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달라도 너무 다른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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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밖에 없는데 그 집 맏며느리라고 너도 못 믿겠고 어떡하니? 내 몸 내가 챙겨야지. 이젠 내 인생도 즐기며 살고 싶어 복지관도 나가고 친구들도 사귀는 거야. 결국 이게 다 널 위하는 거야.”

명숙씨는 명절이 가까워 오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어머니 때문에 오늘도 괴롭다.

시어머님과 친정엄마는 두 살 차이다. 그러나 친정엄마가 10년은 젊어 보인다. 두 분 다 남편을 사별하고 쓸쓸한 노후를 보낸다. 시어머님은 세 아들이 장성한 후에 남편과 사별했지만 친정엄마는 일찍 딸 하나만 데리고 사별한 청상과부다. 그래서 엄마와 딸은 자매처럼 지냈다. 명숙씨가 결혼 얘기를 꺼냈을 때 엄마는 무척 당황했다. 홀어머니의 마음을 명숙씨도 짐작했지만 그녀 역시 편치 않았다. 그러나 시어머님과 친정엄마가 상견례를 하던 날, 두 분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듯 서로를 반겼다. 그동안 혼자 자식 키우시느라 힘들었던 공통 화제를 나누며 새롭게 자식들을 얻은 기쁨으로 금방 친해졌다. 사돈이 어려운 사이지만 앞으로 자매같이 친하게 지내자고 의기투합하는 모습이 한편 기쁘고 한편으론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넌 웬 복이 많아 좋은 시어머니에 잘 생긴 남편을 만났니?” 친정엄마 역시 진담 반 농담 반 시샘하듯 말했다. 그런 엄마 모습에 결혼을 앞둔 명숙씨 마음 역시 위안이 됐다.

손녀를 돌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계 없음) / 경향신문 자료사진

손녀를 돌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계 없음) / 경향신문 자료사진

‘형님 동생’ 하며 가깝게 지내는 두 어머니

“다, 엄마 덕분이야. 엄마가 나를 이렇게 잘 키워줘서 내가 복이 많나봐. 그동안 나만 바라보고 지내온 것 고맙고 미안해. 내가 김 서방이랑 잘 살면서 엄마한테 효도하며 갚을게. 엄만 오직 건강하게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주시면 돼.”

“그래, 이젠 우리도 시끌벅적 재밌게 살자.” 명숙씨도 엄마도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다독였다.

덕분에 결혼 준비과정도 양가 어머니들의 배려로 순조롭게 진행됐고 두 어머님의 축복 속에 신혼생활 역시 순탄했다. 특히 시어머님께서 친정엄마의 외로웠던 지난 세월을 많이 공감하며 위로해주셨다. 그런 두 사돈을 주위에서 모두 부러워하며 축하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양가 어머님들과 함께 외식도 외출도 하곤 했다. 때론 두 분이 함께 여행도 다니시며 마치 친자매처럼 ‘형님 동생’ 하며 지냈다. 착하고 의젓한 남편은 시어머님에게는 믿음직한 맏아들이고 친정엄마에겐 든든한 남편 같은 아들이자 사위였다.

“우리 사위 잘생겼지? 나한테도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예뻐 죽겠어.” 친정엄마는 친구들에게 사위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때때로 친구들 모임에 사위를 불러 소개시키기도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쑥스럽지만 장모님을 위해 기꺼이 나갔다.

“친구 아들들이 가끔 엄마들 모임에 와서 식사대접하는 게 젤 부러웠는데, 나도 자네가 와서 한 턱 내니 그동안 쌓인 체증이 싹 가셨네. 정말 기쁘고 고마워. 다음에도 종종 해줄 거지?”

“그럼요. 어머니! 언제든 불러주세요.” 남편은 참 예쁘게도 말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신이 무슨 복이 있어 이렇게 좋은 신랑을 만났을까 생각했단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 팔짱을 꼭 끼며 같은 단지에 사는 시어머님댁에 잠시 들렸다 가자고 했다. 남편은 그녀 마음을 아는 듯 ‘괜찮다’며 다음에 편하게 들르자고 했다. 명숙씨는 시어머님을 잠시 생각했다. 맏며느리인 그녀를 많이 믿어주고 배려했다. 그럴수록 명숙씨는 때론 친정엄마보다 더 편안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친정엄마를 많이 챙겨주니 시어머님과 남편에게 정말 잘하고 싶었다.

외동딸 시집보낸 후 ‘텅빈 둥지’에서

그동안 명숙씨는 손아래 동서를 둘이나 맞이하고 아들도 둘 낳은 김씨 집안 맏며느리가 됐다. 직장 다니며 낳은 아들은 시어머님 손에서 주로 컸다. 시어머님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서네 아이도 종종 돌보느라 정말 힘들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시어머님에 대한 명숙씨의 마음은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고생하는 시어머님을 보며 친정엄마의 태도가 섭섭하고 시댁 식구들 보기도 민망했다.

