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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균제 물질의 전신 독성 경로를 밝혀 그러한 개별 질환들을 아우르는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피해자 판정 등급 기준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정부가 세 차례에 걸쳐 695명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들에 대한 관련성 판정을 한 결과 37.1%인 258명만 관련성이 높은 1~2단계로서 정부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나머지 62.9% 437명은 관련성이 낮거나 거의 없다고 판정되어 아무런 정부 지원도 없고, 심지어 제조사들로부터도 배상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피해신고자 695명 모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것이 확인되었고, 사용 중 또는 사용 후 건강피해가 나타났지만 일부만 피해자로 인정받고 있는 겁니다. 왜 이렇게 되는 걸까요? 김형전씨는 20대 초반인 2009년부터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호흡곤란과 폐섬유화로 직장도 못 다니고 외부 활동을 거의 할 수 없는 중증 피해자입니다. 김씨는 정부의 판정기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2015년에 피해를 신고해 아직 판정이 나오지 않은 그의 글을 소개합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환경부는 1월 9일 2017년 업무계획 보고에서 ‘지난해까지 접수를 한 피해 신고자 전원에 대해 현재 정해진 폐 손상 판정 기준에 따라 폐 질환 조사·판정을 연내 마무리하고 폐 이외 질환인 태아 피해 판정 기준을 1월까지, 천식 판정 기준을 4월까지 단계적으로 마련하며 논의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다소 연기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충남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지난해 10월 27일 천안 단국대학교에서 열린 환경독성보건학회 2016년 추계 학술대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보상과 인정기준 확대’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임종한 인하대병원 충남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지난해 10월 27일 천안 단국대학교에서 열린 환경독성보건학회 2016년 추계 학술대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보상과 인정기준 확대’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세부질환별 기준으로는 피해 전모 못 밝혀

하지만 이렇게 특정 세부 질환들에 대해 개별적인 기준을 마련해나가는 방식으로는 살균제로 인한 건강피해의 전모를 밝힐 수 없습니다. 정부는 2011년부터 거듭된 민간 전문가들의 문제제기로 마지 못해 2013년 처음으로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한 폐 손상 피해 인정 기준을 내놓았고, 이 기준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폐 손상에 대한 현행 1~4등급 판정 시스템에서는 1~2등급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하고, 그들에 한해서 살균제 제조업체 등에 대한 구상권을 전제로 병원 치료와 장례비 등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즉 정부는 처음부터 포괄적인 피해자 구제 자체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한 정부 책임은 전혀 인정할 수 없다는 대원칙 하에, 향후 이미 투입한 구제 지원금을 민사소송을 통해 기업으로부터 회수할 수 있는지 현실적인 가능성을 따져 그에 따라 피해자 인정 범위를 정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비쳐집니다. 그 결과 폐암, 폐렴 등은 물론이고 ‘급성·아급성 폐 손상 패턴’과 조금이라도 다른 다양한 형태의 만성적인 폐 손상 피해자들은 비특이적이라는 이유로 전혀 그 피해 인과관계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즉 현재 정해진 폐 손상에 대한 판정 기준 자체도 매우 협소하여 충분한 피해자 발굴에 있어 장애요인으로 기능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그에 대해 아직까지도 충분한 논의와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를 하기보다 폐 손상 기준은 이미 마련되었으니 이제는 태아 사례나 천식 등 폐 이외 손상 피해를 개별적으로 살펴보겠다는 계획을 밝힘으로써 마치 폐와 관련한 인과관계 규명은 충분히 이루어진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국회 환경 노동위원회에서 통과된 가습기 살균제 구제 법안이 이러한 잠재적 피해자들을 인지하고 구제하기 위한 내용으로 몇몇 조항을 두고 있으나,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판정 등급제에 의해 공식적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대상의 공식적인 구제와 보상, 배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과정에 있어서 특별법안 발의와 제정은 시작에 불과하며, 당장 시급한 것은 지금까지 유지된 정부의 소극적 피해 인정 기조를 폐기하고 가능하면 더 많은 피해자를 발굴하기 위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피해 등급 판정 기준을 개편하는 것입니다.

