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만화가게가 ‘만화카페’로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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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흉내 낸 곳도 있고, 이태리식 카페 분위기가 물씬한 곳도 있다. 만화책보다 커피에 더 공을 들인 곳도 있다. 어린 시절 장의자에 몸을 부딪히며 만화책을 읽던 만화가게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창업시장에서 주목 받는 아이템 중에 하나가 만화카페다. 창업자를 위한 모임에서도 떠오르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고,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PC방을 이을 확실한 성공 아이템임을 광고하고 있다. 주로 젊은층이 몰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문을 열고 있는 만화카페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동네마다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곳이 만화가게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까지 어린이들의 오락을 담당했고, TV가 흔치 않던 시절 연속극과 프로레슬링 경기를 볼 수 있던 곳도 만화가게였다. 나이 든 세대라면 때 묻은 TV 관람권으로 김일 선수의 레슬링 경기를 봤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때 만화가게는 불량만화와 청소년 탈선의 주범으로 곱지 않은 시선의 대상이 됐던 적도 있었다. 명암은 있지만 만화가게 덕에 만화라는 콘텐츠가 맥을 이을 수 있었고, 무협지라는 장르문학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 문을 열고 있는 만화카페들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밝은 조명과 안락한 1인용 소파,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잘 꾸며진 서가가 있고, 기호에 따라 커피와 음료를 즐기며 만화와 책을 읽을 수 있다. 음료와 함께 세트메뉴를 제공하고 연인 할인 서비스를 내세운 곳도 있다. 밝고 잘 꾸며진 분위기는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만화카페는 몇만권의 장서와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만화카페는 몇만권의 장서와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 없어
서울 강남 번화가 한편에 있는 만화카페에 들어서자 은은한 커피향과 나름대로 공을 들인 듯한 향기가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공간을 아끼려고 슬라이드식으로 꾸며진 서가에는 과거에 인기 있던 만화책부터 화려한 미국 만화책까지 빼곡히 꽂혀 있다. 과거 딱딱한 의자와 자욱한 담배연기로 불량스런 분위기가 물씬했던 만화가게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다. 한편에는 큰 화면으로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손님이 보인다. 의자는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가 한없는 편안함을 느껴보라고 유혹하고 있다. 조명은 최대한 밝고 만화책 읽는 자리에 집중되어 있다. 카페 한쪽에 다락방처럼 꾸민 작은 방들이 자리 잡고 있다. 누워서 다리를 꼰 채 혹은 연인과 등을 기대고 쌓아 둔 만화책을 읽는 모습도 보인다. 좌석 한쪽에는 카페 카운터와 주방이 있다. 만화뿐 아니라 음료와 먹을거리도 고객을 유혹한다. 정액권과 회원권을 소개하는 문구도 있고, 나름 주인이 권하는 신간 소개도 크게 붙어 있다. 만화책뿐 아니라 캐릭터 인형과 용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도서관을 흉내 낸 곳도 있고, 이탈리아식 카페 분위기가 물씬한 곳도 있다. 만화책보다 커피에 더 공을 들인 곳도 있다. 어린 시절 장의자에 몸을 부딪히며 만화책을 읽던 만화가게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누구든 와서 가장 편안하게 상상의 세계가 보여주는 즐거움의 향연을 누리라는 분위기가 만화카페에 흐르고 있었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가족이 찾는 경우가 많다. 50석 자리가 다 차서 손님들이 입구에 서서 빈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곤 한다. 주변 직장인들도 주고객이다. 무엇보다 편한 분위기 속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4만5000권의 만화책을 갖춘 서울 종로의 무림만화카페 정기석 사장은 만화카페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편한 분위기와 가격 대비 만족감으로 꼽았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시간당 1500원에서 2500원 사이의 이용료를 받는다. 3시간 또는 12시간 이용권을 끊으면 가격은 훨씬 저렴해진다. 시간당 이용료를 받는 PC방에 비해 높은 가격이지만 일반 카페에 비해서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점이 만화카페의 매력이다. 게다가 쌓여 있는 콘텐츠는 최고의 무기다. 이용자들은 가격 대비 높은 만족도를 들고 있고, PC방 대비 높은 이용료는 창업자들이 만화카페에 눈을 돌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과거 만화가게와 달리 만화카페는 큰 규모와 투자가 따른다. 부산에는 1300㎡(약 400평)를 넘는 대규모 만화카페가 등장했다. 세련된 카페 공간과 함께 회의룸을 갖추고 서재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로 무장했다. 만화책을 꽂아놓기 위해 만화카페는 기본적으로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갖춘 책의 양에서 경쟁력이 결판나기 때문에 투자의 규모는 늘어난다.

