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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찬이 아빠는 죽은 아이를 더는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살아 있는 두 딸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승철씨(가명)도 2005년 4월에 태어난 딸을 2006년 6월에 잃었다. 가정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 행복한 가정은 결코 되돌아오지 못했다.

대전에 사는 김동국씨(가명)는 온 가족이 피해자다. 가습기 살균제라는 악마에 2007년 아들을 잃었다. 1차 피해신고 때 숨진 아들과 큰딸을 신청해 2014년 3월 숨진 아들은 1단계, 큰딸은 2단계 판정을 각각 받았다. 김씨 부부와 아내가 임신 때 노출돼 태어났던 막내딸도 2014년 2차 때 피해신고를 해 2015년 딸은 2단계, 부부는 함께 3단계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사실상 전 가족이 피해자 내지 잠재적 피해자인 셈이다.

김씨는 피해자와 그 가족이 가입한 카페모임에서 ‘유찬 아빠’로 통한다. 카페에서는 실명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가운데 어린아이가 많다 보니 숨졌거나 다행히 목숨을 건진 아이 이름을 앞에다 붙여 ‘○○ 아빠’ ‘○○ 엄마’라는 필명으로 글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페라는 사이버공간뿐만 아니라 실제로 오프라인 모임이나 시위, 행사 때에도 어른들의 실제 이름을 서로 부르지 않고 ‘○○ 아빠·엄마’라고들 부른다.

가습기 살균제로 목숨을 잃고 ‘2단계 판정’을 받은 아이들. 아프기 전 인서가 예쁘게 미소 짓는 모습(왼쪽). 유찬이 백일 때의 해맑은 모습(오른쪽). / 김동국(가명)씨 제공

가습기 살균제로 목숨을 잃고 ‘2단계 판정’을 받은 아이들. 아프기 전 인서가 예쁘게 미소 짓는 모습(왼쪽). 유찬이 백일 때의 해맑은 모습(오른쪽). / 김동국(가명)씨 제공

부모로서의 심한 죄책감에 시달려
이들이 실명을 잘 쓰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들이 사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죄책감 때문에 타인과 지인들에게 비극을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외부의 동정적 시선이 있더라도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그런 죄책감을 느낀다. 사건이 발생한 지 짧게는 4년, 길게는 10여년이 되었는데도 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지금도 이런 감정과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이 사건이 세월호 등 다른 참사나 사망사건에 견줘 그 성격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 심정을 지니고 있는 이중성 말이다. 또 하나는 실명이 나가면 오랜 사회생활을 해 친구와 지인이 많은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안부와 위로 전화를 해오는 사람이 많다. 이들에겐 이조차도 상당한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아물어 가던 마음의 상처가 뇟속 망각창고의 문을 열고 나와 분노와 슬픔의 광장을 다시 휘젓고 다니며 활개를 친다. 안부와 위로, 그리고 격려는 주는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받는 사람에게서는 우울과 분노, 슬픔으로 나타난다.

유찬이 아빠는 사건 초기였던 2012~2014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세상에 알리고, 피해자와 그 가족을 한데 묶는 등 각종 모임과 행사, 시위 때 그 누구보다도 최전선에서 열정을 바쳐 활동했던 사람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나와도 매우 친숙한 사이였다. 2013년 1차 피해신고를 받은 뒤 정부(질병관리본부) 조사 때 내가 직접 대전으로 내려가 그의 가정환경노출조사를 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왜 피해자 활동을 잘 하지 않는지가 궁금해 이유를 물었다.

“생업에 바쁘기도 하고(그는 한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나름대로 피해자 활동을 한다고 힘을 쏟았으나 별로 얻은 소득도 없다 보니 지친 면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피해자 활동을 하면서 서로 생각이나 의견이 다르면 욱하거나 상대방에게 심한 언사를 퍼붓는 등 피해자 간 융합이 쉽지 않아 서로에게 상처를 준 일도 제법 있었는데, 그런 일도 좀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유찬이네 집에서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쓰게 된 계기는 여느 가정과 똑같았다. 가을 이후에는 실내가 건조하고 매스컴 등에서는 가습기 세척을 제대로 하지 않고 세균이 남아있으면 건강에 해롭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다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문구가 선명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이라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구입해 사용했다. ‘귀찮은 청소 끝, 세균 걱정 끝’을 생각했다. 첫딸을 얻은 뒤 3년 만인 2006년 3월 태어난 아들 유찬이는 그해 가을 10월부터 가습기 살균제에 그렇게 해서 노출됐다.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가습기 살균제를 들이마셨다. 2007년 1월부터 아이가 자주 기침을 했다.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하자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원인을 몰랐다. 아이는 눈 뜨고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야위어갔다. 젖병도 제대로 빨지 못할 정도가 됐다. 대전 을지대학병원으로 데려가 입원시켰다. 산소 포화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제 힘으로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대로 두었다간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결국 2월에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겼다. 의사는 부모들이 처음 들어본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내렸다.

