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압 속에서 MBC 노동조합은 단 한 번도 더러운 타협을 하지 않았다. 공정방송 조항을 단체협약에서 없애면 모든 걸 들어주겠다는 회사 측 회유에 굴복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위관료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MBC 화면에 등장했다. 특히 안광한 전 MBC 사장이 지시해서 만들었다는 <이슈를 말한다>라는 토론 프로그램에 이기권 장관은 단골로 출연했는데, ‘쉬운 해고’를 쉽게 해주는 박근혜식 노동개혁(?) 방안을 주로 다루었다. 노사(勞使), 노·정(勞政) 간에 이해와 찬반이 분명했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노동부 장관 홀로 원맨쇼를 펼쳤다. 당시 안광한 사장 등 MBC 경영진은 숱한 부당노동행위로 고용노동부에 고발당한 처지였다. 전문직 방송인들이 이유 없이 해고와 징계를 당하고, 기자·PD·아나운서가 스케이트장이나 지역 왕갈비 축제를 유치·관리하는 일들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노동탄압이 일상으로 벌어지는 현장에 와서 주무관청 장관은 “정부는 쉬운 해고가 벌어지지 않게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았고, 고스란히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타고 전국에 송출되었다. 이 일을 지켜보는 건 고통스러웠는데 ‘저들 사이에 무슨 거래가 있지 않다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정방송 보고서 찢어버린 보도국장
2015∼16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 노동조합)를 이끌 집행부는 쉽게 구성될 수 없었다. 6명의 해고자, 200명이 넘는 징계자와 유배자들이 있었다. 회사 측은 보직간부들에게 노조탈퇴서를 요구했고, 조합을 탈퇴하지 않는 사람들은 승진에서 누락되고 인사고과를 낮게 받는 수모를 겪었다. 조합원 숫자는 1000여명에서 800여명 수준으로 나날이 줄어들었다. 노동조합 위원장, 혹은 집행부를 한다는 의미는 앞으로 몇 년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개인적인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1990년대 중반에 입사한 이들이 순서상 위원장을 맡아야 했지만 모두 고사했고, 결국 세월을 거슬러 1987년에 입사한 조능희 PD가 이 중책을 맡았는데 “나는 부당해고를 당해도 (정년이) 가까우니 괜찮다”고 말하며 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이호찬 기자는 2003년 입사한 기자였고, ‘조능희 집행부’에서 보도부문 민주화방송실천협의회(이하 민실위) 간사를 맡았다. 그는 매일 고통스럽게 <뉴스데스크>를 모니터했고, 문제가 있는 기사들을 분석해 ‘민실위 보고서’를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빠짐없이 해온 MBC 노동조합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최기화 보도국장은 이 당연한 노동조합의 업무를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이호찬 기자가 보도국에 출입하는 것도, 보도국 뉴스시스템에 접속하는 것도 막았을 뿐 아니라 “민실위 간사 전화도 받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최기화 국장은 어느 날 노동조합의 비판에 화가 났고, 보도국 캐비닛 위에 놓여 있던 노동조합 보고서를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노동조합이 하는 일상적 활동을 방해하고 공정방송 주체인 기자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부당노동행위’가 분명했다. 이때 경영진은 MBC에 단골로 출연하던 이기권 장관을 소환했던 것으로 보인다. 10월 28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최기화 보도국장이 공정방송 관련 노동조합 보고서를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린 행위’에 대한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결정을 앞두고 고용노동부 고위급 관계자를 통해 이기권 장관의 뜻이 전달되었다. “시간을 갖고 봐달라…. MBC(고위층)가 노동부 장관과 고위관료 만나는 자리에서 굉장히 억울하다고 하니까… (만약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하면) 편파판정했다는 공격이 MBC에서 들어올 거 같다.” 당연히 외압으로 작용할 말들이 오고갔다고 한다.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서 MBC 경영진과 이기권 장관 등 고위급 관료들이 MBC 경영진이 사유화한 뉴스와 프로그램을 매개로 부당거래를 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MBC 경영진은 아마도 자신감이 넘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MBC 경영진은 정부에 불리할 노동 관련 아이템을 집요할 정도로 방해했고, 거의 전파를 타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MBC 방송강령에는 노사문제 같이 이해가 갈리는 경우에는 양쪽 의견을 충분히 다루어줄 것과 사회적 약자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문구들이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교양PD였던 김종우 PD는 ‘쉬운 해고’가 사회적 쟁점이 되었을 때
공포정치를 이긴 MBC 노동조합
결과적으로 이러한 모든 노력(?)에도 ‘보도국장이 민실위 보고서를 찢어서 버린’ 이성을 잃은 행동은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로 판정이 됐다. 장관의 노골적인 외압이 제대로 먹히지 않을 만큼 정도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조능희 당시 MBC 노동조합 위원장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시절 MBC의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온 고용노동부 조사관들은 많이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법원으로부터 숱하게 ‘징계가 경영권의 범위를 넘어선 남용’이라고 판정하고 있는 마당에, 회사 고위 본부장은 극우매체 언론인과 만나 “최승호·박성제는 이유없이 해고했다”고 실토하고 있는 마당에, 그런 경영진들의 불법행위들을 덮고 근로감독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건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MBC 상암동 사옥을 들어서면 고성능 CCTV를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청원경찰들이 지키고 서 있는 곳마다 고성능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노동조합이 주최하는 사내외 집회가 있을 때마다 청원경찰들과 외부에서 고용된 전문가들이 불법 채증을 시도했다. 집회에 참가하려는 조합원들을 위협하는 노골적인 행위였다. 파업 찬반투표를 하는 투표소를 무단으로 촬영하다가 들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공영방송에서 쓰는 카메라가 시민들의 자유를 지키는 수단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는 공포정치에 쓰였다.
얼마 전 집회에서 전임 조능희 위원장은 “MBC 노동조합은 탄압 3종세트에도 싸우고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노동조합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여기서 탄압 3종세트란 ‘어용노조, 손배가압류 소송, 무단협’이었는데, 여기에 더한 일상적인 탄압은 헤아릴 수도 없었다. MBC 회사 측의 부당노동행위는 “문명국가에서 가장 사악한 정도”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이러한 탄압 속에서 MBC 노동조합은 단 한 번도 더러운 타협을 하지 않았다. 공정방송 조항을 단체협약에서 없애면 모든 걸 들어주겠다는 회사 측 회유에 굴복하지 않았다. 민실위 보고서를 작성하며 방송을 사유화한 이들에 대한 기록을 멈추지 않았고, 해고와 징계에 대한 법적 투쟁, 또 사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부당노동행위에 분연히 맞서 싸웠다. 노동조합 집행부는 계속 재생산되었다. 이러한 노동조합이 있었기에 개별 개인들 차원에서 저항을 유예했어도 우리 모두는 버틸 수가 있었다. 이제 이 모든 싸움의 종착역이 멀지 않았다.
<김재영 MBC PD (PD수첩 등 연출, 현재 송출업무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