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 배워야 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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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이 사용되는 모든 소비자 제품에서 화학물질과 제품의 통합관리만이 사전예방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야만 안전관리에 필요한 독성정보와 제품사용정보가 한 군데로 모여서 제품 안전에 대한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소비자 제품에 사용된 화학물질에 의한 환경참사’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엄청난 환경참사를 겪으면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바꾸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이 우리 사회가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 어떤 노력이 진행되어 왔는지를 되돌아보고, 이전 정부와 달리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점검할 마지막 기회이다.

살균제 참사 처음 밝혀낸 질병관리본부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그 출발부터 20년이 지나 그 전모가 밝혀질 때까지 ‘안방의 세월호’로 불릴 만큼 또 하나의 국가 부재의 재난이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직후에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가해자들은 진실을 은폐하기에 바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최초로 밝혀낸 질병관리본부를 제외하고는 어떤 국가기관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정부는 소비자 제품 안전관리제도의 부재를 자신의 책임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정책 실패의 책임 또한 부정했다. 대신에 기술적으로 사전 인지와 예방이 불가능했다는 취지의 불가지론을 주장했다. 그런데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문제 발생의 현장에서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검찰 수사에 의해서 가해기업의 제품 결함 은폐조작사건 실체가 드러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 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대하는 정부의 접근방식은 달라지기 시작했지만 이 또한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이성호 한국소비자원 시험검사국 화학섬유팀장이 2015년 12월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 기자실에서 의류용 합성세제 7개 제품을 대상으로 세척성능, 안전성, 경제성 등을 시험 평가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성호 한국소비자원 시험검사국 화학섬유팀장이 2015년 12월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 기자실에서 의류용 합성세제 7개 제품을 대상으로 세척성능, 안전성, 경제성 등을 시험 평가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수사에 의해서 가해기업의 사건 은폐 시도가 밝혀지지 않았다면 사법부의 피해인정 판정을 기대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사법부의 판결 이후 이전 정부는 민사상의 사법적 절차를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피해 구제를 위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받아들였고, 정부의 역할을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국한시켰다. 사법부의 피해인정 범위를 전제로 피해자를 인정해 주고, 인정된 피해자에 한해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피해자 구제정책을 추진했다.

제조업체가 안전점검 없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결함 있는 제품을 안전한 제품이라고 거짓 광고를 하면서 시장에 내다 파는 동안, 정부는 가습기에 살균제가 사용되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지도 막지도 못했다. 최소한의 흡입독성자료 요청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일부 가습기 살균제에 안전인증마크를 부여하는 등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될 관리당국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방기했다. 결과적으로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최소 보호 금지 원칙’은커녕 최소한의 보호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시작되고 18년 동안 국가는 과연 어디에 존재했었는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는 때 늦었지만 가습기 살균제 참사 발생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국회와 함께 사법적 판단에 의해서 한정된 이전 정부의 피해구제방법을 뛰어넘는 피해구제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사법부가 요구하는 개인 수준의 인과관계 입증의 틀을 벗어나서, 과학적 연구결과라면 그 결과를 수용하고 피해자 인정기준을 확대해서 피해구제의 문을 넓혀야 한다.

사람 생명권이 기업 영업권보다 우선해야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그동안 관리가 미진했던 소비자 제품용 살생물제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서 살생물제관리법 제정을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 핵심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재발방지대책이 여기에만 머무른다면 정부 스스로가 국민들이 100여명 이상 죽어나간 후에야 미국과 유럽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살생물제관리제도를 도입한 무책임한 정부임을 스스로 자백하는 셈이 된다. 이와 달리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소비자 제품 화학물질 안전사고로 규정하게 되면 좀 더 포괄적인 재발방지대책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 참고할 만한 제도가 없더라도 재발 방지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비휘발성·수용성 화학물질이 에어로졸로 분무되어 사용되는 제품들은 대부분 흡입독성자료의 부족 때문에 아직까지도 안전성 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채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 흡입독성자료를 생산하는 문제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닌 상태에서 기술적으로도 미흡했고 재정적으로도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기업의 영업권이 사람의 생명권보다 우선하는 상황인 셈이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2013년 7월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기업과 정부가 함께 하는 맞춤형 화학물질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박민규기자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2013년 7월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기업과 정부가 함께 하는 맞춤형 화학물질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박민규기자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될 문제는 가습기나 스프레이 제품처럼 흡입노출이 될 수 있는 제품에서는 살생물질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습기 살균제도 살생물질이어서 문제가 된 것이라기보다는 흡입독성 때문에 건강피해가 발생했던 것이다. 살생물질이 아니더라도 안전용량을 벗어나면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고, 다양한 건강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화학물질들이 바로 흡입노출에 의한 인체 위해 가능성 때문에 작업장 허용농도기준을 설정하거나, 개인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안전 배기시설을 운영하는 등 작업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하물며 일반인이 직접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경우 작업장 환경과 비교해서 노출강도가 작다고 볼 수 없는 인체 흡입노출이 가능한 소비자 제품의 경우 과연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방안은 기업의 영업권이 사람의 생명권보다 우선하는 상황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화학물질의 노출에 의해서 인체 위해가 우려되는 소비자 제품에 대해서 제품등록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시장 출시 전에 제품의 안전성이 점검될 필요가 있다. 외국의 전례가 없지만 의약품·농약 등 특별 관리대상 화학물질군에 추가해서 살생물질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해서 별도의 관리제도를 만들어서 사전 안전성 점검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가칭 ‘소비자 제품 화학물질 안전관리법’을 제정하고, 이를 위한 전담기관을 별도로 구성해서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안전관리 업무 전문부처로 통합해야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소비자 제품 화학물질 안전관리 업무를 화학물질 안전관리 전문부처인 환경부와 식약처로 모두 이관해서 관리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제품 안전평가는 환경부가, 제품 안전관리는 산업부가 하는 기형적인 행정은 임시방편일 뿐이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화학물질이 사용되는 모든 소비자 제품에서 화학물질과 제품의 통합관리만이 사전예방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야만 안전관리에 필요한 독성정보와 제품사용정보가 한 군데로 모여서 제품 안전에 대한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새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점을 인정하고 피해자 구제의 문턱을 낮추는 것과 함께 소비자 제품의 사전안전점검의 제도화 등을 통한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재발방지대책을 제시해줄 것을 기대한다.