“엄마, 도우미 아줌마가 와도 시어머님이 너무 힘드니 엄마가 민재 좀 잠깐씩 봐주면 안돼? 내가 시어머니 보기 너무 미안해서 그래.”

“얘는 네 엄마 거죽만 멀쩡하지 허리 약한 거 몰라서 그러니? 지난번에 네가 하도 야단이라 형님(시어머니)한테 물었더니 민재가 이젠 커서 할 만하다더라. 괜히 네가 호들갑 떨고 너무 그러지마. 그리고 나 복지관에서 새로 등록한 거 빠지면 안돼. 네 엄마 예전 같지 않다. 자꾸 배운 거 잊어버리고 그래. 빠지면 못 쫓아 간다고 그러더라.”

“엄마 그게 말이 돼? 우리 시어머니 원래 티 안내고 참는 것 몰라서 그래? 엄마 같지 않아. 그리고 이제 그 나이에 하모니카 배워서 뭐하게.”

“아니 누군 티내고 그러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너 시집가면서 나보고 뭐랬니. 건강하게 네 곁에 오래오래 있어달라며, 효도 한다고 하지 않았니. 나 얘들 봐줄 만큼 건강하지도 않고 사실 젊어서 너 하나 바라보고 살았는데 지금 내 곁에 누가 있니? 나 허리라도 삐끗해 봐라. 네가 돌볼 거니, 김 서방이 돌볼 거니. 형님(시어머니)이야 자식도 많고 며느리도 셋씩이니 돌아가며 돌봐줄 수 있지만 난 너밖에 없는데 그 집 맏며느리라고 너도 못 믿겠고 어떡하니? 내 몸 내가 챙겨야지. 이젠 내 인생도 즐기며 살고 싶어 복지관도 나가고 친구들도 사귀는 거야. 결국 이게 다 널 위하는 거야.”

“엄마, 뭐가 날 위한다는 거야. 엄마가 애를 봐주길 해, 살림을 해주길 해. 내가 놀면서 안온 것도 아니고 또 얘를 맨날 봐달라고 한 거 아니잖아. 그렇게 모르겠어? 엄마 해도 너무해. 엄만 자기만 생각하는 정말 이기적인 엄마야!” 명숙씨는 마침내 친정엄마에게 치명적인 말로 쏘아붙이고 말았다. 오직 이기적이라는 단어밖엔 생각나지 않았다.

“제가 너무 한 건가요?” 명숙씨는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웠단다.

“참 속상하고 혼란스러웠겠어요. 혹시 예전에도 엄마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었나요?”

“아니오. 엄만 저만 바라보고 사셨어요. 모든 걸 제게 맞추고 사셨죠. 오히려 그게 부담스러웠던 걸요. 그런데 나이가 드시면서 저렇게 자기 생각만 하시니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그럼요 상대방 생각 안 하고 자기 입장만 내세우면 기가 막히죠. 그런데 혹시 결혼 후 친정엄마 입장을 적극적으로 누가 헤아려 주셨나요?”

“그럼요. 제가 창피해서 말은 안 했지만, 명절마다 우리 가족을 기다리며 빨리 안 온다고 보채서 시어머님께서 아예 명절날 저희 시댁에 오셔서 같이 지내자고 했어요. 매번 오시는데 손님처럼 앉아 있고 어떨 땐 시이모님처럼 행동하시니 정말 민망하지요. 제가 맏며느리인데 시동생이랑 동서들 보기가 얼마나 난처한지 엄만 내 맘 모르실 거예요.” 명숙씨가 곤혹스러워 한다.

“난처했겠네요. 친정엄마가 눈치껏 알아서 하시면 좋았을 텐데, 많이 서운했겠어요.”

“…….” 갑자기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가만히 눈을 감는다.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눈치껏 알아서’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울컥하네요. 생각 못해봤는데 친정엄마가 그동안 외로움과 괴로움 사이에서 마음이 불편했겠구나 생각이 들며 정신이 번쩍 나요. 예전 같으면 불편할 수도 있는 자리에 안 갔을 엄만데, 왜 시어머니의 배려에 덥석 응했는지 이해가 안 되고 싫었거든요. 좀 참고 계시지. 왜 나 쪽 팔리게 저러시나 원망스럽고 시댁 가족들 눈치만 봤던 것 같아요.”

베푸는 자의 너그러움에 가려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온 세상과 같았던 딸을 시집보내고 ‘텅빈 둥지’ 같은 집에서 혼자 사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suh06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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