“기본적으로 1만5000권이 개업을 하기 위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수량이다. 책이 많은 곳은 5만권까지 보유한 곳도 있다.” 만화카페 프랜차이즈 업체 휴의 이의훈 매니저는 경쟁력은 다양한 콘텐츠를 구비하는 데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인기 있는 만화카페는 기본적으로 4만권 이상의 장서를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잡지와 영상물을 구비한 곳도 있다. 만화카페는 콘텐츠 장사가 핵심이다. 그는 프랜차이즈 업체만의 장점을 콘텐츠 제공이 원활한 점이라고 꼽았다. “손님이 찾는 만화가 없을 때, 프랜차이즈에 속한 다른 가게에서 빌려와 대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손님의 요구에 맞춰 원하는 콘텐츠를 제공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웹툰부터 마블코믹까지 다양한 콘텐츠는 만화카페의 강력한 무기다.

웹툰부터 마블코믹까지 다양한 콘텐츠는 만화카페의 강력한 무기다.

주말에는 아이들 데리고 가족끼리
만화 강국인 일본과 달리 우리에게는 ‘만화는 빌려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점이 국내 콘텐츠 발전에 제약이 된다는 비판도 있었다. 한편에서는 만화책 대여가 시장 확산에 도움이 된 면도 있다는 반론도 있다. 어쨌거나 만화카페는 현재 가장 중요한 콘텐츠 소비공간이 되고 있다.

만화카페는 과거 인기 있던 대본소 만화와 일본의 소년만화, 순정만화와 성인만화까지 구색을 갖춰놓고 있다. 라이트 노벨류도 인기가 높고, 판타지 소설은 잘나가는 아이템 중 하나이다. 공급을 맡은 전문업자들이 있어 희귀한 책도 원하는 것은 무조건 구해다 준다고 한다.

“가장 인기 있는 만화는 웹툰이다. 그리고 일본 만화와 판타지 소설을 찾는 이도 많다. 국내 만화작가가 상대적으로 적고 작품도 많지 않은 점이 아쉽다.” 만화카페 직원의 설명에서 현재 국내 콘텐츠 시장의 사정을 읽을 수 있었다. 한때 웹툰의 등장으로 만화를 읽는 문화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웹툰을 보기 때문에 만화책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 예측의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웹툰이 종이책으로 출판되면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트 기기로도 볼 수 있는 웹툰을 만화카페에서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화카페 관계자는 종이만화의 장점을 꼽았다. “일단 종이를 넘기는 맛이 있다. 전자기기는 줄 수 없는 종이책만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특히 만화카페는 누워서 간식을 먹으면서 책장을 넘겨가며 볼 수 있다. PC방에서 소액결제로 웹툰을 즐길 수도 있지만 만화책의 장점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웹툰뿐 아니라 미국 마블코믹스 등 고가의 만화책들도 만화카페가 갖춘 강력한 구색 중 하나이다. 구입하기에는 비싸지만 인기 있는 만화를 즐기기에 만화카페가 제격이라는 설명이다.

