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기 싫어서 안 가는 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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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산업재해를 겪은 노동자들 중에는 나와 같은 여성이며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조금 아픈 것으로는 병원에 가지 않고 일터에 남아야 하는 서러운 사람들이었다.

“광장에 엄청 모였어!”

지난주 토요일, 광장에 먼저 도착한 친구의 전화였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전철을 타려고 플랫폼으로 올라가는데,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서 광장에 가야 해!’ 하며 에스컬레이터 위를 뛰었다.

“헉!”

아뿔싸, 발목이 또 꺾였다. 에스컬레이터 위를 붕 날아서 넘어졌다. 양쪽 무릎에는 피가 고였다. 너무 아팠다. 그래도 광장에 가고 싶었다. 상식적인 나라에서 살기 위해 뭐든 해야 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결국 광장에 서지 못했다.

발목이 약해진 건 4년 전부터였다. 당시 수습직원이었고, 일을 잘 해야 정규직이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내 딴에는 열심히 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뛸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가 다쳤다. 산재였다. 허나 한국은 그 대단하다는 삼성에서 반도체를 만들다 백혈병에 걸려도 산재 판정을 받기 힘든 나라였다. 고작 발목을 다친 일로 산재처리가 될 거라고는 기대도 할 수 없어 그냥 넘겼다. 직장은 매우 효율적이었고, 일은 바빴고 내 일을 대신할 사람은 없었다. 3시간이 걸리던 출퇴근 시간은 4시간이 되었다. 병세는 악화되었다. 수습 주제에 병가는 입 밖에도 낼 수 없었다. 직장 동료는 쉬라는 말이 없었다. 통증이 심해져 점심시간에 삼각김밥을 씹으며 병원에 다녀오곤 했는데, 하필 병원이 멀어서 어쩔 수 없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윗선에서는 눈치를 줬다. 난 치료를 포기한 채 직장일에 몰두했다.

하지만 결국, 일을 못해서였는지 정규직 전환도 되지 못한 채 퇴사당했다. 그러고 나서야 다리는 큰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고, 수술을 하게 됐다.

“너무 늦게 왔네. 초기에 치료를 했으면 금방 나았을 텐데.”

의사는 드라마처럼 건조하게 말했다. 순간 나는 그 대사가 너무 극적이라 내 이름이 길라임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길라임처럼 당차게 일어나 “늦게 온 환자 처음 봐? 한국에서 이런 환자 차고 넘치게 봤을 거 아냐. 매일 야근인데, 병원 갈 시간이 어디 있어. 바쁘니까 초기 증상쯤은 그저 피로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경우도 많다고. 게다가 무시무시한 병원비는 또 어떻고? 오히려 누구보다 잘 아는 당신이야말로 의료지식인으로서 사회에 계속 이 사실들을 알려야 하는 거 아냐? 노동시간 줄이고, 병가 제대로 쓰게 해야 한다고 말이야!”라고 말할 뻔했지만 그곳은 현실이었다.

나는 그저 “그렇군요…”라고 말하며 수술비를 묻고 쨍그랑 소리 나는 통장 잔고를 떠올렸을 뿐이었다. 돈은 한순간에 달그닥 훅 하고 날아갔다. 당시 한 달 급여를 훌쩍 넘는 병원비를 내면서 왜 우리는 영국처럼 무상의료를 하지 못하는지, 왜 나는 일찍 병원에 못 왔던 건지,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건지, 사는 게 뭔지 그런 생각을 좀 했던 것 같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OECD 가입국 중 산재사망률이 1위인 나라가 아닌가. 올해 1월에는 생산비용을 아끼려던 일부 공장에서 에탄올 대신 메탄올을 사용해 노동자들이 시력을 잃는 1960년대 수준의 산재사고가 일어난 나라가 아닌가. 분명 그들은 나보다 더 병원에 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몸의 이상을 자각했어도 강도 높은 노동 현장에서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일을 해내야 했고, 병원에 갈 잠깐의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기업은 그저 어떻게든 싸고 빠르게 물량을 찍어내라고 했을 것이고, 하청 받은 기업은 비용이 많이 드는 기술 혁신 대신 노동자 쥐어짜기가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끔찍한 산업재해를 겪은 노동자들 중에는 나와 같은 여성이며 나와 비슷한 나이에, 내 거주지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너무나 가까운 사람들이었고, 조금 아픈 것으로는 병원에 가지 않고 일터에 남아야 하는 서러운 사람들이었다.

이쯤 되면 길라임, 아니 박근혜씨가 왜 그렇게 우주의 기운을 외쳤는지 알겠다. 각자도생의 나라다. ‘어떤 사장을 만났는가’, 그 각자의 운에 국민 개인의 생존이 달려 있으니, 그런 기운 없이는 이 험한 세상에서 온전히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또 그렇게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아 있다.

<없음벨라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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