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탈리도마이드 사건 피해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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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피해자들이 모이고 뭉쳐야 한다. 피해자들이 모이지 않으면 아무런 힘이 생기지 않는다. 둘째, 피해자, 희생자의 목소리가 사회에 전달되어야 한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

‘제2의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해결에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운동의 경험과 교훈을 얻고자 2012년 10월 독일의 피해자단체 대표를 찾아 나눈 내용을 소개한다.

어머니가 임신 중에 한 알 먹고 피해

독일 남부 바덴뷔텐부르크 주 알멘딩엔이라는 곳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대도시 슈투트가르트에서 고속도로를 한 시간 반 정도 달려간 곳에 있었다. 흑림으로 널리 알려진 숲이 우거진 산악지역으로 도로가 이어졌는데 석회암 지대인 듯 큰 시멘트공장이 여러 개 보였다. 독일 산업보건활동가 게르트에게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단체를 만나고 싶다고 문의하여 소개받은 곳이었다. 주소만 들고 찾아간 곳은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주택가였다. 공터에 차를 세우고 두리번거리는데 길 건너 바로 앞집에서 누가 부른다. 곧바로 탈리도마이드 환자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기트 훈데마이어. 두 팔이 없고 손가락이 어깨에 붙어 있었다. 다리는 멀쩡하고 얼굴과 몸도 멀쩡했다. 반갑다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이어 그녀의 어깨에 붙은 손가락과 악수를 했다. 당황하여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손가락이 3개였던 것 같다. 집안으로 안내받아 들어갔는데 거실 식탁에 빵과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는 독일의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전국 협회(독일어로는 콘테르간 전국연합) 대표다.

팔다리 없는 기형아 1만명의 피해를 낳은 탈리도마이드 참사의 피해자대표 마르기트 훈데마이어. / 최예용 촬영

팔다리 없는 기형아 1만명의 피해를 낳은 탈리도마이드 참사의 피해자대표 마르기트 훈데마이어. / 최예용 촬영

“저는 1960년생입니다. 어머니가 저를 임신하고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복용한 한 알의 약이 문제가 되었죠. 단 한 알이었습니다. 네, 한 알이에요. 다른 피해자들도 약을 여러 개 먹은 게 아니라 한 알을 먹고 그렇게 된 경우가 많아요.. 독일에서만 5000여명의 피해자가 있고 독일 이외의 세계 곳곳에서 100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어요. 피해자의 절반 정도가 사망하고 2010년 현재 독일에서 생존해 있는 피해자만 2451명입니다. 독일 외에 다른 나라에는 210명의 피해자가 생존해 있습니다. 이들 2661명이라는 수는 모두 독일 제약회사 그뤼넨탈이 직접 제조하여 1957년부터 1961년 사이에 판매한 ‘콘테르간’이란 이름의 진정제 알약을 사서 먹고 피해를 입은 경우이고, 그뤼넨탈의 제약기술을 갖다가 별도로 만들어 판 스웨덴 제약회사 아스트라의 약으로 인한 피해가 100명, 영국 제약회사 티스틸러스의 디아게오 피해자 40명이 따로 있습니다. 그밖에 일본에서 서너 명의 피해자가 있고, 미국과 다른 여러 나라에도 소수의 피해자가 있습니다.”

