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작가 우대’의 중대한 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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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레지던시의 설립 목표는 본래 ‘예술가 창작 지원’에 있다. 국내 130여개의 레지던시 중 약 40%에 달하는 지자체 출연 지역 레지던시의 경우엔 문화적 활기를 통한 ‘지역성’ 옹립도 곁들여진다. 그런데 이 지역 레지던시라는 개념이 곧잘 ‘지역 작가만을 위한 공간’처럼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은 입주 심사에서 자주 발견된다. 심사위원들에게는 지역 작가를 꼭 뽑아야 한다는 주문이 거의 ‘책임적’으로 요구되고, 기관에는 ‘의무적’으로 할당된다. 심지어 난데없는 비공식적 쿼터가 도입되기도 한다.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종종 경상도면 경상도, 전라도면 전라도 출신 작가들을 입주시켜야 하는 곤혹스러움에 처해진다. 이른바 ‘지역 작가 우대’ 탓이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는 51개국 120명의 작가가 초청됐지만 주최국 이탈리아 작가는 손에 꼽는다. 예술성 없는 국가나 지역 프리미엄 역시 없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는 51개국 120명의 작가가 초청됐지만 주최국 이탈리아 작가는 손에 꼽는다. 예술성 없는 국가나 지역 프리미엄 역시 없다.

전국 어딜 가도 동일한 ‘지역 작가 우대’는 대체로 그곳에서 힘깨나 쓴다는 문화·예술 관련 인사들이 주도한다. 입주 심사 전후 문화재단 등 각 기관에 압력을 넣는 부류 역시 지역에서 ‘완장’ 찬 이들이다. ‘지역 소외’ 운운하는 제목으로 선동하는 지역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지역작가 우대’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선정방식을 훼손한다. 미시적으로 연관된 특정인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명한 경쟁을 방해한다. 그에 비해 ‘지역 작가 우대’를 외치는 이들의 논리는 의외로 허술하다. ‘우리 지역에서 우리 세금을 사용하니까 우리 지역 작가를 넣어야 한다’는 극히 단순한 셈법이 전부다.

안타깝게도 이 논리에는 예술성에 관한 가치구분이나, 장르와 학제 간 경계를 허무는 독창성 등은 깡그리 무시되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예술 앞에서는 출신 학교, 나이, 지역, 성별 따위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상식 역시 망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수한 인재 유입을 통한 지역 문화·예술 기반 조성 및 활성화, 인적 교류를 통한 문화적 선순환이라는 플랫폼으로서의 지역을 강조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지역이라는 두 음절 뒤에는 ‘조건 없는 안배’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독일 ‘카셀도큐멘타’에서 중요한 전시공간인 ‘카셀 하우프트반호프’에 참여한 작가 가운데 독일 작가는 아예 없다.

독일 ‘카셀도큐멘타’에서 중요한 전시공간인 ‘카셀 하우프트반호프’에 참여한 작가 가운데 독일 작가는 아예 없다.

사실 지역 작가들에 대한 조건 없는 안배는 ‘지역’과 ‘미술’, ‘문화생태’에 관한 개념의 혼란에서 비롯된다. 개념의 혼란은 근본적으로 물리적 연고를 비롯한 학연·혈연·지연이라는 전통적 관계 및 지역 거소(居所)의 관점에서 독해되는 데 기인한다. 가장 우선되어야 할 작품성이나 기관 운영의 궁극적 목적, 취지 따윈 고려되지 않는다.

물론 ‘지역 인재 발굴’ 차원에서 지역 작가 안배는 중요하다. 하지만 지역 인재 발굴이 실력과 비전을 전제하지 않는 건 아니다. 더구나 그것이 예술적 가치에 대한 고민 없이 내 사람 심기로 나타나는 형국이라면 지역 인재 발굴은 위선이자 해악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지 해당 지역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특정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재능, 재주와 상관없이 어떤 유리한 지점을 취하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지역 작가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주장 못지않게 억지로 챙기는 결과로 인한 역차별도 생각해봐야 한다.

지역의 문화·예술 자산과 예술을 연계해 고유한 의미를 확장하고, 여러 층위에 분포되어 있는 미술방식의 수용을 통한 지역 문화생태 가치 창조, 대외적 연계성 확보가 지역성이 나아갈 방향이다. 지역에서 운영하는 공간이니 무조건 배려해야 한다거나 자신만의 미학적 언어 없이 물리적 연고만으로 지역 안배를 당연히 여기는 건 예술가의 자세가 아니다. 그건 그냥 촌스러움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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