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인정하고 일못유니온 가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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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몇 달 만에 ‘일못’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심지어 그녀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하기 못했으며, 임기 동안 오랜 친구의 대리인 역할만 해 왔다는 말도 들린다.

나는 요새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 대통령을 무척 좋아하셨던 할아버지는 그녀가 텔레비전 화면에 나올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운 피부는 언제나 찬사의 대상이었고, 가끔 그녀가 중국어나 영어로 연설을 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할아버지는 그녀의 불굴의 의지와 성실함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으며 내 표정을 살피셨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내가 아는 지지자 한 사람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선거기간 동안 박근혜 후보의 지지자들은 그녀가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오고, 북한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제어해줄 것이라고 공언했다. 어쩌면 대통령 자신도 자기가 가진 능력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통령 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라는 발언은 유명하다.

그런데, 그랬던 대통령이 몇 달 만에 ‘일못’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그녀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하기 못했으며, 임기 동안 오랜 친구의 대리인 역할만 해 왔다는 말도 들린다. 비난의 수위가 높아지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바로 이 대사 앞에서 내 감정은 한없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자괴감은 장학금을 받기 위해 가난을 증명해야 할 때, 머리를 짜내 준비한 보고서가 대차게 까였을 때, 작업 중에는 안 보이던 오타가 발표자료 최종본에서 발견되었을 때, USB 메모리에 넣어 온 프레젠테이션 파일이 최종본이 아닌 초안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표정이 안 좋다는 이유 혹은 노동운동을 할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해고당했을 때, 퇴사 후 가족에게 무능력자로 취급당할 때 ‘일못’들이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이 느낀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고, 나아가 그녀가 동시대인들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도 했다. 직장이라는 지옥과 실직자라는 지옥 사이를 오가는 우리 시대의 노동자들의 현실을 표현하는 데에 그녀의 한마디만큼 적절한 표현이 있었는가?

물론 일 못하는 사람들도 18대 대통령 임기 동안 청와대에서 일어난 정의롭지 못한 일들에 대한 분노를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11월 19일에 깃발을 들고 광화문광장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 자리는 쉽게 묘사할 수 없는 불편함을 유발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 그룹이 ‘햄네스티 인터내셔널’ 같은 가상의 조직과 동일시되어 언론을 탔다는 점은 ‘살짝 불편했지만 재미있는 해프닝’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성과자 대통령을 해고하라’는 논리는 나에 대한 위협으로도 들렸다. 저성과자 해고는 지금 모인 이들이 그렇게도 혐오하는 바로 그 대통령의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위기는 대통령 개인의 무능함에서 온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일에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의 경영자들은 신입사원의 머리와 눈치가 훌륭해서 스스로 일을 터득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알아서 해결하기를 바란다. 어쩌면 사람들은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대통령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가 훌륭한 사람이어서 경제도 살리고 외교도 잘하면 좋겠다는 희망만으로 ‘긍정적 사고’, ‘강한 추진력’, ‘용맹함’ 같은 덕목을 보여주는 사람을 뽑은 것이 지난 대선의 패착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런 측면이 있다면, 우리는 18대 대통령 선거 같은 현상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민 끝에 깃발을 든 군중 사이에서 이렇게 외쳤다.

“대통령은 인정하고 일못유니온 가입하라.”

물론 대통령이 실제로 우리 그룹에 가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일 못함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면, 유능함의 가면 뒤에 숨을 필요가 없었다면, 그래서 국정운영에는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여정훈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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