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공무역의 길목 ‘인천항 중국교역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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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대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간판은 ‘교역, 무역, 환전, 한중, 급송’ 등의 글귀이다. 그야말로 산둥성 어느 상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분위기도 물씬했다. 한·중교역의 증가 분위기를 타고 급격히 형성된 새로운 상가의 앞날은 밝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헌법 제3조이다. 우리는 국가의 영토 속에 살고 있지만 그것이 끝나고 시작되는 곳을 눈으로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삼면이 바다이고 북쪽은 준전시상태의 비무장지대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영토가 시작되고 끝나는 실제적인 경험은 대부분 항만과 공항에서 이루어진다. 곳곳에서 출발한 길들이 그곳에서 끝난다. 그곳에는 또 영토 밖으로 뱃길과 하늘길이 이어진다. 그 한쪽에서 물건을 팔고 사는 국경무역의 현장이 있다.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밖에는 중국으로 물건을 파는 소상점가가 몰려 있다.

화요일 오후 2시쯤 중국 단둥에서 인천을 오가는 동방명주호가 인천항 제1국제여객터미널에 입항했다. 중국인 관광객과 상인이 세관을 통해 몰려나오고, 대기실 안에는 몇 시간 후 그 배를 타고 단둥으로 갈 여행객들이 앉아 있다. 쇼핑백과 가방에는 면세점과 백화점에서 산 물건이 수북하다. 터미널 밖 수화물 접수대에는 상품 상자가 빼곡히 쌓여있다. 관광객들이 짐으로 부친 물건이다. 국산 믹스커피와 파스, 그리고 김 상자가 눈길을 끈다. 수출화물로 보일 정도지만 모두 관광객들이 선물로 산 상품이다.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주변에는 약 80여개 이상의 중국 교역관련 상가가 있다.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주변에는 약 80여개 이상의 중국 교역관련 상가가 있다.

사드 미사일 이후 중국 상인들 사라져

제1국제여객터미널에서 길을 건너면 대략 30여곳의 상점들이 중국어 간판을 달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 중 제법 큰 가게를 들어서자 예상밖으로 손님은 볼 수 없었다. 진열대의 물건들은 화장품과 생활잡화, 그리고 주방용품. “이 시간이면 40명 이상 되는 인파가 줄을 서서 물건을 살 때인데, 보다시피 아무도 없다. 이젠 끝났다. 백화점은 장사가 된다는데 여기는 썰렁하다.” 이곳에서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이모 사장의 노여움 섞인 대꾸다.

몰려오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로 인해 면세점이 누리는 호황을 이곳 상가에서는 볼 수가 없다. “한 서너 달 됐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발표 이후 딱 발길이 멎었다. 게다가 요즘 서해 중국어선 불법조업 문제가 불거지자 중국 상인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드 문제로 한·중교역에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정부의 예측과 달리 시장에는 빙하기가 닥쳤다고 했다.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의 상점들은 대부분 관광객과 상관없는 소위 따이공(代工)무역의 현장이다. 따이공은 중국을 오가는 소규모 무역의 가장 하부조직인 짐꾼들이다. 보통 10명에서 100명까지 하나의 상단을 이루어 세관에서 허용하는 물건을 들고 배를 탄다. 중국에서 인기 있는 중소기업의 상품을 들고 가서 올 때는 농산물을 들고 오는 원시적인 형태의 국경무역이 따이공무역이다.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르지만 따이공 한 사람이 대략 20만원 정도의 물품을 사서 나른다. 수출입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전체 교역량은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대련(다롄)과 영구(잉커우) 쪽은 완전히 사라졌다. 연태(옌타이)도 50명 이상이던 상단이 20명 이하로 줄었고, 석도(시다오)와 단동(단둥)도 줄어드는 추세다. 지금과 같은 한·중관계라면 앞으로도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중국 상인들은 대부분 좋지 않다고 ‘뿌하오(不好)’를 외친다.” 중국 정부의 외교적인 수사에 비해 세관 등의 실제적인 대응은 단호하며 눈에 보이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상인들의 대답이다.

