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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는 “애경산업에서 완제품을 공급받아 이름만 붙여 팔았다”면서 애경에 책임을 미루고, 애경은 “SK케미칼에서 제조한 제품을 판매만 했다”면서 SK케미칼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SK와 애경 뒤에 꼭꼭 숨어 있는 이마트가 과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이마트는 한국 최초로 할인점 사업을 시작했다. 1996년 국내 유통시장이 완전 개방되어 세계적인 유통업체가 앞다퉈 한국 시장을 공략했다. 세계적인 유통업계의 공룡으로 불리던 월마트도 한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토종 할인점을 내세운 이마트는 ‘애국심 호소’ 전략으로 경쟁에서 이겨 월마트코리아 점포를 인수하게 된다. 이마트는 대형마트 브랜드 1위, 매출 1위 등 한국을 대표하는 할인점으로 성장한다. 1997년 ‘최저가 보상제’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한편 할인업계 최초로 생필품에 PB(자체개발상품)상품을 개발한다. 이마트 PB상품 ‘이플러스’는 가공·신선식품과 화장지·세제·섬유유연제 등 생활용품을 기획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게 된다.

2006년 이마트는 이플러스 상품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도 판매했다. 이 시기 가습기 살균제 시장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과 애경 가습기메이트가 양분하고 있었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는 옥시 제품의 성분을 모방한 PB제품을 기획했고, 이마트는 애경에서 납품 받아 PB제품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했다. 이마트 PB 가습기 살균제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6년 동안 35만7000개가 팔렸다.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따르면 이마트는 2010년 10월부터 6개월간 옥시 가습기당번과 애경 가습기메이트도 13만1238개를 9만1466명에게 판매했다. 간단히 계산하면 옥시와 애경 제품을 2000년부터 판매해온 이마트는 10년간 260만개를 판매한 셈이다. 자체 PB제품까지 더하면 대략 300만개를 팔았다. 전체 가습기 살균제 판매량은 2005년 정점을 찍고 감소했다. 이마트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한 제품은 300만개가 넘을 것이다. 이마트는 옥시와 애경 제품, 자체 PB상품까지 합하면 최종 소비자에게 가습기 살균제를 가장 많이 판매한 기업이다.

김태종씨 아내가 의료용 산소통과 산소튜브를 착용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김태종씨 아내가 의료용 산소통과 산소튜브를 착용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이마트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대기업 중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마트는 “애경산업에서 완제품을 공급받아 이름만 붙여 팔았다”면서 애경에 책임을 미루고, 애경은 “SK케미칼에서 제조한 제품을 판매만 했다”면서 SK케미칼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SK와 애경 뒤에 꼭꼭 숨어 있는 이마트가 과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이마트 제품을 믿고 사용하다 목숨을 잃거나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들을 소개한다.

990원짜리 제품으로 풍비박산 난 가정

김태종씨 부부는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고, 슬하에 장성한 아들 형제를 두었다. 여느 가정처럼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지금은 풍비박산이 났다. 아내 박씨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결핵을 앓았다. 지병으로 기관지 확장증과 천식이 있었다. 결혼하면서부터 환절기가 되면 아내가 항상 힘들어 해 가습기를 사용했다. 안방의 가습기는 4~5년마다 교체했다. 아이들 방에도 가습기가 있었지만, 가습기 살균제는 두 방 모두 사용하지 않았다.

2007년 김포공항 내에 있는 이마트에서 진열된 PB 상품 가운데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가 눈에 띄었다. 실내가 건조해 가습기를 많이 사용하던 차에 살균 효과가 있어 아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마트 김포공항점은 주차가 편리해 자주 이용하는 할인점이었다. 2003년 개점해 2014년 문을 닫을 때까지 국내 이마트 점포 가운데 최대 규모로, 지역 상권을 독점하고 있었다. 김씨는 이마트가 큰 기업이고, 자사 이름을 내걸고 판매하는 PB상품을 확실하게 점검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할인행사를 하는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 1000㎖짜리 한 병을 990원에 구입했다. 그렇게 해서 990원짜리 가습기 살균제를 쓰기 시작했다.