아이들 모두 1, 2단계 판정 받아
병원 의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이런 아기들이 너무 많아서 의사들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원인은 모르겠는데 어떤 바이러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도 아이는 차도가 없었다. 한 번 망가진 폐는 결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습기 살균제는 숨을 더 빼앗아갔다. 빼앗긴 숨이 많을수록 아이는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러고는 돌이 지난 뒤 3개월 5일 만에 부모 품을 영영 떠났다.

유찬이 아빠는 죽은 아이를 더는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살아 있는 두 딸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 상태가 워낙 위중해 처음에는 아들에게 모든 힘을 쏟았다. 큰딸이 유찬이를 끔찍이도 좋아해 다시 아기를 갖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2년 지나 2009년 예쁜 딸을 또 얻었다. 그런데 엄마가 막내딸을 가졌을 때도 또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는 바람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됐다. 혹시 하고 신고를 했고 설마 하며 판정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큰딸에 이어 둘째딸마저 폐에 섬유화 흔적이 남아있다고 했다. 2단계 판정이 나왔다.

요새는 2단계 판정을 받은 아이들 건강 걱정을 할 때가 많다. 2015년 초에 서울아산병원에 가서 소아청소년과에서 두 딸이 진료를 받은 데 이어 지난 8월 1년 6개월 만에 피해자 모니터링의 하나로 진찰을 받은 결과 호흡기능이 정상적 범위이기는 하지만 비정상 범위와의 경계선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에서는 두 아이가 올 겨울방학 때 다시 건강상태를 체크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주간경향>·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 기획 가습기 살균제 참사 기록 ‘엄마, 숨이 안 쉬어져’](3) 아이를 잃은 가정, 행복을 빼앗겼다

지금은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막내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됐다. 또래에 견줘 키와 몸집이 작다. 체력도 별로 좋지 않다. 건강이 걱정돼 이것저것 많이 먹이려고 늘 애쓴다. 효과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도 답답해 주변에서 권유하는 성장치료를 한의원에서 받기도 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실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기업과 제품의 안전관리를 하지 못한 정부 탓이기는 하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한 마음을 지닌 김씨 부부로서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김씨는 또 지금은 이이들의 호흡기능이 학업이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은 아니어서 안도하고 있긴 하지만 커 가면서 다른 장기에 어떤 악영향이 나타날지 걱정을 할 때가 많다. 암과는 관련이 없는지, 실손의료보험을 비롯한 민간건강보험 가입에는 문제가 없는지, 가해기업이 있는 경우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다고 하는데 두 딸이 앞으로 겪을 사소한 질병이나 감기 치료도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못 받는지,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따위에 대해 잘 몰라 자꾸 신경이 쓰인다.

김씨 가족은 어른은 모두 3단계 판정을 받았지만 아이들은 모두 1단계와 2단계 판정을 받아서 완전 만족을 하지는 않지만 판정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지는 않았다. 유찬이 아빠는 같이 활동하던 피해신고자 가운데 3단계와 4단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을 떠올리면 콕 집어서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는 없지만 판정과 관련해 정부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피해 원인이 밝혀진 지 무려 5년이 지났음에도 3차 피해 신고자마저 폐질환에 국한해 판정을 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국정조사에서 진상 규명과 책임 소재를 가리려고 애를 많이 썼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1·2단계 피해 판정자와 3·4단계 피해판정자 모두에 대해서 폐 이외 질환 판정을 이른 시일 안에 합리적으로 해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생계대책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딸은 떠났지만 딸이 남긴 각막 기증
김씨의 두 딸처럼 2016년 8월 말 현재 정부에 피해신고를 해 판정을 받은 695명 가운데 인과관계 측면에서 ‘가능성 높음’의 2단계 판정을 받은 피해자는 87명으로 12.5%이다. 1단계 175명의 절반 수준이다. 김씨처럼 피해자 모임에서 늘 선두에서 열심히 일했던 박승철씨(가명)도 2005년 4월에 태어난 딸을 2006년 6월에 잃었다. 그가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는 옥시 및 홈플러스 제품이었다. 지금 딸 인서는 이 땅에 없지만 딸이 남긴 각막은 기증돼 이 땅 어느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인서도 2단계 판정을 받았다.

