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서점의 확장 ‘오프라인 중고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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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와 대형서점들도 중고서적을 앞세운 온라인 서점의 오프라인 진출에 불만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중고시장 확대는 신간 출판을 더 위축시킬 것이라고 예측한다. 반면 독서층 확대에는 중고책 시장이 더 유용하다는 반론도 있다.

책을 사기 위해 어디를 찾아가야 할까. 동네서점이 사라진 후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이 도서 구매의 중심이 됐다. 동네서점을 살리겠다고 시작된 2014년 도서정가제 실시 이후에도 문을 닫는 소규모 서점들은 늘었고,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으로 몰리는 발길은 막을 수 없었다. 출판시장의 속사정이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책을 구매하는 이들은 책값이 ‘너무 비싸다’고 말한다. 그 비싼 책값의 여파에 경제침체의 영향까지 겹쳐 최근 몇 년 사이 출판시장의 성장은 침체기에 빠졌다. 그러나 주춤해진 출판시장에서도 유독 활기를 찾은 곳이 있다. 바로 중고서적 시장이다.

2011년 9월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종로2가에 최초로 오프라인 매장을 연 이후 현재까지 32개의 매장으로 늘어났다. 바다 건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알라딘의 오프라인 매장이 영업하고 있다. 알라딘이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중고책 시장을 선점했고, 2014년부터 인터파크 서점과 예스24도 오프라인 매장으로 눈을 돌렸다. 올해 초 예스24가 강남대로에 대규모 중고책 서점을 열자 기존 알라딘 강남점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만큼 온라인 서점의 오프라인 매장은 서점가의 이슈가 되고 있다.

헌책이 새로운 읽을거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 김천

헌책이 새로운 읽을거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 김천

대부분 8만권 이상의 막대한 장서량

현재 온라인 서점 중 가장 큰 매출을 올리는 곳은 예스24, 그 뒤를 알라딘과 교보문고가 추격하는 형세이다. 한때 온라인 서점 매출순위에서 뒤처졌던 알라딘은 중고책 시장을 선점하면서 매출을 늘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알라딘은 그에 힘입어 현재 온라인 서점 매출 2위의 자리에 올랐다. 그만큼 중고책 시장은 온라인 서점의 블루오션으로 인식된다.

사람들이 오프라인 중고책 서점을 찾는 이유는 첫째가 저렴한 가격이다. “책값이 너무 비싸다.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책값은 올라서 새 책을 사기에는 부담이 된다. 소설이나 베스트셀러로 유명해진 책들은 헌책을 사도 보는데 무리가 없어서 애용한다.” 매장에서 만난 이들이 들려준 이유는 명확했다. 도서정가제 이후 할인율이 고정되자 상대적으로 가격이 오른 것처럼 느껴진 점도 있다고 했다. 독자들의 생각을 반영하듯 알라딘 종로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들은 역대 베스트셀러와 문학전집류였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아직도 가장 많이 팔린다. 그렇게 많이 팔렸는데 아직도 팔린다는 사실이 놀랍다.” 초창기부터 근무한 매장 직원의 말이다.

오프라인 중고서점의 또 다른 장점은 막대한 장서량에 있다. 예스24 강남점의 경우 약 8만권의 장서가 있다. 알라딘 일산점은 약 10만권. 기타 매장들도 대부분 8만권 이상을 구비하고 있다. 다양한 책들은 인터넷과 매장 컴퓨터를 통해 실시간 검색이 가능하고, 매장에서 책 상태를 직접 확인한 후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고책에 대한 편견을 불식한 것이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상태에 대한 엄격한 분류를 표준화하여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을 책정한 것도 예전 헌책방과는 달라진 환경이다.” 마케팅 담당자의 설명은 잘 분류된 서가에 꽂힌 책들을 보면 확실하게 실감이 난다.