전체 살균제 피해 신청자들의 건강피해 여부를 판별하는 데 있어 현행 급성 폐손상 판정 기준만을 적용할 경우 우선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살균제 사용 직후 현재 기준과 유사한 급성 호흡기 손상 패턴이 나타났었더라도 초기 CT나 조직 병리 자료가 없어 당시 폐 손상 패턴을 확인할 수 없지만, 그러한 과거 노출력이 체내에서 지속적인 악영향을 끼쳐 적게는 수년, 많게는 10년 이상이 지난 후 현행 판정기준과 다르게 만성적 폐 손상 소견으로 흉막하 침범과 망상음영이 주를 이루는 특발성 폐섬유화 등의 양상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전은 다르지만 석면질환이 긴 잠복기를 거친 후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급성 폐 손상 패턴에 부합하는 피해자들에 한해 영상의학적으로 시간적 경과에 따른 변화 양상을 추적한 논문은 나와 있으나, 현재 정해진 말단 기관지 중심의 미만성 소엽중심성 간유리 음영 패턴과 다른 폐 손상 환자들에 대한 연구는 전무합니다. 살균제 판매시점이 1994년쯤부터인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연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살균제 사용 직후 현재까지 알려진 급성 폐 손상 패턴은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PHMG 물질의 체내 전신독성, 면역 독성 경로를 통해 만성적인 폐 손상, 다른 장기 손상 패턴이 나타날 수 있는 점이 고려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혈액 순환을 통한 전신 면역 독성 경로가 가능할 경우 비염·천식·폐렴은 물론이고 류마티스나 아토피와 같은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자가면역성 질환들과 만성적인 폐 섬유화 질환들도 모두 잠재적인 피해자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PHMG가 초음파 가습기에서 에어로졸화되어 흡입될 경우의 입자 크기(75~118nm)는 말단 기관지 부위에 침착하여 그 부위에만 염증과 섬유화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폐포 끝까지 도달하여 혈관 내로 침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현행 급성 폐손상 피해자 판정 기준은 폐 말단 기관지 부위의 손상만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문제점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개별 질환별로 접근하려는 정부 방식으로는 폐와 폐 이외 부위를 막론하고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의 소극적 피해 인정 기조 폐기해야

환경부에서 진행하려는 방식대로 ‘태아사례, 천식, 비염, 폐렴, 만성폐섬유화, 자가면역질환’ 등으로 세부 질환을 따로따로 나누어 살균제 노출로 인한 건강피해 가능성을 보게 되면, 살균제 노출 후 건강피해가 나타난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피해자군으로 포함시키는 등급제가 만들어지기가 어렵게 되고, 이렇게 첫단추가 잘못 꿰진다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피해자 구제 과정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될 수 있습니다. 환경 노출 평가상 가습기 살균제에 독성 수준으로 노출된 것이 확인되면서 원인 불명의 다양한 전신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 신청자가 굉장히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다양한 전신 질환들을 한꺼번에 포괄할 수 있도록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1년 당시 비슷한 시기에 CT 상 비슷한 진행 경과를 보이는 특이적 환자군이 확인되었더라도, 그 자체가 그와 다른 패턴으로 진행된 건강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된 가습기 살균제 구제법도 조항 내용 대부분이 현행 등급 판정 결과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등급 판정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운영되는가에 따라 거의 모든 피해자들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어 이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과정 전반에 있어 그 무엇보다도 중대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들에게는 구제 특별법 자체보다는 오히려 이 등급제가 어떻게 결정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1~4등급제로 판정 등급제의 형태는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서는 살균제 노출 후 건강피해가 나타난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공식적인 피해자군으로 포함시킬 수 있도록 현행 등급제 내용이 전면적으로 개편되어야 합니다.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피해 신청자 중 살균제에 독성 수준으로 노출된 것이 환경 노출 평가상 확인이 되더라도 아직 건강피해가 나타나지 않은 사람들은 3단계로 모두 건강 모니터링 대상이 되어야 한다. 독성 수준으로 노출된 것이 환경 노출 평가상 확인되며, 타깃 독성이 확인된 장기에서 원인 미상의 건강피해가 있는 경우는 모두 1~2단계로 공식적인 피해자로 인정되어야 한다. 4단계는 조사 결과 살균제 사용자가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에 국한되어야 한다. 1~2등급 내에서는 다시 세부 질환 명을 기준으로 중증과 경증 및 사망자로 나눈다.’

