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로 환생한 ‘시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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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부의 시골마을인 페리고흐 지방은 외국인보다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찾는 휴양지이다. 오래된 농가들이 빚어내는 분위기가 가장 전통적인 프랑스 시골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거위 간 음식인 프아그라와 단 포도주, 중세풍의 좁다란 시골길, 인류 고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라스코 벽화 등이 유명하다.

로마문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주변 도시들을 걷다보면 재미난 동상도 만날 수 있다. 베르주라크의 코 큰 남자인 시라노의 모습이다. 그의 이름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도시가 바로 그의 본적이 있는 곳이다. 역에서 도심 쪽으로 조금 걷다보면 발견할 수 있는데, 얼마나 프랑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인지 미루어 짐작케 한다.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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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실존인물이다. 17세기 프랑스의 작가 겸 검객이었던 그는 꽤나 호방하고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여서 1000여 차례의 결투에 휘말렸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해 방탕한 사생활이 구설에 오르내렸는데, 결국 36살의 젊은 나이에 원인미상 사인으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의 그는 사촌동생이자 전쟁에 함께했던 전우의 부인 카트린과 애틋한 사이였는데, 훗날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애드몽 로스탕은 이 이야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낭만적인 음유시인이자 뛰어난 검객이었던 주인공이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다는 로맨스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시라노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연극이나 영화, 무대용 콘텐츠로 활용될 정도로 세인들로부터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선 1990년작 장 폴 라프너 감독이 연출한 프랑스 영화 <시라노>가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국민배우라는 제라르 디파르디외가 가뜩이나 작지 않은 코에 특수 분장을 붙여 ‘순수한 지성미를 지닌 코 큰 시인 검객’의 이미지를 선보였다. 영화의 끝 장면에서 자객으로부터 습격을 받아 점차 죽음을 맞이하며 어둠 속에서 자신이 대필했던 편지를 암송하는 모습은 수많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붉혔다.

뮤지컬로 환생한 <시라노>도 바로 그 이야기와 사연을 들려준다. 제작발표회 때부터 기자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무대에서 ‘코’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여부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그러나 크기보다 긴 코를 달고 나온다. 간혹 부담스런 코 분장 때문에 비음이 섞인 발성이 평소와 조금 다른 질감의 음색을 보여주지만, 덕분에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표정이나 코끝으로 쏠린 시선, 그로 인한 조금은 과장된 움직임 등이 무대만의 별스런 재미를 잉태해 낸다. 특히, 류정한과 홍광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값을 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자연스런 연기가 돋보인다.

영혼까지 사랑한 여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줄거리는 몇 해 전 인기를 누렸던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출연료 미지급 등 우여곡절 끝에 결국 비운의 작품이 됐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대신 단두대로 오르며 연가를 노래하는 시드니 칼튼의 모습은 마지막 순간 어둠 속에서 편지를 외우는 시라노의 순정과도 묘하게 겹쳐진다. 무대라서 더욱 환상적인 사랑의 간접체험이다. 가슴 저민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꼭 추천하고픈 올여름 가장 애틋한 뒷맛이 흥미로운 뮤지컬 작품이다. 만끽해보기 바란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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