가습기살균제 Q&A | 세계 환경의 날, 문 대통령이 시작한 일

2017년 6월 5일 오후 4시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비서실에 지시했다는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의 브리핑이 연합뉴스TV를 통해 뉴스 속보로 생중계되는 화면. / 방송화면 갈무리

2017년 6월 5일 오후 4시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비서실에 지시했다는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의 브리핑이 연합뉴스TV를 통해 뉴스 속보로 생중계되는 화면. / 방송화면 갈무리

6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이 세계 환경의 날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그리고 “환경문제는 삶의 질 차원을 넘어 이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직접 위협하는 문제가 되어 환경안보라는 개념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새 정부는 환경정책에 대한 기본 기조를 바꾸려고 한다”며 4대강 보 개방조치,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탈원전을 언급했다. 이어 “그런데 아직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문제인데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가습기 살균제 문제 해결을 위해 4가지를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1. 적절한 수준의 대통령 사과 발언 검토 2. 이미 발생한 가습기 사고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지원 확대 대책의 강구 3. 확실한 재발 방지대책 마련 4. 피해자와의 직접 만남 검토 등이다.

이러한 내용은 이날 오후 4시 청와대를 출입하는 언론인들이 모여 있는 춘추관의 브리핑룸에서 박수현 대변인을 통해 알려졌다. 박 대변인은 대통령 지시사항의 배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가의 책임과 배상한도까지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함께 문제를 풀자는 의지를 표현했고, 앞으로 구체적으로 문제되는 제도적 개선이나 피해보상 범위에 대해서 추후에 자세히 점검해보겠다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대통령의 가습기 살균제 관련 발언은 텔레비젼을 통해 ‘속보’ 뉴스로 다뤄졌다. 연합뉴스TV는 4시부터 시작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을 생방송으로 중계하면서 ‘뉴스 속보’의 자막을 달아 “문 대통령, 가습기 피해 관련 대통령 사과 검토”라고 전했다. 이 소식은 오후 2시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와의 면담을 마치고 귀가하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전해졌고, 이들은 약 1시간 뒤인 5시30분에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환영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애절한 호소 편지에 즉각 화답해준 것을 환영한다”고 시작되는 환영논평은 “옥시싹싹, 애경 가습기메이트 등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가 아이를 잃고, 아버지를 잃고, 부인이나 남동생 등 가족을 잃은 유족들과 폐가 딱딱해지며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목에 구멍을 뚫고 튜브를 꽂아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어린아이의 엄마, 폐기능이 떨어져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하는 성인 환자 등은 세계 환경의 날인 6월 5일 오전 11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애끊는 내용의 편지를 적어와 낭독하고 청와대에서 나온 직원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전달했다”며 피해자들의 편지가 청와대에 전달된 지 5시간 만에 답장을 받은 셈이라고 반겼다.

논평은 “세계 환경의 날에 지구촌 최악의 환경참사인 가습기 살균제 재앙의 해결에 첫단추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2011년 사건이 알려졌지만 이후 7년 동안 이 사건은 철저히 방치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약속대로 이른 시일 내에 문재인 대통령이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하고 위로하며 앞으로 문제 해결과 재발 방지조치를 제시해줄 것을 기대한다. 또한 담당부처인 환경부 장·차관의 임명과정에서도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도록 지시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뿌연 미세먼지가 걷히고 파란 하늘이 며칠간 이어지는 요즘, 가습기 살균제 피해유족과 환자들의 마음에도, 그리고 불안한 마음의 국민들에게도 좌절과 고통의 어둠이 걷힐 수 있도록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기대해 본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이종현 박사(독성학), EH R&C 환경보건안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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