2007년 가을에 구입한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는 안방 가습기에만 다음해 5월까지 사용했다. 아내는 평소보다 숨차고 걷는 것도 힘겨워 하더니 7월에 쓰러졌다. 급히 동네에서 제일 큰 병원을 갔다. 하필 일요일이라 응급실 당직의사는 링거와 산소 공급 처방만 했다. 다음날 오전 담당의사가 엑스레이 촬영사진을 보더니 “여기서도 죽고 큰 병원을 가도 죽고 집에 가도 죽으니 알아서 하라”고 심각한 말을 했다. 그날 오후 사설 응급차를 불러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의사는 죽을 사람을 왜 데려왔냐는 말투였다. 병원 안에 들이지도 않으려 해 친척들이 수소문해 겨우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심정지가 와서 며칠 후 깨어났다. 당시 폐가 48%밖에 안 남았다고 들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열흘 만에 퇴원했다. 2008년 그해 겨울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숨 쉬기가 점점 힘들었다. 2009년 5월 다시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보름 남짓 있다 퇴원했다. 퇴원하면서 집에서 사용할 24시간 산소발생기가 필요했다. 구입할 돈이 없어 월 15만9000원에 임대했다. 2010년 7월부터 문밖을 나갈 때는 휴대용 산소통에 의지해 숨을 쉬었다. 집안에서는 산소발생기로도 힘들어 해 2013년 3월부터 의료용 산소통을 썼다. 가장 큰 20ℓ 산소통을 일주일에 3개, 한 달에 12개를 사용한다. 산소통은 매주 금요일 배달 받는다. 3층에 사는 김씨는 무거운 산소통을 혼자 올리지 못해 아들이 도와줘야만 집안에 들일 수 있다. 김씨 아내는 990원짜리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산소통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몸이 돼버렸다.

초등학교 2학년 민지는 지금도 비염 스프레이제와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초등학교 2학년 민지는 지금도 비염 스프레이제와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아이러니하게도 이마트 PB 가습기 살균제가 아내 몸을 망가뜨리고 치료비로 가정이 풍비박산 났지만, 김씨 가족은 이마트를 계속 이용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시장을 갈 수 없어 인터넷으로 이마트에서 채소, 과일 등 식재료를 주문하면 집까지 배달을 해주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선천성 심장병 딸 위해 사용한 엄마

서울시 강동구에 거주하는 정미현씨 부부는 딸 넷을 두었다. 2001년 건강하게 태어난 첫째 딸이 4개월쯤 됐을 때 선천성 심장병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정상적인 심장은 심방 2개와 심실 2개를 가지고 있다.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우는 좌심방·좌심실·우심방·우심실이 심장구조인데, 보경이는 심장 방이 하나인 ‘단심실’이라는 심장기형으로 태어난 것이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해마다 한 차례씩 세 번에 걸쳐 서울아산병원에서 심장수술을 했다. 세 번째 수술을 하고 소아과 병동에 입원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만나 알게 된 다른 아이 보호자가 가습기 살균제가 아이에게 좋을 거라며 소개해줬다. 그 길로 강동구 명일동에 위치한 이마트에 가서 진열된 이마트 PB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현씨는 2004년 둘째 딸을 출산했다. 첫째가 1년에 반 이상은 병원 응급실과 입원을 반복하다 보니 둘째는 다른 집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첫째 딸이 세 번째 수술을 한 다음해 심장수술로 인한 ‘플라스틱 기관지염’이라는 합병증이 왔다. 당시 아산병원 의사는 세계에서 세 번째 발생한 질환이라고 했다. 보경이가 밤에 기침하고 숨을 제대로 못 쉬면 미현씨는 손이나 안마기로 등을 두드려보기도 하고 폐암 환자에게 사용하는 호흡기 치료제를 써가며 매일 밤새 병간호를 했다. 미현씨는 모 카드사 홈페이지에 첫째 아이의 투병 글을 썼고, 사연을 본 아동 구호단체를 통해 후원금을 받기도 했다.