온라인 서점의 또 다른 힘은 IT기술과 결합된 물류시스템에 있다. 중고 시장에 최신 정보시스템을 결합하여 매입, 재고, 판매, 물류 정보를 통제한다. 각 매장에서 매입한 중고서적은 실시간으로 분류되어 가격 책정과 재고를 관리한다. 팔 수 있는 책, 살 수 없는 책이 실시간으로 분류된다. 알라딘 종로점 입구에 게시된 오늘 들어온 책의 수량은 1200권. 그 가운데 800권이 현장에서 매입한 책이고 나머지는 물류센터에서 입고된 책이다. 각 매장의 수요에 따라 매입서적은 물류센터로 가기도 하고 보충해 받기도 한다. 새 책을 관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알고리즘이 감춰져 있다.

과거 헌책방의 중심지는 청계천이었다. 고물상 등을 통해 수집된 책들은 안목 있는 서점 주인에 의해 가려져서 책 사냥꾼들의 손길을 기다렸다. 운이 좋으면 절판된 책이나 희귀본을 싸게 구입하는 재미가 있었다. 청계천 헌책방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국학 관련이나 아동서적류를 취급하는 몇몇 서점만이 남았을 뿐이다. 일부 헌책방들은 온라인으로 진출해서 소규모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름 희귀본 중심으로 연구자료나 역사자료를 찾는 이들은 아직도 헌책방 순례를 마다하지 않는다.

온라인 서점의 오프라인 매장. / 김천

온라인 서점의 오프라인 매장. / 김천

“동네서점의 마지막 숨통 조여” 비판도

여론의 별다른 저항 없이 일찍 문을 열었던 알라딘과 달리 후발주자인 인터파크와 예스24는 오프라인 매장 개설에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때문에 인터파크는 대여점의 형태로 우회하여 북파크 매장을 오픈했고, 예스24는 전자책 체험관으로 시작해 오프라인서점에 진입할 수 있었다. 당연히 중소서점들의 불평이 터져나왔다.

“재벌기업이 동네 시장에서 새우젓 파는 격이다. 대형서점들과 온라인 서점이 독점체계를 형성하다가 독서층의 수요가 줄어들자 자구책으로 중고서적 판매까지 침투한 것이다.” 30년 이상 중고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고구마서점 이범순 대표의 비판은 설득력이 있다. 국내 출판시장은 다양성이 부족하고 시류에 따라 기획된 책들이 쏟아져나와 유행처럼 소비되고 만다는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동네서점과 소규모 출판사에 혜택을 주기 위해 실행됐다고 하는데, 그 결과는 오히려 피해를 주고 있다. 대형서점들이 소규모 매장으로 침투하는 데 이어서 중고책 시장까지 싹쓸이하고 있다. 동네서점 입장에서는 중고책 매장이 늘어나는 것은 치명적이다.”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강모씨는 대규모 중고책 매장은 결국 동네서점들의 마지막 숨통을 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출판계와 대형서점들도 중고서적을 앞세운 온라인서점의 오프라인 진출에 불만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중고 시장 확대는 신간 출판을 더 위축시킬 것이라고 예측한다. 반면 독서층 확대에는 중고책 시장이 더 유용하다는 반론도 있다. 책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에서 소모성 상품으로 변질되고, 비슷한 책들이 범람하는 풍조라서 결국 콘텐츠 부족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기에 중고책 시장이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은 매출 극대화를 위해 책 광고를 끼워 팔고, 노출이 많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좋은 책이 설 자리를 잃는 악순환을 스스로 자초했다는 비판도 귀 기울여 볼 만하다.

오프라인 중고책 서점의 매력 중 하나는 다 읽은 책을 되사주는 바이백 시스템이다. 책을 팔고 싶으면 매장에 들러 책 상태를 검수받고 책정된 가격으로 되판다. 책 가격은 상태와 재고 규모, 인기도에 따라 철저하게 수치화되어 있다. 매입창구에서 가끔씩 가격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진다. “책을 파는 입장에서는 자기 책이 깨끗하니 많이 받아야 된다고 항의한다. 대부분은 세분화된 기준표를 보여주면 납득하는 편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책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고서적을 사들이는 일이 더 중요하다. 상품 확보를 위한 전초기지이기 때문이다.” 매장 직원은 책을 팔다가 숨겨둔 비상금이나 과거의 연애편지가 나오는 소소한 일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 매장에서 하루에 사들이는 책들은 대략 500권에서 1000권 사이. 알라딘의 경우 분당점의 매입량이 가장 많아 5000권 정도를 매입하는 날도 있다. 부모들이 읽고 난 아이들 책을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책뿐 아니라 음반과 독서 관련 용품, 음료 등도 매장의 효자상품이다.

