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사과하는 올바른 방법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비상식의 사회]국가가 사과하는 올바른 방법

국가가 국민에게 올바르게 사과하려면 적절한 타이밍, 진정성 있는 태도, 그리고 책임감 있는 처리라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여태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기 하루 전날, 프랑스 파리는 IS의 폭탄 테러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때 나는 바로 이 지면을 빌려 ‘그날 파리와 서울은 닮은 듯 달랐다’는 제목의 글을 썼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다시 꺼내 본 그 글의 일부를 한 번 더 여기에 옮겨 본다. “그날 파리와 서울의 모습은 아주 많이 달랐다. 파리에선 IS가 시민들을 테러했고, 서울에선 정부가 국민들을 테러했다. 파리는 총격에 피를 흘렸고, 서울은 캡사이신 물대포에 눈물을 흘렸다. 파리는 쓰러진 사람에게 응급조치를 취했고, 서울은 쓰러진 사람에게 또 물대포를 쏘았다.” 당시는 이름을 적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문장에 쓰러진 사람이라 칭했던 이가 다름 아닌 백남기 농민이었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 후 이 사건의 책임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경찰에서는 그 어떤 입장 표명도 없었다. 그나마 새누리당이 대변인 논평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혔을 뿐이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고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슬픔이 없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시위가 과격하게 불법적으로 변하면서 파생된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고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이 논평이 또다시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몇 줄짜리 짧은 문장 속에 이 사건을 보는 집권층의 오만한 태도가 놀라울 만큼 함축적으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국가의 의도적 행위에 대한 결과
첫째, 이 사건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국가 폭력에 의한 살인을 ‘안타까운 슬픔’이라는 서정적 표현으로 은폐하고 있다. ‘안타까운’이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일 때나 쓰는 말이다. 하지만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안전수칙을 위반한 물대포 조준 발사가 원인이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의 결과였다. 그리고 이러한 의도적인 행위의 궁극적인 주체는 국가이다. 가해자가 한가롭게 안타깝다는 표현이나 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슬픔’이란 표현도 이 사건에는 적절치 않다. 유가족을 비롯해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국민 다수는 지금 슬픔에 앞서 분노하고 있다. 가해자인 국가도 슬픔보다는 반성의 표현을 먼저 밝혔어야 했다. 새누리당 논평은 국가 폭력에 의한 살인이 ‘안타까운 슬픔’이 아닌 ‘천인공노할 분노’의 대상임을 애써 감추고 있다.

둘째, 이 사건의 책임을 가해자인 공권력이 아닌 피해자인 백남기 농민에게 돌리고 있다. 새누리당 논평은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시위가 과격하게 불법적으로 변하면서 파생된’ 일이라고 규정한다. 당시 시위가 과격한 양상으로 치달았고 합법 시위의 선을 넘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건의 배경일 뿐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그의 사망을 몰고 온 직접적 원인이 물대포 발사였음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자명하다. 그런데 새누리당 논평은 물대포 발사를 생략하면서 마치 과격한 불법시위가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이라는 식의 논리적 비약을 의도했다. 설령 새누리당 논평의 논리대로 과격한 불법시위에 책임이 있다 해도 그것이 국가 폭력의 책임을 면제시켜 주지는 않는다. 불법시위를 했다면 체포해서 적법한 절차를 밟아 처벌하면 그뿐이다. 그게 법치국가의 기본 원리이다. 하지만 불법시위란 것이 당사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극단적인 범죄는 아니다. 게다가 처벌은 사법부의 영역이지 시위 진압에 나선 일선 경찰의 영역은 절대 아니다. 그날 현장에는 불법시위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불법진압과 불법처벌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백남기 농민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불법시위가 아니라 불법진압과 불법처벌이었다. 새누리당 논평은 엄연한 이 사실을 비겁하게도 은폐하고 있다.

사망원인은 불법시위가 아니라 불법진압
셋째, 사과나 유감의 표현을 철저히 외면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새누리당 논평이 유가족들에게 전하는 유일한 감정의 표현은 ‘위로’였다. 하지만 위로라는 말은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 제3자나 쓸 수 있는 표현이다. 가해자는 감히 피해자에게 위로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없다. 사람을 죽인 당사자가 유족들을 위로하겠다니 가당치도 않다. 박근혜 정권에서 자주 등장하는 유체이탈 화법에 다름 아니다. 이럴 때 가해자가 해야 하는 적절한 말은 사과나 유감의 표현이다. 그리고 사과나 유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스스로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수순까지 밟아야 마땅하다. 사적인 개인 간의 일에서도 응당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규범이거늘 새누리당 논평은 이마저도 무시하고 있다. 국정운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여당 대변인실에서 이를 몰라서 안 썼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 회피에 목적을 두고 심혈을 기울여 치밀하게 작성된 논평이라 보는 것이 맞다. 결국 새누리당이 논평을 통해 주장하고 싶은 메시지는 백남기 농민의 사망사건은 전적으로 피해자 본인의 잘못으로 일어난 불가항력적인 일이며, 정부·여당은 이와 무관하기에 아무런 책임을 질 생각은 없고 단지 위로의 뜻만 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라는 논평은 국민 입장에서는 재발 방지의 약속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지 모를 또 다른 시위에 대한 국가의 경고로만 들릴 뿐이다.

흔히 “국가가 없으면 국민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전체주의 체제에서나 통용될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제대로 된 민주 사회라면 “국민이 없으면 국가가 없다”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국가 공권력이 국민을 죽였다. 최소한의 상식이 있는 정부라면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가 국민에게 올바르게 사과하려면 적절한 타이밍, 진정성 있는 태도, 그리고 책임감 있는 처리라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후 사망하기까지 무려 317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부는 아무런 사과도 없었으니 타이밍을 놓쳐도 한참 놓쳤다. 그나마 나온 여당의 논평이란 것마저도 진정성 없는 태도로 책임을 회피하기에도 하필 가장 부적절한 타이밍을 골랐다. 국민들이 볼 때는 정부와 여당이 고작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새누리당 논평에서 표현된 진정 ‘안타까운 슬픔’이다. 그러니 끝으로 한 번만 더 이 논평문을 인용해 보겠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슬픔이 없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말이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

비상식의 사회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