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제품별 피해현황 국제 공론의 장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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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손상을 일으킨 국내 제품 대부분은 대기업 유통업체의 제품으로, 영세한 제조업체로부터 제품을 싸게 납품받아 PB상품으로 팔았다. 그 과정에서 위험의 핵심인 살균제 화학물질 성분과 양을 전혀 관리하지 않았다.

필자를 비롯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사에 참여해온 연구원 14명은 올해 4월 가습기 살균제 제품별 건강피해 현황을 영국의 국제학술지 토털환경과학(Science of Total Environment)에 ‘한국에서 발생한 폐손상을 일으킨 가습기 살균제의 종류’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영국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를 일으킨 최대 가해업체로 꼽히는 ‘옥시레킷벤키저’ 본사가 있는 곳이다. 2011년부터 우리나라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미국 등 국제학술지를 통해 다양한 내용으로 알려졌다. 임상적인 폐손상 특징, 건강피해 현황, 일부 살균제 성분별 독성 메커니즘, 역학연구, 가습기 살균제 노출 평가방법, 가족 피해사례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제품 이름을 알린 논문은 없었다. 이번 연구는 제품별·성분별·연령별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손상 등 피해자 분포를 나타냈다. 제품별로 일으킨 폐손상 등 피해상황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연구결과이다. 연구결과가 의미하는 몇 가지 의의를 소개한다.

2013년 4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피해자모임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2013년 4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피해자모임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폐손상 일으킨 제품 이름 모두 공개해

본 연구에서는 피해자들이 사용했던 제품 이름 15개를 모두 공개했다. 학술지에 제품 이름을 나타내는 경우는 드물다. 과학적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 이해관계 등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폐손상을 초래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등 제품 이름과 제조기업이 언론을 통해서 일부 알려지기는 했다. 그러나 제품별 폐손상 등 구체적인 피해현황을 알린 것은 처음이다. 제품별로 6세 이하 어린아이, 임산부 등의 피해현황을 볼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전문가 6명이 연구결과를 엄격하게 심사해서 게재를 결정했다. 지금까지 폐손상을 일으킨 연관 정도가 ‘확실(definite)’, ‘상당(probable)’한 것으로 입증된 제품은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롯데마트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 ▲세퓨 가습기살균제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의 5개였다. 연관 정도를 ‘가능성 있음(possible)’까지 확대하면 ▲엔위드 가습기살균제 ▲이마트 가습기 메이트도 포함된다. 제품별로 폐손상 등 피해정도를 관련짓기는 쉽지 않다. 피해자의 50% 이상이 제품을 2개 이상 사용했기 때문이다. 일단 1개 제품만을 사용한 피해자들을 제품별로 구분했다. 이 결과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만을 사용한 227명 중 114명(50%), ‘세퓨 가습기살균제’는 33명 중 27명(82%),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는 28명 중 6명(21%), ‘롯데마트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는 15명 중 11명(73%), ‘이마트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는 8명 중 2명(25%)이 치명적인 폐손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3·4차 조사결과까지 합하면 폐손상을 일으킨 제품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위에서 보다시피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만을 사용한 사람 중 폐손상을 입은 피해자는 6명(연관 확실 2명, 상당 1명, 가능성 있음 3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11년 질병관리본부에서 실시한 동물실험에서 폐손상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직 검찰 수사는 물론이고 허위광고 벌금 등 어떤 법적 조치도 받은 적이 없다. 3차 조사에서도 이 제품만을 사용한 사람 중 3명이 폐손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까지 판정이 끝난 982명 중 이 제품만을 사용했다고 응답한 피해자는 61명인데, 이 중 폐손상을 입은 사람의 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확실하거나 상당한 경우가 9명이고, 가능성 있는 경우 10명까지 합하면 총 19명이다. 다른 제품을 함께 사용한 피해자까지 범위를 확대하면 이 제품 사용자의 폐손상 사례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이 제품을 만든 기업에 대해 향후 어떤 추가 법적 조치가 취해질지 지켜볼 일이다.

