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을 ‘미스 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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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잘못은 비혼 여성이라는 사실과 무관하므로 그런 표현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하자, 상대는 “대통령의 미숙함과 유아적임 때문에 ‘미스 박’이라고 부른 건데, 그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미스. 결혼하지 않은 여성 앞에 붙이는 명사.

나는 87년생, 05학번이다. 이렇게 오래되고 낡은 언어는 1970~80년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 ‘미스 리’라는 말을 들었던 건 대학생 때 민주노동당이라는 당의 지역모임에 나갔을 때였다.

한 중년의 남성이 농담조로 나를 ‘미스 리’라고 불렀고, 사람들은 웃었다. 나는 노골적으로 불쾌해했다. 불쾌감을 표현하자 중년 남성들이 당황해 하는 것이 선연하게 느껴졌다. 당시 그 당의 지역위원장은 그 중년 남성들에게 나를 ‘동지’라고 부르도록 정정했다. 그 후로 나는 그 지역모임에서 언제나 동지라고 불릴 수 있었다.

1년간 일했던 노동조합에서는 대부분의 조합원들에게 ‘미스 리’라고 불렸다. 나는 꼬박꼬박 상대방들을 ‘조합원님’ 혹은 ‘OO 국장님’ 등 직책으로 부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 직책을 이 사람들이 알기는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하다못해 “어이, 거기 미스야”라고 불릴 때면 내가 이 사람들을 동지라고 생각하고 노력하는 게 대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물론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부르지 말라는 말도 계속했지만.

그러던 어느 날, 내 항의를 들은 한 조합원이 도리어 미스 리는 존칭이고 아주 좋은 말이라며, 내가 예민하게 구는 거라고 주장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그 조합원이 들어올 때마다 꼬박꼬박 “미스터 강”이라고 불렀다. 다른 조합원들은 내가 그렇게 부를 때마다 낄낄거리며 그 조합원을 놀렸고, 그 조합원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미스 리’라고 부르지 않기 시작했다. 물론, ‘미스터 강’은 엄연한 존칭이었다.

DJ DOC가 박근혜 대통령을 노래가사에서 ‘미스 박’이라고 호칭하는 바람에 한동안 인터넷이 시끄럽게 들썩였다. 어떤 사람들은 ‘미스’라는 호칭이 대체 뭐가 문제냐, 욕도 아니고 대통령이 그럼 미스지 미스터냐고 했다. 어떤 사람은 호칭이 멸칭이 된 건 본래의 뜻을 잃어버린 것이니 오히려 더 많이 사용해서 멸칭이 아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과 어쩌다가 긴 대화를 나눴다.

대통령의 잘못은 비혼 여성이라는 사실과 무관하므로 그런 표현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하자, 상대는 “대통령의 미숙함과 유아적임 때문에 ‘미스 박’이라고 부른 건데, 그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아이를 낳아봤으면 세월호 사건을 공감했을 텐데”, “나이 60대가 되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미숙하게 행동하는 사람” 같은 말들이 쏟아졌다. ‘미스’는 존칭이라고 말하던 사람에게 왜 대통령을 ‘미스 박’이라고 부르냐고 묻자, 가지고 있던 비혼 여성에 대한 온갖 편견이 꼬리를 물고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혹은 나이가 많은 수많은 비혼 여성들을 안다. 그들은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저마다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비혼 여성이라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사실 외에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은 미숙하지도 유아적이지도 공감능력이 없지도 않다. 무엇보다 저번 주에도 그 저번 주에도 광장에 서서 박근혜와 맞서 싸워온 사람들이다.

아마도 사람에게 있어서 성별과 결혼 여부가 중요하던 시기에 그 단어는 존칭으로서 생겨났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의 역사는 그 시기를 넘어왔지만, 언어는 사회적 맥락이 뒤틀린 채 멸칭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언어는 사회적 사고를 구획한다.

DJ DOC가 박근혜를 디스한 가사를 꼼꼼히 읽어보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이해하고 공감했다. 나는 DJ DOC와 마찬가지로 박근혜의 7시간이 규명되지 않음에 분노한다. 최순실의 부패와 유착해 있었음에 분노하고, 국민연금의 구멍에, 시스템의 붕괴에 분노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명료한 사고에 기반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는 ‘미스 리’는 DJ DOC도 ‘미스 박’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쳐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이서영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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