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성준이는 겨우 목숨을 견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는 여전히 또래보다 키가 작고 몸무게도 확연히 적게 나갔다. 친구도 제대로 사귈 수 없고 수업도 정상적으로 받기 어렵다.

12월이 되면 한 아이를 떠올린다. 13살의 임성준군. 중학생이 되어야 할 나이에 아직 중학교를 가지 못했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오고 있다. 그 고통의 끝이 언제까지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 그의 생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이미 10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 동안 그는 한없는 고통을 겪었다.

12월에 임군이 특히 생각나는 까닭은 2013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 산타 복장을 하고 경기도 용인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날 그 순간만은 성준이는 고통을 모르는 것 같았다. 붉은 옷의 산타아저씨에 익숙한 그가 녹색 산타 옷을 입은 나를 보고선 “가짜 산타다!”라고 소리치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분명 그와 함께한 시간은 기쁨이었지만 그 집을 나오는 나의 뒤를 슬픔이 휘감았다. 그 슬픔은 다시 분노로 바뀌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어린이 임성준군이 2013년 7월3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어린이 임성준군이 2013년 7월3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시위장 혹은 기자회견장에서 만나

성준이를 처음 만난 건 2012년 국회에서였다. 그 뒤 2013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정 환경방문조사 때 다시 만났다. 그 뒤로도 10여 차례 쭉 시위 또는 기자회견장이나 국회 국정조사 현장과 청문회 때 만났다. 만날 때마다 그는 나에게 “산타아저씨다! 한 번 집에 오세요”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요즘도 엄마가 해주는 김치볶음밥 잘 먹니?”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해준다. 환경노출조사 때 성준이는 엄마가 해준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다. 어른들은 이들이 온전하게 자라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와 대통령의 7시간 진실에 매달리는 까닭도 바로 ‘참 나쁜’ ‘참 무능한’ 어른들이 아이들을 생지옥으로 내몰았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행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자괴감이다.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 말을 유행시킨 진원지다. 실은 “이런 나라 꼴 보려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해야 말이 되는데. 세월호 참사를 겪은 가족들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모두 한결같이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에 태어났나’라는 자괴감에 시달릴 게 분명하다.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사탕발림 상품 선전을 해대며 판 기업과 이를 관리·감독하는 데 두 손 놓고 있었던 정부를 생각하면 말이다.

성준이네도 그런 가정 가운데 하나다. 성준이는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뜀박질을 못했다. 제 힘으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도, 동생도 아니다. 의사도 아니다. 늘 그의 곁을 지키는 산소통이다.

성준이의 비극은 태어난 직후인 2003년 2월 엄마 권은진씨가 동네 인근 대형마트에서 가습기 살균제인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서 가습기에 넣어 사용하면서 시작됐다. 가끔 애경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한 적도 있다. 아기를 위한 엄마의 선택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하기 힘든 고통이 됐다. 살균제 사용 1년여 만에 이상증상이 나타났다. 돌잔치를 한 직후 아기에게 감기 증상이 나타났다. 동네의원에서는 감기라고 진단했다. 3주가 지나도록 호전되지 않았다. 아주대병원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외래 진료를 받았다. 상태가 악화돼 결국 입원했다. 입술이 파래졌다. 흡인성폐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마침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급성호흡심부전이 왔다. 심폐소생술까지 받기도 했다. 주위에서는 귀신 씌었다고도 했다. 교회 기도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절에도 다녀보았다. 기도 협착이 생겨 목에 구멍을 뚫고 강제호흡을 해야만 했다. 성준이는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는 여전히 또래보다 키가 작고 몸무게도 확연히 적게 나갔다. 그를 처음 본 사람이면 열이면 열 중학생(올해 만으로 열세살)이 아니라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로 착각할 것임이 분명하다. 친구도 제대로 사귈 수 없고 수업도 정상적으로 받기 어렵다. 엄마는 그런 아이에게 매달려 지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어머니들이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엄마의 목표는 부모가 더 이상 돌보기 힘든 나이가 됐을 때, 혹은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홀로서기를 잘 해서 이 세상의 세찬 풍파를 이겨내고 지내기를 바라지만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등 PHMG 성분을 사용해 만든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등 PHMG 성분을 사용해 만든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