제품별 어린아이, 임산부 피해현황 드러나

본 연구에서는 제품별로 폐손상을 입은 피해자 중 6세 이하와 임산부의 수를 따로 나타내기도 했다. 화학물질의 위험에 가장 취약한 어린아이와 임산부의 피해비율을 드러낸 것이다.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의 경우, 폐손상과의 연관이 확실하고 상당한 85명 중 1세 이하가 10명(11.8%), 2세에서 6세 사이가 36명(42.4%), 임산부가 17명(20%)으로 대부분이 취약그룹에서 발생했다. ‘세퓨 가습기살균제’는 24명 중 6세 이하가 15명, 임산부가 3명이었다.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는 피해자 3명 중 2명이 1세가 채 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제품과 폐손상의 연관이 확실하거나 상당한 피해자 221명 중 1세 이하가 30명(13.6%), 2세에서 6세 이하가 98명(44.3%), 그리고 임산부가 35명(15.8%)으로 어린아이와 임산부가 총 74%를 차지했다. 화학물질에 매우 취약한 사용자가 늦은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5~6개월 동안 매일 8시간 이상 사용했기 때문이다. 논문에서는 건강위험을 관리할 수 없는 제품을 허가한 국가 예방체계의 문제점과 피해가 참사가 되기까지 전혀 알아채지 못한 공중보건 감시체계의 실패를 비판했다.

연구진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 수는 총 35개이다. 대부분의 제품은 살균제 성분을 나타내지도 않았고 어린아이에게도 안전하다고 광고했다. PGH 성분을 함유한 제품은 유럽에서 인증을 받아 안전하다고 속였다. 폐손상을 일으킨 국내 제품 대부분(‘롯데마트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 등)은 대기업 유통업체의 제품으로, 영세한 제조업체로부터 제품을 싸게 납품받아 PB상품으로 팔았다. 그 과정에서 위험의 핵심인 살균제 화학물질 성분과 양을 전혀 관리하지 않았다.

2015년 8월 3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년 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건의 담당회사인 옥시레킷벤키저를 규탄하는 집회와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2015년 8월 3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년 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건의 담당회사인 옥시레킷벤키저를 규탄하는 집회와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제품 위험평가해서 피해배상금을 부과하자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예방에도 실패했고, 원인 조사, 보상 등 참사가 일어난 후의 대응도 수동적이고 미흡하다. 유일한 대책이 1∼2단계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병원비와 장례비 일부를 지원하고 이 비용을 해당 제품을 판매한 기업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여 회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상금액 회수대상 제품 수는 총 35개 중 13개에 불과하다. 잠재적 피해를 일으킨 것이 분명하지만 치명적 폐손상 피해사례가 없었던 제품은 구상권 청구 대상에서조차 빠지게 된다. 기업이 제품 판매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과정에서 제품 위험 관리를 소홀히해 사용자가 건강피해를 입은 경우, 마땅히 법적 또는 경제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제품에 함유된 화학물질 성분, 농도, 판매량 등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대한 포괄적 건강위험을 평가하고 잠재적 피해규모를 추정해서 기업별 배상금을 징벌적으로 부과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기업의 제품 위험관리 소홀 또는 무시와 다양한 피해질환 사례를 적극적으로 찾는 노력부터 철저히 수행하길 바란다.

가습기살균제 Q&A | 가습기살균제 문제 규명 학술연구 어떻게 돼가나?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여러 차원과 각도에서 구멍이 숭숭 뚫렸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국가와 정부의 화학물질 안전관리와 사후대책 실패, 기업의 화학물질 사용 제품 안전의 실패, 소비자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시장의 실패, 언론의 감시기능 실패, 국경을 넘어다니는 자유무역과 다국적기업의 안전문화 실종, 의학·독성학·보건학·화학 등 관련 학계와 전문가의 역할 한계, 소비자 스스로의 자구책의 한계, 소비자운동과 환경운동 등 시민운동의 한계, 그리고 국회와 자치단체 의회로 대표되는 정치의 실패다.

