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의 지워진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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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도로는 언젠간 뚫리겠지만 어머니의 지워진 시간들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반복되는 학습에도 불구하고 매순간 조금씩 더 사라져가는 기억들 속에서 아쉬워하는 기색도 없이 사그라지는 것 같아 안쓰럽다.

오늘도 어머니 곁엔 아들이 있다. 어머니의 한 손에는 지팡이가, 다른 손에는 아들의 듬직한 손이 쥐어져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세상을 향해 두려움 없이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나선다.

일요일 아침마다 어머니의 몸놀림은 평소와는 달리 분주하다. 무엇을 가방에 넣고 나서야 되는지, 누굴 만날지 그녀는 훤히 안다. 왜 고운 옷을 차려입고 나서야 되는지 그녀는 그날 아침만큼은 누구에게 물을 것도 들을 것도 없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은 그녀에게 특별한 날이고, 미리 입력된 알람이 켜지듯 예전 일상으로 돌아가는 행복한 시간이다.

/ 김상민 기자

/ 김상민 기자

일요일 아침은 그녀에게 특별한 날이다

“참 신기해요. 일요일 아침마다 기가 막히게 잘 아세요. 저희 부부와 딸애랑 함께 가는 곳이 어딘지 말하지 않아도 어머닌 그냥 아시는 것 같아요. 새벽부터 입력된 프로그램을 출력하듯이 스스로 하나씩 해나가세요.” 다소 흥분된 아들의 목소리에 생기가 돈다.

여전히 거동은 불편하지만 일주일 중 유일하게 또렷한 때는 일요일 아침이다. 그곳에 가면 몇십 년 다니던 익숙한 예배당이 있고, 몇십 년 함께한 친구들과 눈만 감아도 온몸으로 느끼는 예배의 평안함이 그녀에겐 유일한 안식처요 위안이다. 그곳에서는 친구들 너나없이 조금씩 어눌한 까닭에 그녀의 언행 역시 묻어 갈 수 있어 좋다. 더군다나 한평생 그녀를 지켜준 신앙은 온몸과 마음에 소망을 각인시켜준 지 오래다. 그래서 좋다. 그러나 최근에 입력된 수많은 정보들은 그녀에게 더 이상 소용없는지 머리에 남아있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다 결국은 말끔히 사라져 버린다.

어느 날 아들이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니, 지금 머릿속이 어떠세요?”

“온통 파아-란 하늘이야.” 아이 같은 표정으로 분명하게 돌아온 대답은 아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아들은 눈을 감고 예전의 어머니 모습을 떠올려 본다. 운 좋게 대학교육도 받고 사회활동도 교회 봉사도 앞장서서 많이 하신 엘리트 여성인 어머니. 유독 총명하고 낙천적인 소녀 같은 어머니. 가슴이 저미어 온다. 한순간 또렷했던 어머니 모습, 위로할 바를 알지 못해 헤매는 어머니와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어머니, 수많은 그의 어머니가 손잡고 다가와 포개진다. 아들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어머니를 보고 울컥 가슴속에서부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엄마, 파란 하늘만 보이는 거야? 정말 파란 하늘만 보이고 다른 건 안 보이냐고? 구름도 있고 새도 있고 나무들도 많은데…. 엄마가 귀엽다며 좋아하던 고추잠자리도 안 보여? 가을이면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는 어디 있고, 아버지랑 구경 갔던 단풍 물든 가을 산들은 다 어디 있는 거야. 도대체 왜 파란 하늘만 보인다는 거야! 제발 자세히 좀 봐봐! 어렴풋이 뭔가 보이지 않아?’

어머니의 지혜, 우리에게 다 주고 만 걸까

그는 어머니를 향해 마음속으로 절절히 소리쳐 보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파란 하늘처럼 턱없이 해맑게 아들을 보며 웃는다.

“정말 이럴 땐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렇죠. 정말 막막하고 답답했겠어요.”