따이공무역은 한국과 중국 간의 교역이 늘고 중국에 한류가 불면서 급격히 늘었다. IMF 금융위기 사태 이후 길거리로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마지막 활로를 따이공무역에서 찾았다는 증언도 있다. “한창 때는 한·중페리 승객 중 절반 이상이 따이공들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규제가 더해지면서 조금씩 줄어들다가 이제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중국 쪽 따이공들도 사드 사태 이후에는 끊어졌다.”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에서 16년째 운송영업을 하는 기사는 따이공 이야기가 나오자 이젠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한가한 상가 안에 가끔 중국인 손님이 찾아와 물건을 사고 있었다. 주로 찾는 물건은 화장품과 커피믹스. 거의 한두 개씩을 사서 급히 발길을 돌렸다. “저 사람들은 선원이다. 많이 살 수 없고 주변에서 부탁 받은 물건 한 개 정도만 산다.” 한국산 화장품과 커피믹스는 가장 인기 있는 물건이다. 커피믹스를 마셔 본 사람은 그 맛의 중독성 때문에 다시 찾고, 화장품은 한류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두세 편의 배가 중국으로 오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두세 편의 배가 중국으로 오간다.

한국 화장품과 커피 믹스가 인기 상품

아주 익숙한 발걸음으로 가게로 들어와 “이모”를 찾으며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을린 얼굴로 간단한 배낭 하나를 메고 알아서 물건들을 골라 계산대에 놓는다. 주인에게 무엇인가를 묻다가 다시 휴대폰을 꺼내 중국어로 열심히 통화를 한다. 대화를 듣다가 주인이 물건을 가져다주면 수화기 건너편으로 설명을 한다. “황해 쪽 중국 사투리는 전부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개인교습으로 중국어를 배웠는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도 못 알아 듣더라. 땅덩어리 넓은 중국은 사투리가 심하다. 시장 바닥의 말을 배운 다음에야 제대로 말이 통했다. 지금은 하도 오래 본 사이들이라 한두 마디만 들어도 찾는 물건을 정확히 골라준다.”

단둥에서 온 중국인 팽씨는 관광비자로 입국해 보름 동안 막노동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다. 배를 타기 전 상가에 들러 아내가 부탁한 물건들을 샀다. 잘 알지 못하는 물건은 다시 전화해 아내에게 물었다. 그가 산 물건은 모두 15만원을 조금 넘겼다. 화장품과 아이 물건, 그리고 아내가 주변에서 부탁받은 물건, 선물용으로 화장품 샘플 모둠을 구입했다. 그가 한국으로 일하러 다닌 지는 6년째. 취업비자를 받는 번거로움 없이 할 수 있는 막노동으로 돈을 모았다. 이번에는 이웃집 덩씨도 함께 왔다.

초행길인 덩씨는 물건을 사지 않았다. 커피믹스와 율무차 한 상자씩이 그가 산 전부이다. 중국에서 인기 있다는 국산 주스기 앞에 서서 상자를 만졌다가 물건 값을 물어보고는 다시 손을 뗐다. 노동의 어려움으로 번 돈을 아끼려는 모습이 생생하다.

“전기밥솥과 주스기계가 중국 주부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았다. 한동안 잘 팔렸는데, 이제는 끝물이다.” 중국 상인들이 공장에서 직접 주문해 가져가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쉽게 살 수 있게 된 후부터 인기가 식었다고 설명했다.

가게주인은 선물용 화장품 상자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기초 화장품 여섯 가지가 잘 포장된 세트의 가격은 1만2000원. “이게 믿어지나? 하나 팔면 1000원이 안 남는다.” 면세점에서 고가의 화장품을 사가는 손 큰 유커도 있지만 대부분의 상인들은 저렴한 한국산 물건을 찾고, 그것도 아끼느라 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국가는 달라도 서민의 삶은 똑같이 힘겹다.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주변 중국교역상가에 진열된 상품들.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주변 중국교역상가에 진열된 상품들.

다롄, 단둥, 옌타이, 시다오, 잉커우, 친황다오를 오가는 인천항 제1국제여객터미널에서 건너다 보이는 부두가 제2국제여객터미널이다. 이곳에서는 웨이하이, 칭다오, 톈진, 롄윈강을 오간다. 대략의 뱃길은 12시간에서 24시간. 대부분 중국에서 전날 저녁에 출발해 오후에 인천에 정박했다가 다시 황해를 건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두 부두에서 쉴 새 없이 중국을 오가는 배편이 있다.