어떤 방식이 되었든 가습기 살균제 노출 후 나타난 원인 미상의 다양한 전신 질환을 포괄할 수 있도록 현행 등급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합니다. 구상권 적용 가능성을 따져 협소하게 정해진 개별 질환에 대한 판정 기준을 따로따로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살균제 물질의 전신 독성 경로를 밝혀 그러한 개별 질환들을 아우르는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피해자 판정 등급 기준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피해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과 같이 태아 사례, 천식, 비염 등으로 질환별로 따로따로 접근하는 방식으로는 수많은 잠재적 피해자들을 신속히 구제할 수 없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Q&A / (7)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등급이 부르는 오해들

가습기 살균제 피해대책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캠페인 참여자가 2013년 3월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최예용

가습기 살균제 피해대책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캠페인 참여자가 2013년 3월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최예용

현행 폐 손상 등급 판정 기준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소극적 피해 인정 기조와 불충분한 설명으로 인해 생겨난 오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현행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질환 판정 등급 기준’은 2011년 주로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일부 환자들의 병원 기록을 토대로 2013년 말쯤 정해졌고, 그 내용은 질병관리본부가 2014년 발간한 가습기 살균제 백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내용에 따르면 현재 소아와 성인의 피해자 인정 기준 모두 동일하게 살균제 사용 후 급성·아급성으로 폐 질환이 급격히 진행된 케이스, 즉 최초 이상증상 발현 후 수개월 이내에 사망하거나 중증으로 진행된 경우들 중 영상이나 조직 검사 결과가 있는 각각 16~17명 정도의 데이터를 가지고 정해졌습니다. 그 결과 현재의 기준을 적용할 때 최초 폐 질환이 영상의학적으로 폐 아래쪽으로부터 병변이 나타나 그 후 흉막하 부위는 보존되며, 간유리 음영을 동반한 미만성 소엽중심성 결절성 음영이 영상의학적으로 확인되며, 공기 폐색이나 망상 음영은 나타나지 않는 케이스만 가습기 살균제 관련 피해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패턴과 일치하는 정도에 따라 1~4등급으로 나뉘며, 3등급은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가능성 낮음’, 4등급은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가능성 거의 없음’으로 분류되어 공식적인 피해자 집계에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등급 판정제와 그 등급 명칭으로 인해 현행 1~4등급 판정 시스템에 대한 시중의 흔한 오해들로 크게 세 가지가 생겨났고, 아직까지 전문가들조차 이 사안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경우 똑같은 오해를 하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오해들은 첫째, 1등급이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일 가능성이 가장 높고, 4등급이면 그 가능성이 가장 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1등급이면 중증 피해자, 4등급이면 건강피해가 없거나 무관한 피해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 1등급이면 폐 섬유화가 나타난 피해자, 3~4등급이면 폐 섬유화와 무관한 피해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기준상 폐 섬유화가 있더라도 2011년 당시 조사된 17명의 급성·아급성 환자들의 패턴과 다르다면 무조건 3~4단계 등급을 받습니다. 4등급이라 할지라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잠재적 피해자’군에 속하는 경우가 상당수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아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독성학적·의학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일 뿐입니다. 현재 기준으로 등급 판정이 계속된다면 1등급보다 3~4등급에 사망자와 중증 질환자가 훨씬 더 많이 존재하게 됩니다.

환경산업기술원 현황자료에 따르면 2016년 12월 31일 기준 가습기 살균제 공식 피해신청자만 5341명에 달하고, 신청자 중 사망자만 1112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피해 신청자 중에서 ‘흉부 CT사진 판독에서 흉막하 부위는 비교적 보존되며 망상음영과 공기 폐색 없이 간유리음영을 동반한 미만성 소엽중심성 결절성 음영이 나타난 경우’에 해당하여 공식적인 1~2등급 피해자로 인정된 경우는 아직까지 고작 260여명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3~4등급으로 분류되어 공식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아직 조사 판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나머지 4438명에 대해 2017년 내 폐 질환 판정을 마무리한다고 하지만, 상당수의 피해 신고자들의 살균제 노출 시점이 10년 내외로 오래된 지금 시점에서 영상의학·임상의학적으로 ‘급성·아급성 폐 손상 패턴’과 일치하는 피해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형전 옥시싹싹 사용 피해자>

<주간경향>·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 기획 가습기 살균제 참사 기록 ‘엄마, 숨이 안 쉬어져’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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