2006년 3월 지인의 돌잔치에 딸을 데려가던 날 갑자기 인서의 입술이 파래지고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비극의 징조는 갑작스레 나타나 손쓸 틈도 주지 않고 석 달 만에 가정을 무너뜨렸다. 대학병원에까지 아이를 데려갔지만 생명을 지키기에는 당시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인서가 있을 때와 없을 때 가정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 둘째아이를 그 뒤 낳았지만 행복한 가정은 결코 되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피해자 모임과 행사에서 단연 눈에 띄는 활동가·행동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13년과 2014년 국회에서 새누리당 의원들과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울부짖었다. 현재 가습기 피해자와 가족모임의 대표로 있는 강찬호씨와 김씨, 박씨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초기 모임과 조직을 이끈 삼두마차였지만 이제 강씨만 새로운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모임을 이끌어가고 있다.

피해자 가족 가운데는 의료계 종사자들도 제법 있다. 강찬호 대표의 부인도 간호사이고, 둘째아들을 2009년에 떠나보낸 김방신씨도 간호사 출신이다. 김씨의 남편은 공무원이다. 2006년 지은 지 3년 된 인천의 한 새 아파트에 살다가 비극을 맞았다. 롯데마트에서 2개 묶음으로 싸게 팔던 기획상품인 롯데와이즐렉 제품을 주로 구입해 사용했다. 2006~2011년에 피해를 입은 가정 가운데 대형마트에서 앞다퉈 팔던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죽음의 나락으로 빠진 이들이 많았다. 2013년 내가 그녀의 가정환경조사를 했을 당시에는 대전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사용하다 남은 가습기 살균제와 영수증이 없었지만 꼼꼼하게 언제 어디서 어떤 물건을 구매해 사용했는지 오랫동안 가계부에다 꼼꼼하게 써놓았다. 그런 덕분인지 1차 조사 때 둘째아들 성민이는 2단계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2단계 판정을 받아 소송과 정부 피해구제에서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됐다. 모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운이 없다고 볼 수 있지만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턱걸이 단계에 해당하는 2단계 피해자는 상대적으로 운이 좋다고 볼 수 있다.

피해단계 판정 어떻게 이루어지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 판정은 등급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단계로 판정이 이루어진다. 그동안 많은 미디어와 인터넷에서 1등급, 2등급 식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보도해온 것은 잘못된 것이다. 등급은 한우 등급이나 농약의 독성 등급처럼 품질이나 독성의 정도를 이야기할 때 쓴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등급이 아닌 단계라는 표현을 써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그리고 판정불가로 나눈다. 여기서 단계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호소하는, 또는 드러난 증상의 인과관계의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1단계는 가능성 거의 확실, 2단계는 가능성 높음, 3단계는 가능성 낮음, 4단계는 가능성 거의 없음을 뜻한다. 판정불가는 신청한 뒤 서류를 내지 않거나 생존자의 경우 검사를 받지 않은 신고자에게 내린다. 판정은 먼저 가습기 살균제 사용 여부와 사용 정도 등 환경 노출을 별도로 보고, 피해자가 제출한 영상자료, 조직병리자료, 임상 결과 등도 각각 따로 판정을 한 뒤 나중에 이를 종합해 인과관계 정도를 최종 판정한다. 질병의 위중도와는 관련이 없다. 현재까지는 폐손상에 대해서만 판정을 내리는데, 내년에 폐 이외 질환에 대해서도 판정을 새로 내릴 때는 판정 과정이나 결과 등이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서 3단계와 4단계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폐손상과의 인과관계 고리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빼앗긴 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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