“병원 모시고 가서 진행을 늦추는 것 외에는 딱히 제가 해드릴 게 없다네요.”

“어머니를 잘 치료받게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니 얼마나 낙심되고 암담하겠어요.”

“네. 어머닌 어려운 가운데서도 저희 남매를 정성으로 키우셨는데, 아들인 제가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어야 된다니….”

그의 커다란 두 손이 속절없이 얼굴만 감싼다. “이런 와중에도 어머닌 가족들을 위한 기도만큼은 예전처럼 또렷하게 하세요. 이렇게 머릿속이 하얗게 바랬는데 어떻게 그런 간절한 기도를 할 수 있는지 기가 막혀요. 이게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힘인가 숙연해지다가도 한순간 어이없는 상황을 만나게 되면 ‘왜 이러시나’ ‘정말 장난하시는 건가’ 의아하고 화가 나요.”

“그럴 땐 참 절망스럽겠어요.”

며칠 전 일찍 출근한 아내를 대신해 아들이 어머니와 도우미에게 당부하며 출근했단다.

“어머니, 낮에 산책하시고 식사 많이 하시면 안돼요. 무릎 아프니 체중조절하셔야 되니까요.”

“그래 알았다. 엄마(며느리)는 어디 있니?” 말꼼히 쳐다보며 물으신다.

“아까 출근했잖아요.”

“아. 벌써 출근했어? 말도 없이 그냥 가다니….” 어머닌 서운한 표정이다.

“할머니! 아까 엄마보고 잘 갔다 오라고 나랑 같이 빠이빠이 했잖아. 어휴 미치겠네!” 옆에서 지켜보던 초등학생 딸애가 돌아서며 어른처럼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친다.

매일 아침마다 벌어지는 일이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나는 어머니 머릿속 정지작업은 오늘도 가족들 마음을 짓누른다. ‘과연 어머닌 어디까지 갈까? 결국 나는 어머닐 어떻게 해야 하나?’ 출근길 도로만큼이나 답답한 마음이 가득 밀려온다. 그래도 꽉 막힌 도로는 차라리 자신의 답답한 마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막힌 도로는 언젠간 뚫리겠지만 어머니의 지워진 시간들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반복되는 학습에도 불구하고 매순간 조금씩 더 사라져가는 기억들 속에서 아쉬워하는 기색도 없이 사그라지는 것 같아 안쓰럽다.

“언젠가 들었던 할머니와 어린 손녀의 동화가 생각나네요. 어린 손녀는 지혜가 매일 매일 쌓여 성장하는데, 나를 키워주고 손녀를 돌보셨던 어머니의 그 수많은 지혜는 정말 우리를 위해 다 주고 만 걸까. 아직은 조금 더 당신을 위해 남겨두셔도 되는데 말예요. 딸아이는 비록 느리지만 계속 자랄 텐데 어머닌 뭐가 그리 성급하셔서 다 주시고 가는지….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그가 목이 메어 운다.

“정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참 없네요.” 그냥 그대로 어머니를 수용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언젠가 더 이상 우리의 한계를 벗어나면 그 또한 수용하고 벗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

“이거 참 보드랍고 좋아 보인다. 어디서 났니?”

“네. 어머니 쓰시라고 샀어요.” 잠시 후

“이거 참 보드랍고 좋아 보인다. 어디서 났니?”

“네. 어머니 무릎 덮으라고 샀어요.” 똑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반복된다.

아마도 딸아이에겐 지혜를 많이 쌓아야 되는 세상이 펼쳐져 있지만 무릎 아픈 어머니는 점점 가벼워야 갈 수 있는 세상을 바라보나 보다. 그래서 기억하기보다는 궁금할 때마다 묻나보다.

파아란 하늘이 유난히 높고 가벼워 보인다. 미궁 속에 숨어 있던 그의 어머니들이 파란 하늘로 날아오른다.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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