1994년 최초의 제품 판매라는 사건의 발단과 30여종에 달하는 제품 700만여개를 18년간 1000여만명의 소비자들이 사용하고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의 진행과정, 그리고 2011년 사건이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의 해결과정이 워낙 길고 광범위하고 복잡하다. 때문에 2011년 이후 이 사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문제 해결에 몰두해오고 있는 필자의 경우에도 잘 알지 못하는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이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미친 건강영향과 독성의 측면은 일부분만 밝혀져 있고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밝혀진 내용들도 매우 전문적이어서 관심을 기울여도 쉽게 자료를 접하기 어렵고 이해하기도 힘들다.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른 경우도 많아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밝혀지려면 앞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 자리에서는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대해 연구되고 밝혀진 내용들이 전문가들에 의해 작성된 학술논문들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학술적 연구는 보고서, 보도자료, 학술논문 등 몇 가지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특히 전문분야의 학술지에 게재되는 학술논문은 보고서나 보도자료보다 훨씬 전문적이고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연구내용을 그 분야에서 상당히 신뢰받는 학자들에 의해 검토되고 점검되는 소위 피어리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나 학술적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까지 발표된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룬 학술지에 게재된 주요 논문 57편을 간단히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1년 사건이 알려지기 이전인 2008년과 2009년에 각각 1편씩 발표되었다. 이 2개의 의학논문은 사실 발표 당시에는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인 줄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다루고 있었다. 2012년에 7편, 2013년에 2편, 2014년 8편, 2015년에 9편, 2016년에 22편, 그리고 2017년 5월까지 7편이 발표되었다. 분야별로는 의학논문이 19편, 환경보건학 논문이 23편, 독성학 분야가 6편, 그리고 인문사회 분야가 9편이다. 지금까지는 의학, 환경보건학에 집중되었지만 이 사건이 우리 사회 각 분야에 미친 파장을 고려할 때 앞으로는 훨씬 다양한 여러 학문분야에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57편의 논문은 한글로 쓰여진 논문이 18편, 영어로 쓰여진 논문이 39편으로 70%가량이 영어논문이다. 의학과 환경보건학, 독성학 분야의 경우 외국은 물론 국내 학술지에도 영어로 작성되어 게재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연구결과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공유하는 측면에서는 좋겠지만 피해자들이나 국내 일반인들이 그 내용을 직접 접하는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측면도 있다. 물론 언론을 통해 연구논문이 기사로 소개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다.

학술논문의 경우 어떤 학술지에 게재하느냐도 연구자들이 내용 못지않게 상당히 신경 쓰는 문제다. 인용이 잘되고 유명한 학술지에 게재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좋은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학술논문은 언론에 소개되기도 하고 정부 관계자들이 검토해서 정책에 반영하기도 한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룬 학술논문 57편 중 국내학술지에 36편이 게재되었고 국제학술지에 21편이 게재되었다. 국제학술지는 주로 미국과 유럽 등을 말하고 일본의 학술지도 포함된다. 학술논문이라고 해서 모두 순수한 학문적 측면에서 작성되는 건 아니다. 기업이나 특정 목적의 협회가 지원해서 작성되는 불순한 목적의 학술논문도 종종 있다. 때문에 요즘에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때 반드시 연구비의 출처를 밝히도록 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가습기 살균제 의학논문 19편과 독성학논문 6편 전부, 그리고 환경보건학 분야의 논문 상당수가 한국정부가 지원해 독성과 건강피해를 규명한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논문들이다. 반면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회사들이 지원한 연구와 관련된 학술논문이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된 경우는 단 한 편도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박동욱 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 환경보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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