그가 구체적으로 언급한 생존 피해자 수는 모두 2801명이다. 참고로, 탈리도마이드 환자로 유명한 성악가인 토마스 크바스토프의 자서전 ‘빅맨 빅보이스’(2005년·도서출판 일리)에는 탈리도마이드 환자가 모두 1만2000명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약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탈리도마이드라는 성분이 문제를 일으킨 겁니다. 문제의 그뤼넨탈 제약회사는 페니실린이라는 유명한 항생제를 처음 만든 회사예요. 독일 내 10대 부자 회사죠. 1958년에 첫 피해자가 나왔는데 콘테르간 복용을 의심하여 그뤼넨탈에 문의했더니 관련이 없다며 펄쩍 뛰었답니다. 이후 계속 피해자가 나왔고 1960년에는 비슷한 증상의 피해자들이 동일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피해자 단체를 만들었죠. 그뤼넨탈 측은 이 문제에 대해서 ‘스캔들이 아니라 비극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 다만 피해는 비극이다’라는 건데 말이 안되는 이야기죠. 이 약 성분 탈리도마이드가 진정제 효과가 있는데 3개월 전후의 태아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만, 피부병 환자와 골수암 환자들에게는 아직도 사용되는 약이에요. 특히 골수암의 경우 2~3년 정도의 생명 연장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 약 성분은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는 거죠. 브라질에선 셀버라는 이름으로 탈리도마이드 성분이 든 약이 판매되고 있고, 문맹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이 약을 먹고 80~100명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엄마, 숨이 안 쉬어져’](31) 탈리도마이드 사건 피해자를 만나다

1997년 이후부터 제조사 책임 안져

“1972년에 보상금이 8600만 마르크가 나왔고 1997년까지만 그뤼넨탈이 보상을 했습니다. 이후부터는 독일 정부에서 피해보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뤼넨탈은 1997년까지만 보상금을 지급하고 그 이후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어요. 매우 아쉬운 부분인데요, 피해자를 대표하여 콘테르간 재단이 그렇게 합의를 해버렸고, 그 때문에 이후 개별적인 피해보상 요구나 법적인 소송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훈테마이어 대표에게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소개하고 피해자 활동에 조언을 구했다. 그녀는 네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피해자들이 모이고 뭉쳐야 한다. 피해자들이 모이지 않으면 아무런 힘이 생기지 않는다. 둘째, 피해자·희생자의 목소리가 사회에 전달되어야 한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 셋째, 회사의 문제점을 낱낱이 언론에 공개하여 회사의 책임을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 넷째, 의학적 검증과 사회적 해결이 매우 중요하다. 처음 한 피해자의 아빠가 전국을 다니면서 유사한 피해자들을 만나고 조직하고 그랬다. 그분은 변호사인데 문제를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어깨에 붙은 자그마한 서너 개의 손가락으로 커피잔을 집어서 마시고, 빵을 집어서 먹었다. 매순간 안쓰러웠다. 전화기를 사용할 때는 먼저 탁자에 올려놓고 ‘어깨 손’으로 버튼을 누른 후 다시 얼굴과 어깨 사이에 끼워 통화했다. 떨어뜨리면 어쩌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옆에서 지켜봤다.

탈리도마이드 베이비 출신의 세계적 성악가 토마스 크바스토프의 자서전 ‘빅맨 빅보이스’

탈리도마이드 베이비 출신의 세계적 성악가 토마스 크바스토프의 자서전 ‘빅맨 빅보이스’

필자가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로 유명한 성악가 토마스 크바스토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니 “그는 피해자 운동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 자신만이 위대한 사람인 양 행동한다”고 잘라 말했다. 크바스토프에 대해서 더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그도 아쉬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많은 피해자들이 힘든 장애의 삶을 살지만 그래도 크바스토프는 성악가로서 성공했고 그러한 성공의 힘이 다른 피해자들을 위한 운동에 기여한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 것인가?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크바스토프를 초청해 그의 음악과 더불어 많은 공해병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사회적 관심을 모으는 행사를 갖고 싶은 필자로서도 매우 아쉬운 부분이었다.

물론 크바스토프가 성공한 사실 자체가 탈리도마이드 베이비 문제가 독일은 몰론이고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마르기트의 이야기를 듣고 크바스토프의 방한 행사를 기획한다는 게 거의 힘들겠구나 싶었다.(그래도 그가 부른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정말 멋지다. 독자 여러분도 크바스토프의 중후한 바라톤 목소리를 꼭 들어보기 바란다.)