제2국제여객터미널 주변에는 대형마트와 전자제품 판매점이 있고, 역시 중국인 고객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여객터미널에서 바로 길 건너에 있는 가게는 문을 닫은 채 ‘점포임대’를 써 붙여 놓았다. 가장 목이 좋은 곳의 상점도 문을 닫은 모습에서 상가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근처에만 50개 넘는 가게들이 있다. 거의 같은 물건을 판다.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결국 가격을 낮추는 전쟁을 벌이다가 못 버티는 곳들이 생긴다.” 1000원을 남기던 물건을 500원을 남기고 팔다가 그마저 낮추면 결국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경쟁이 점점 치열해질수록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도 생긴다. 상인들의 짐을 받아주거나 면세품을 수매하는 일로 수익을 내는 경우도 있다.

따이공들이 가져오는 중국산 농산물은 대부분 전문수집상의 손에 넘어가지만, 상인들의 부탁으로 소규모로 매입하는 상점들도 있다. 국제여객터미널 인근 수인곡물시장은 중국산 농산물이 유통되는 곳이다. 시장 입구에 늘어선 열 곳 남짓한 기름집 때문에 고소한 냄새가 일대를 덮고 있다. 중국산 들깨와 참깨로 짠 기름이 줄지어 있고 간간이 국산 참깨도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잡곡은 중국산. 물량과 가격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엔 따이공 물건은 거의 없다. 말썽의 소지도 있고 언제부턴가 물량도 줄었다.” 시장 상인은 찰진 만주산 기장을 권하면서 따이공 물건은 찾기 힘들 거라고 전한다.

사드 배치 발표 이후 급랭한 한·중관계의 여파가 문을 닫은 상가에서 느낄 수 있다.

사드 배치 발표 이후 급랭한 한·중관계의 여파가 문을 닫은 상가에서 느낄 수 있다.

터미널 이전되면 지역경제 몰락 불가피

이 일대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간판은 ‘교역, 무역, 환전, 한중, 급송’ 등의 글귀이다. 그야말로 산둥성 어느 상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분위기도 물씬했다. 한·중교역의 증가 분위기를 타고 급격히 형성된 새로운 상가의 앞날은 밝지 않았다. 상인 개개인의 노력보다 더 큰 암초가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잘 통관되던 물건을 하루아침에 묶어 버린다. 그 이유와 배경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면 그 물건은 못 파는 것이다. 중국 쪽 세관뿐 아니라 국내 세관도 기준이 늘 바뀐다.” 상인의 분노 섞인 말 속에는 불신이 짙게 배어 있었다. 엄격한 규제에 속수무책인 소상인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터미널 바깥에서 수백 개의 인기 화장품을 캐리어에 나누어 싣는 조선족 상인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통관이 가능하냐는 물음에 화려한 장신구를 번쩍이면서 “문제없다”고 웃는 대답이 인상적이다.

시류에 따라 생겨났으나 혼란을 겪고 있는 인천항 무역상가들의 앞날은 그다지 밝지 않다. “터미널을 옮긴다는 계획이 있다. 송도로 옮긴다는데, 그러면 모두 끝장이다.” 2018년에 송도 물류기지로 이전한다는 계획에 상인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연간 100만명 이상의 유동인구가 빠져나가면 지역경제의 몰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의 영토개념은 과거와는 여러 면에서 달라졌다. 국경을 넘어서도 사람이 오가고, 정보가 흘러가며, 세금을 거둬들인다. 특히 상품은 사람의 발길보다 더 멀리가고 더 많은 것을 나눈다. 한국의 중소기업이 만드는 물건 하나가 중국의 오지인 칭하이성에서도 팔린다. 한류 드라마에 비친 장신구와 화장품은 중국 시장에서 각광 받는다.

작년 한 해 동안 대중국 수출액은 1370억 달러 이상이었다. 그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또 다른 수출의 경로가 바로 인천항 인근의 무역상가들이다. 늙은 따이공의 손에 의해, 귀국하는 일용 노동자의 짐 속에 실려 중국으로 건너가는 만만치 않은 한국 상품들이 그곳에서 거래된다.

외교란 때때로 웃음을 지으며 상대방에게 비수를 날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다만 그 비수가 권력자나 부자보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상인들의 등에 꽂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사드를 사이에 둔 한국과 중국의 공방이 무역상가에 드리운 그늘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다. 물건과 사람이 자유로이 국경을 넘어 오가는 때가 가히 태평성대일 것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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