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MBC, 드디어 봄이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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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월급을 포기하며 한목소리로 사장 퇴진을 외쳤던 적이 있었는가? 언제 절반 이상의 보직간부들이 사퇴를 하며 사장 용퇴를 건의했는가?

MBC의 이사회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김원배 이사가 10월 18일 사의를 표명했다. 9명의 이사 가운데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과 그 세력들(구여권)이 추천한 이사가 6명이었는데, 유의선 이사와 김원배 이사가 사의를 표명해 4명만 남게 되었다. 현 김장겸 사장 체제를 만든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일파가 소수파가 된 것이다. 산술적으로 불리하게 된 고영주 이사장은 언론에 ‘조만간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10월 25일 방송통신위원회가 2명의 보궐이사를 선임하면, 5명의 과반수 이사들은 각종 불법과 부당노동행위로 얼룩진 MBC 문제와 50일 넘게 진행된 파업을 풀기 위해 조치를 취할 것이다. 고영주 이사장과 김장겸 사장은 이제 시한부 운명이 되었다. MBC 구성원들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이후 처음으로 기대감에 들떠 있다. 제대로 된 회사, 오직 시청자만을 바라보는 공영방송을 재건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10월 13일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시청자미디어재단 등에 대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 앞에서 MBC노조원들이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해임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가운데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국감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10월 13일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시청자미디어재단 등에 대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 앞에서 MBC노조원들이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해임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가운데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국감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자유한국당의 적반하장

이 와중에도 방문진 구여권 추천 이사들과 자유한국당은 현 정부의 방송장악 음모라는 철 지난 레퍼토리를 읊어대고 있다. 2명의 이사가 제풀에 사표를 낸 상황을 언론노조의 압력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그 프레임은 두 가지 이유로 설득력을 얻을 수가 없다.

먼저 이사들 스스로 낸 사표를 두고 언론노조 ‘강압’ 때문이라는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서슬 퍼런 청와대, 방통위, 국정원도 아니고 일개 노동조합이 이사들을 겁박할 물리적 수단을 가질 수는 없다. 노동조합은 MBC가 더 이상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명분으로 ‘무노동 무임금’, 월급을 두 달째 포기하고 파업을 하면서 이들의 책임 있는 사퇴를 요구했다. 굳이 국가권력을 이용해 음모론적으로 해결을 도모했다면 이런 희생을 마다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시민사회와 학계, 여론이 이러한 진정성 있는 행동에 합세했다.

게다가 권력이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음모론적 해석은 오히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다는 게 주지의 사실로 판명났다. 이들의 프레임은 더욱 초라해졌다. 최근 밝혀진 국정원 문건뿐이었던가. 너무나 많은 사실들이 가리키고 있었다.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가 지난 10년을 완벽하게 지배했다는 걸.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임명했던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은 제 입으로 “김재철 MBC 사장이 청와대에 쪼인트 까여가며 좌파를 척결했다”고 언론사 인터뷰에서 자백했다. 청와대가 방송사 인사에까지 개입했다고 스스로 강력한 증거를 제공했다. 이 사건 직전에는 MB 측근이었던 김재철 사장을 임명하기 위해서 엄기영 당시 사장을 내쫓아야 했는데, 방법은 치졸했다. 김우룡 이사장은 보도와 제작, 두 핵심 이사에 대한 임명권을 빼앗았고, 엄 사장은 결국 치욕 속에 사표를 냈다. 김 이사장의 요구는 엄연히 법 테두리를 벗어난 월권이었고 불법이었다. 이를 감독할 책임은 방송통신위원회에 있었지만, 당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방기했다. 엄기영 전 사장은 권력에 기댈 곳이 없었는데, 당시 이근행 노조위원장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동관 홍보수석, 이재오 의원과도 통화를 했는데, (버틸)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권력 핵심 그룹이 개입했다는 강력한 증거들 속에서 김우룡 이사장에 의해 엄기영 사장은 사퇴했다. 적어도 권력이 개입한 사퇴라면 이 정도 사실은 있어야 되는 거 아니겠는가.

MBC 파업, 승리가 멀지 않았지만…

MBC 파업은 끝까지 가고 있다. MBC에서 정상적으로 나가는 프로그램은 그나마 드라마가 전부였는데, 드라마 PD들의 결의로 드라마들도 릴레이로 줄줄이 결방하게 되었다. 한국 TV 역사상 유례 없는 일이다. 일반 기업의 파업도 사회문제가 되면 당국이 조정에 나서는 게 순리다. 하물며 국민의 재산이고,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엄연한 공영방송의 파업이다. 문제를 풀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 고용노동부 등등이 나서는 게 당연하다. 당면한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을 향해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적폐위원장’, ‘방송장악위원장’이라며 국회에서 어깃장을 놓고 있다. 전형적인 적반하장이다.

2000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월급을 포기하며 한목소리로 사장 퇴진을 외쳤던 적이 있었는가? 언제 절반 이상의 보직간부들이 사퇴를 하며 사장 용퇴를 건의했는가? 역사적으로 비교 불가능한 공영방송사 파업에 대해 이효성 방통위원회가 쓴다는 도구의 이름은 ‘검사감독권’이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구성원이 보기에는 그 약한 권한을 쓰면서도 자유한국당 의원들 앞에서 벌벌 떠는 것이 현 방송통신위원회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시절 MBC를 장악한다며 국가정보원이 불법 비밀문건을 만들어내고, 권력 핵심들은 연일 점령군처럼 MBC DNA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 도대체 MBC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나?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생떼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MBC에서 적색 테러라도 났어야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바로 그 시절, 국정원이 MBC 거의 모든 구성원을 ‘좌파’로 규정하면서 공격하던 2010년, 아이러니하게도 MBC는 가장 신뢰받고 사랑받는 채널이었다. 이명박·박근혜를 추종하던 이들은 MBC가 지향하는 가치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MBC를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이 우스꽝스러운 역사 앞에 우리는 웃을 수가 없다. 김장겸 사장이 부장에서 사장이 되는 그 10년 사이 많은 이들이 천직에서 쫓겨났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가며 알 수 없는 세월을 보냈다. 누군가는 우울증 약으로 버텼고, 또 누군가는 암을 얻어 투병 중이다. MBC는 신뢰도가 가장 낮은 언론사가 되었다. 갈등과 상처의 골은 깊고, 아프다. 해방은 멀지 않았지만 재건의 길은 아직 멀었다.

<김재영 MBC PD (PD수첩 등 연출, 현재 송출업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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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용산의 역경루
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