책뿐 아니라 음반과 독서 관련 용품, 음료 등도 매장의 효자상품이다.

이미 사라지고 구할 수 없는 책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오프라인 중고서적 매장의 장점이다.

이미 사라지고 구할 수 없는 책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오프라인 중고서적 매장의 장점이다.

현재 대형서점은 독자들이 편하고 자연스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로 꾸미는 추세다. 오프라인 중고서점들도 그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예스24 강남점은 어린이 전용공간을 만들어 전집류를 아이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꾸몄다. 부모와 아이들을 동시에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다. 매장 한편에는 대형 테이블을 마련하여 누구나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인터파크 명동점은 젊은 직장인들이 많은 지역의 특성에 따라 여행서적과 자기계발 서적류를 구비하고 음료를 즐기며 책을 볼 수 있는 카페 공간을 마련해두었다. 알라딘 신촌점은 젊은층이 몰리는 곳이라 취업과 학업 관련 책들을 많이 취급한다. 오프라인 매장이 위치한 입지에 따라 상품과 공간 배치에 변화가 있다.

책뿐만이 아니라 부가상품을 함께 취급하는 것도 오프라인 매장의 특징이다. 책과 관련된 캐릭터 상품은 마니아층까지 있을 정도로 효자상품이 됐다. 뿐만 아니라 알라딘은 독자적인 커피음료 사업을 오프라인 매장과 결합하여 추진하고 있다. 원두 수입과 블랜딩까지 직접 관장하고 현재 6개 매장에 커피판매장을 갖추고 있다.

책 다시 사들이는 바이백 시스템

미국의 대표적인 온라인 서점 아마존은 시애틀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연 후, 앞으로 미국 전역에 300개 이상 오픈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마존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책뿐 아니라 식음료품을 비롯하여 아마존 온라인에서 취급하는 다양한 상품을 함께 취급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이 주는 상승효과를 최대한 살리겠다는 계획이다. 알라딘의 커피음료 시장 진출은 아마존의 행보와 더불어서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공식적으로 다른 상품을 취급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책이 아닌 알라딘 상품의 인기와 매장 확장의 추세를 보면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집계조차 되지 않던 중고책 시장의 규모는 불과 5년 만에 수천억원대의 시장으로 커졌다. 알라딘의 독주에 예스24와 인터파크가 가세한 이상 온라인 서점의 오프라인 진출과 중고책 시장의 성장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전체 출판시장의 규모에 비하면 아직 미미하지만 그 성장성은 무시할 수 없는 규모가 됐다.

시장이 있는 곳에 자본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자본의 힘으로 시장의 판세를 좌지우지한 결과가 현 출판시장의 침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시장의 종사자가 나누어야 할 이익을 누군가가 독식해버린다면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브레이크 없는 자본주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팔려나갔던 책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새 책 못지않게 잘 분류되고 또 다른 독자의 손에 닿을 수 있도록 제자리를 찾는다. 서가에서 사라졌던 책이 다시 서가로 돌아오는 현상은 책의 운명을 연장하는 긍정적인 일이다.

온라인 서점의 오프라인 중고책 서점과 더불어 출판시장에서 눈여겨 볼 만한 또 다른 요소는 독립출판과 개성 있는 소규모 서점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시장의 흐름을 좌우하지는 못하지만, 콘텐츠의 다양성과 새로운 생태계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희망이 있다. 거대 출판사와 서점이 좌우하는 기존의 출판시장, 새롭게 등장한 중고책 시장과 이를 끌어가는 온라인 서점, 그리고 개성만점의 독립출판. 모두 분발하여 우리 시대 문화가 풍성해지는 새로운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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