옥시 사용자, 사망 133명으로 가장 많아

권은진씨는 아이를 이렇게 만든 기업과 정부가 원망스러웠다. 아들의 비극을 알리기 위한 일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행동에 나섰다. 그리고 그 현장에는 늘 성준이가 함께했다. 성준이 곁에는 또 늘 산소통이 함께했다. JTBC의 <당신의 이야기>와 KBS <강연 100℃> 등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마다지 않고 방송에 출연했다. 지난 8월 가습기 살균제 진상규명 국정조사 기간에는 영국으로까지 가 레킷벤키저 본사 등을 찾아가 시위와 항의행동을 펼치기도 했다. 성준이는 건강상태가 먼 외국 여행을 하기에는 무리여서 엄마만 다른 피해가족들과 함께 갔다.

성준이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상징하는 대표적 어린이 가운데 하나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고통은 목숨을 앗긴 가족이 물론 크겠지만 치유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치유가 쉽지 않은 피해 어린이와 그 가족들의 고통은 어찌 보면 그들보다 더 크고 오래 지속된다고 할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가장 많이 일으킨 성분과 제품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인산염을 사용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다. 홈플러스 제품인 가습기청정제와 롯데마트의 와이즐렉, 그리고 가습기클린업도 같은 성분을 사용했다. 가습기클린업은 PHMG염산염 제품이다. 이 성분은 분자량이 큰 고분자 물질이다. 고분자 물질은 크기가 커서 일반적으로 세포 속으로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세포독성에 대한 경계심을 강하게 가지지 않아 왔다. 이것이 문제였다. 고분자물질이라고 해도 양이온계 물질은 세포에 잘 흡착된다는 점을 놓친 것이다. 이 성분은 여려 독성 연구에 의해 경구독성, 피부자극성, 안구자극성 등 다양한 독성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기업도, 정부도, 전문가들도 이 물질의 지닌 악마성, 특히 호흡기를 통해 들어갔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건강 악영향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비롯해 PHMG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생명을 잃거나 큰 고통을 당한 가정은 너무나 많다. 1·2·3차 신고를 해와 피해판정(3차는 일부)을 받은 695명 가운데 옥시 사용자가 사망 133명으로 가장 많다. 중복 사용을 포함해 PHMG 사망자는 모두 176명이나 된다. 이는 전체 사망자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부산에 사는 정유진씨(46)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아내를 잃었다. 2007년 첫 아이를 낳은 아내 김민경씨는 2010년 4월 둘째 아이를 낳은 지 9일 만에 원통하게도 숨지고 말았다.

김씨 가정은 2007년부터 옥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3년째 사용해 왔다. 둘째 출산 직후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가습기와 살균제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감기인 줄로만 알았다. 김씨는 점차 숨 쉬기 힘들어 했다. 다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처럼 그도 동네 작은 병원을 거쳐 마침내 고신대복음병원에 응급실을 거쳐 입원해야만 했다. 하지만 때가 늦었다. 엑스레이와 CT를 찍은 결과 폐 섬유화가 이미 많이 진행돼 폐 절반 이상이 망가져 있었다. 원인도 모른 채 죽었다. 병원에서도 원인미상 폐렴이라고 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뉴스를 듣고 2012년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이 사실을 알렸다. 정부 1차 조사·판정에서 2단계 판정을 받았다. 큰 아이는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다. 둘째는 머지않아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아이들은 이처럼 큰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지만 하늘나라에 간 엄마를 만날 길은 영원히 없다. 아이들에게 평생의 한을 어른들이 남겼다. 옥시레킷벤키저가 이런 악행을 저질렀다. 국민을 안전하게 돌보지 못한 국가가 이 가정에 몹쓸짓을 했다. 그러고도 아직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 기업은 뒤늦은 사과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정부는 안타까운 일이라고만 할 뿐 비극의 가정들을 다독이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가 끝까지 이들의 잘못을 드러내 단죄해야만 그래도 살아남은 가족들의 분노가 약간이나마 풀릴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Q&A / 1. 가습기 살균제가 무엇인가?

/ 첫 가습기 살균제 개발과 시판을 알리는 <매일경제>의 1994년 11월 16일자 기사.