환경사고의 교훈 인류가 잊지 말아야

예전에는 세계적인 3대 환경사건으로 1957년부터 알려진 일본의 미나마타병, 1983년 인도 보팔 참사, 1986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핵 참사를 든다. 이제는 2011년의 일본 후쿠시마 핵 참사가 포함되고 1960년에 발생한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2011년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세계적인 환경사건의 범주에 포함돼야 한다. 이들 환경사고의 교훈을 인류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습기살균제 Q&A | 동물실험 결과를 왜 사람에게 바로 적용하지 않는가?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시킨 쥐(왼쪽)와 건강한 쥐의 폐 모습. /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제공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시킨 쥐(왼쪽)와 건강한 쥐의 폐 모습. /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제공

가습기 살균제는 세균과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는 화학물질이므로 분명 독성이 있다. 이런 성격의 물질은 제품에 적용하기 전에 반드시 피부독성, 경구독성, 흡입독성, 생식독성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하는데 전문가와 보건당국이 파악해본 결과 어처구니없게도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생명까지 앗아간 중증 폐손상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에게서만 발생했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들은 이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포함해 외국에서도 세정제, 농약, 오폐수 처리 등 다양한 용도로 널리 사용돼 왔기에 일부 독성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져 구체적인 독성값이 있었다. 하지만 호흡독성에 관한 연구내용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대한민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이들 유해물질의 호흡독성에 대한 사실상의 동물실험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에게 유해성이 나타났다면, 그리고 그것이 증명됐다면 동물실험은 더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왜 쥐나 생쥐 등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독성연구를 하는 것인가.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데는 역학조사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물질이 치명적인 독성을 지닌 것으로 드러난 이상 그 독성물질이 어떻게 질병을 일으키는지, 독성 정도는 정확하게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생명윤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신약이든, 독성물질이든, 새로운 화학물질이든 그 독성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동물실험을 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동물에게 해로우면 사람에게 유해할 가능성이 높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반대도 그렇다. 우리가 흔히들 발암물질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동물발암물질과 인체발암물질을 구분해 말해야 한다. 국제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암연구소(IARC)가 발암물질을 그룹1 인체발암물질, 그룹2A 인체발암추정물질, 그룹2B 인체발암가능물질로 구분해 사용하는 것도 동물과 사람의 생리와 발암과정이 똑같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물에게서는 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충분하더라도 사람에게서는 암을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다. 동물발암물질임은 확실하지만 사람에게서 암을 일으킨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그룹1에 포함하지 않는다.

제브라피시라는 자그마한 물고기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혈관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우리 과학자들이 몇 년 전 밝혀냈다. 그렇다고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 심혈관질환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바로 연결 짓는 것은 곤란하다. 다만 가능성을 열어두거나 의심을 품고 가습기 살균제 노출자와 기존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그와 관련한 역학조사와 건강조사를 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동물실험은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역학조사의 도우미 구실을 톡톡히 한다. 또 윤리적 이유로 사람을 대상으로 독성시험을 하기 곤란할 때 어쩔 수 없는 수단으로 동물을 사용한다. 물론 최근에는 동물애호가는 물론 과학자 내부에서도 동물 윤리와 동물 생명 존중을 말하며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 기존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연구방법 개발에 힘을 쏟고는 있다.

현대에 들어와 발생한 여러 환경재난 등에서 사람에게 피해가 발생하기 앞서 동물에게서 먼저 똑같은 증상의 피해가 있었던 역사적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950년대 일본 미나마타에서는 유기수은 중독 환자가 발생하기 몇 년 전부터 하늘을 날던 새가 갑자기 땅으로 곤두박질치거나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석면공장 안과 인근 지역에서 주민들이 기르던 개나 고양이들도 죽음의 석면 먼지를 다량 들이마시고 죽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도 모든 것이 사람 중심이다 보니 동물 피해에 대해서는 최근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연구자나 정부 당국, 피해자 그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근래 들어 일부 피해자들이 애완동물로 기르던 개와 고양이가 가습기 살균제 사용 당시 갑자기 죽었던 게 그 때문인 것 같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럴 가능성이 짙다. 동물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또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우리는 동물에게서 일어나는 유해성이 반드시 사람에게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동물실험에서 유해성이 있으면 사람에게서도 유해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명심해야 한다.

<안종주 보건학 박사·<빼앗긴 숨> 저자>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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