포화상태에 있는 PC방이 저가경쟁으로 이용요금보다 간식 판매에서 수익의 대부분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만화카페도 비슷한 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커피를 비롯해서 일반 카페에서 판매하는 음료 대부분은 이곳에서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라면이나 볶음밥 등 간편 메뉴도 제공한다. 만화뿐 아니라 군것질과 요기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관리인의 설명대로 만화카페 한쪽 다락방에서는 편한 쿠션에 반쯤 기댄 채 간식을 먹으며 책을 읽는 모습들도 많았다.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의자도 고가의 리클라이너 소파를 구비했다.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독서에 무리가 없도록 좌석과 조명에 최선을 다했다.” 만화카페 운영자는 일반 카페와 달리 손님이 오래 머물수록 수익이 높아지는 구조라서 최대한 안락한 환경을 꾸미려고 했다고 설명한다. 남의 시선에 방해받지 않고 남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도록 신경 써서 좌석을 배치하는 추세이다. 동굴방이나 다락방 등 연인과 가족을 위한 공간을 꾸미는 것도 편하게 만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한 점이라고 강조한다. 지금의 만화카페라면 며칠이고 숙식을 해결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다락방, 동굴방 등 색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갖춘 곳도 많다.

다락방, 동굴방 등 색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갖춘 곳도 많다.

샤워실과 수면실까지 갖춘 곳도
만화카페는 주로 젊은층의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성업하고 있다. 서울은 대학로, 홍대, 신촌, 강남역 일대를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문을 열었다. 지방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한 프랜차이즈 업체의 경우 서울에만 25개의 가맹점이 있다. 그만큼 경쟁은 치열해졌다. “이미 포화상태다. 책이 중심이지만 다른 서비스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만화카페 운영자의 고백이다.

손님을 끌기 위한 아이디어로 소파와 침대를 갖춘 곳도 있다. 색다른 맥주를 갖추고 성인을 위한 만화카페를 표방한 곳도 있었다. 흡연실은 기본이고 샤워실과 수면실을 따로 갖춰서 편안한 휴식을 장점으로 내세운 만화카페도 등장했다. 책장으로 미로를 만들어 마음에 드는 만화책 속에 숨을 수 있게 자리를 배치한 곳도 있다. 만화를 고르는 시간은 이용시간에서 빼주는 시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최적화된 자체 검색프로그램으로 원하는 만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만화카페도 나왔다. 고양이 카페를 겸하고 고양이 만화를 주로 갖춘 특이한 만화카페도 생겼다. 단순히 만화를 빌려주고 읽던 과거의 만화가게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도서대여점들이 문을 닫으면서 틈새시장이 생겼다. 만화를 빌려볼 수 있는 곳이 줄었다. 일반적인 만화카페는 앉아서 보는 것이 주인데, 우리는 대여도 함께하기로 했다.” 어느 프랜차이즈 업체 관리자의 이야기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위한 고민도 읽을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에게 만화가게는 향수의 근원일 것이다. 거의 유일한 즐길거리와 읽을거리들이 그곳에 있었고, 동네마다 소문이 모여드는 장소였다. 만화가게는 도서대여점으로 임무를 옮겼다가, 다시 만화방으로 그 자리를 내줬다가 이제는 만화카페로 진화했다. 그 많던 만화가게와 도서대여점은 사라졌지만 만화를 읽기 위해 사람들은 다시 만화카페로 간다.

책을 빌려주는 곳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고 한다. 시대는 변해도 사람들은 무엇인가 읽고 즐길거리를 꾸준히 찾는다. 철학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소설책에 빠져드는 사람도 있다. 만화책과 판타지 소설로 시간을 보내는 이도 있다. 무엇을 읽든지 이야기에 몰입하고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만화카페는 그 본질의 욕망을 가장 잘 충족시켜주는 공간이다. 사막 같은 세상에서 잠시 쉬었다 가고, 이야기 속에서 다시 길을 찾고 치유를 얻어 메마른 삶의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오아시스가 그곳에 있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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