미현씨네 형편이 안 좋은 것을 알게 된 분의 도움으로 호흡기 치료제와 가래를 빼는 흡입기를 사용했다. 또 병원 처방전을 받아 휴대용 산소호흡기와 산소발생기를 집에 들여놨다. 집에 있는 동안은 가습기에 이마트에서 구입한 가습기 살균제를 넣어 매일 더욱 열심히 틀어줬다. 첫째는 어느덧 만 7세가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픈 딸이 지각하거나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늘어나자 1학년 담임 선생님은 다음해에 학교를 다시 보내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래도 첫째는 꿋꿋이 학교를 다녔다. 2008년 6월 새벽, 갑자기 몸이 이상해 구급차를 불러 병원 응급실을 갔다. 한 시간가량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첫째 딸은 깨어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이마트 살균제 제품들. / 환경보건시민센터

이마트 살균제 제품들. / 환경보건시민센터

2007년 봄에 태어난 셋째 딸은 임신 때부터 첫째를 병간호하면서 한 방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첫째가 하늘나라로 간 후에는 가습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셋째도 태아 때와 출생 후 1년 넘게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에 같이 노출됐다. 셋째는 감기에 자주 걸리고 간질이 있다. 작년에는 병원에서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미현씨는 셋째 딸이 열 살도 되지 않아 간경화가 온 이유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일 거라고 의심하고 있다. 첫째 병간호 때문에 다른 집에서 생활한 둘째 딸과 2011년에 태어난 넷째 딸은 가습기를 쓰지 않았다. 둘째와 넷째는 다행히 건강하다.

가습기 살균제 쓸 때만 폐렴 걸리는 아이

2008년 여름, 충남 아산에 사는 정씨는 20대 초반에 건강한 딸 민지(가명)를 낳았다. 정씨네는 2010년 봄부터 딸을 위해 가습기를 구입했다. 처음에는 물을 끓이고 식혀서 가습기 물통에 넣어 사용했다. 세균을 없앨 수 있고 가습기 청소도 번거로워 가습기 살균제를 써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정씨는 고향 천안에서 아산으로 이사를 왔지만 천안의 대형마트를 주로 이용했다. 예전부터 다니던 이마트 천안쌍용점에는 몇 가지 가습기 살균제가 진열되어 있었다. 자사에서 판매하는 이마트 PB상품이 저렴하고 신뢰가 가 PB상품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 500㎖짜리를 구입했다. 제품은 큰 것(1000㎖)과 작은 것(500㎖) 두 가지가 있었다. 제품 라벨에 사용기한이 ‘개봉일로부터 6개월’라고 적혀 있어 작은 것을 구입했다.

그런데 민지가 가습기 살균제를 쓰면서 바로 기침증상이 있었다. 가습기는 기침을 할 때나 낮잠 잘 때마다 틀어주었다. 병원을 다니면서도 계속 사용했다. 사용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원인미상 폐렴으로 일주일간 입원했다. 여름이 되어 가습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민지 폐렴도 나아졌다. 그해 겨울이 다가올 때 가습기 살균제를 다시 구입했다. 이번에는 1000㎖짜리를 구입했다. 민지는 가습기를 쓰고 나서 또 기침을 했다. 그럴수록 정씨는 가습기를 더 틀어주었다. 소아과 병원을 두 달 다녀도 기침이 멎지 않았다. 2011년 4월 폐렴으로 기침이 너무 심해 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했다. 퇴원 후에도 가습기를 조금씩 쓰다가 정부가 원인을 발표한 8월 이후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았다.

민지는 돌 전까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은 건강한 아이였는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2010년 6월과 2011년 4월 두 차례 폐렴으로 일주일씩 입원했다. 이후에 천식을 앓은 적도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민지는 지금도 환절기에는 비염과 부비동염(축농증)이 심해 스프레이제와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 정씨도 민지와 같이 비염과 부비동염을 달고 산다. 민지는 1차 판정에서 4단계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정씨는 올해 비염과 부비동염으로 4차 피해신고를 했지만,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호흡기질환은 접수조차 받지 않는다며 제출한 의무기록을 반송했다고 한다.

2012년 3월 한국환경보건학회의 조사 때 정씨가 딸에 대한 미안함을 쓴 글에서 가습기 피해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이 어떠한 지를 잘 읽을 수 있다.

“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게 되었는가?라는 마음 속의 질문이 떠나질 않습니다. 병원 퇴원 후에도 정확한 진단을 받은 적도 없고, 앞으로 어떠한 후유증이 생기게 될지 불안하고 초조하고 우울합니다. 아이에게 큰 죄를 지은 것 같고, 미안함과 절망감, 죄책감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평생 이 마음의 짐을 못 내려놓을 것 같습니다.”

<임흥규 환경보건시민센터 팀장>

<주간경향>·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 기획 가습기 살균제 참사 기록 ‘엄마, 숨이 안 쉬어져’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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