓은 건 ‘정상적인 MBC’에서였다. 두 사람 모두 출신 배경을 보면 이른바 한국에서 출세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내세울 만한 지연·학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들 입에서 그런 연고들을 들먹이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이들이 두각을 나타낼 때 함께했던 동료들 가운데 연고들로 엮인 경우도 없었다. 십수 년 전 정찬형 현 교통방송 사장이 ‘시선집중’을 만들면서 손석희 진행자를 선택할 때, 최승호 당시 ‘PD수첩’ 책임PD가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제보를 한학수 PD에게 맡길 때 무슨 연줄이나 연고가 작용할 수 없었다. MBC에서는 실력이 있고 성실하며, 언론과 프로그램에 대한 정직한 철학이 있다면 기회를 부여받았다. 김태호 PD를 비롯한 많은 스타 PD들이, 김수진 기자나 박혜진 아나운서 등 유능한 기자와 아나운서들이 그렇게 등용이 됐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현재 MBC를 점령한 경영진은 대중의 신뢰를 받는 방송인일수록 ‘좌빨’이라며 미워하고 심지어 쫓아냈으니 MBC 경쟁력은 바닥을 기고 있을 수밖에. MBC는 단순히 극우방송이 아니라 실력 없고 인기도 없는 싸구려 방송사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헌법적 가치로 여긴다. 손석희와 최승호는 저널리스트로서 이 가치들을 지향했다. 김재철 사장 이후 MBC는 두 가지를 모두 부정하는 신공을 보였는데, 사장들은 모두 ‘공정한 경쟁, 민주적 절차’라는 가치를 일부러 죽이러 온 저승사자 같았다. 결국 시장에서 가장 뛰어난 평가를 받았던 그 둘을 강제로 내쫓았고, 그렇게 점령한 MBC를 권력에 바쳤다. 그들은 보수적인 세력이 아니라 그냥 권력을 탐하는 세력들이었다.

구여권 정치세력은 MBC라는 공적기구를 이용하기 위해서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을 불법적으로 동원했다. 목적은 단 한 가지, 여론시장을 교란시켜 자신들의 사익을 지키려 했고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그런 면에서 구여권 정치세력을 ‘보수적’이라고 부르는 건 타당하지 않다. 그들은 치열한 토론과 연구를 통해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다른 정치세력과 선의의 경쟁을 도모해야 할 때 부당한 권력을 비호하며 그 과실을 공짜로 따먹으려 했다. 그러는 사이 ‘최순실’이라는 독버섯이 자랐고, 정치적인 자생력은 제로가 되었다. 제발 이제 공영방송을 당신들의 손아귀에서 놓아주길 권한다. 그런 방식은 유권자들에게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게 당신들이 살 길이다. 이순신 장군도 말하지 않았는가. 죽어야 살 수 있다고.

<김재영 MBC PD (PD수첩 등 연출, 현재 송출업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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