/ 첫 가습기 살균제 개발과 시판을 알리는 <매일경제>의 1994년 11월 16일자 기사.

한국의 겨울 날씨는 춥고 건조하다. 여름의 해양풍과 달리 대륙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수십 년간 아파트 공급이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밀폐와 단열이 잘 되는 거주 조건에 놓여 있다. 겨울이면 온돌난방으로 바닥은 따뜻하고 방안의 공기는 매우 건조한 상태가 되지만 춥기 때문에 환기를 잘 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린아이나 노인들이 있는 집에서는 가습기를 많이 사용한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어김없이 습도조절을 잘 하라고 권한다. 가습기를 사용하라는 말이다.

가습기는 물통에서 조금씩 공급되는 물을 진동판으로 잘게 쪼개서 미세한 입자 형태로 공기 중으로 뿜어내는 초음파식과 뜨겁게 데워 수증기를 뿜어내는 가열식,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는 복합식이 있다. 대부분이 초음파식이나 복합식을 사용하는 편이다. 물통의 물은 가습기의 사용량과 사용횟수에 따라 보통 1~2일에 한 번씩 보충하게 된다. 이 편리한 기기도 단점이 있는데, 물통 내부에 물때가 끼거나 미생물이 생긴다는 점이다. 물을 갈지 않은 상태에서 며칠 동안 사용하거나 오랜만에 사용하게 되면 이물질이 보일 정도로 물이 탁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사용자들은 물을 보충할 때 물통을 한두 번 흔들어 내부를 씻어내려고 하지만 통은 크고 입구는 작은 구조 때문에 손이 깊숙이 들어가지 않아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하기가 쉽지 않다. 진동판의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비누나 세제를 사용하지 말라는 주의사항도 붙어 있어 청소를 더 어렵게 한다.

물이 흐르지 많으면 이끼가 끼고, 통에 물을 담아 방안에 며칠씩 가만히 놓으면 이물질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가습기와 같이 편리한 기기에 그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매우 불편한 점으로 생각하고 물통을 청소하는 것을 귀찮아 한다.

가습기 사용자들에게 거슬리는 이야기는 청소를 자주 하지 않으면 이물질 발생으로 건강에 안 좋다는 소리다. 틀린 말이 아니다. 의학계나 산업보건 분야에서 ‘가습기 폐’라는 명칭이 있을 정도로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들에게서 폐질환이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는 게 사실이다. 가습기 사용자들은 신문과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를 자주 접하곤 했다.

바로 이렇게 가습기의 구조적 특징과 사용상의 불편함,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언론 보도 등의 환경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살균성분의 물질을 물통에 넣기만 하면 미생물을 억제할 수 있어 청소를 안 해도 된다는 편리함을 목적으로 1994년 SK케미칼(당시 유공)에 의해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2016년 8월 29일 ‘가습기 살균제 사건 국회 국정조사’의 청문회장에서 유공 바이오텍 사업팀의 개발자 노승권은 증인석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가습기 물통의 미생물 번식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했다”고 말했다. SK케미칼(당시 유공)이라는 기업과 노승권이라는 사람이 희대의 살인제품인 가습기 살균제를 세상에 처음 내놓은 장본인인 것이다.

주로 사용되는 살균제는 CMIT/MIT(유공, 애경, 이마트, GS, 다이소 등), PHMG(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가습기클린업 등), PGH(세퓨, 아토오가닉) 세 가지다. 프리벤톨R80(레킷벤키저 인수 이전의 옥시 제품), BKC&Tego51(LG 제품) 등과 같은 살균물질도 사용된다. P&G의 방향제 페브리지에 사용되는 살균물질은 DDAC이다. 모두 인공적으로 만든 화학물질들이다. 천연 살균성분이라고 하는 피톤치드를 사용한 제품도 있었지만 살균효능이 떨어서인지 대세인 인공화학물질 제품을 좇아가기 위함에서인지 곧 성분을 바꿨다.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대부분 액상이지만 알약 형태(엔위드)나 고체 형태(옥시싹싹 고체형)도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빼앗긴 숨> 저자>

<주간경향>·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 기획 가습기 살균제 참사 기록 ‘엄마, 숨이 안 쉬어져’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