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못 미친 ‘부산비엔날레’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부산비엔날레가 지난 3일 개막했다.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을 주제로 오는 11월 30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부산시립미술관과 고려제강 수영공장을 무대로 23개국 121팀이 참여해 300여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윤재갑 중국 하우아트뮤지엄 관장이 총감독을 맡았다.

뚜껑을 연 전시는 예상대로 싱겁다. ‘한·중·일 아방가르드(전위미술)’라는 주제로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프로젝트1’은 밋밋할 뿐더러 일반 기획전을 부풀려 놓은 듯한 여운이 크다. 현란하지도, 그렇다고 관객의 시각을 자극하는 볼거리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주최 측은 동아시아 3국의 아방가르드를 한자리에 모았음을 의미로 삼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동시대 미술의 리드미컬한 흐름과 방향, 담론 생성과는 거리가 먼 역사 회고전에 가깝다. 특히 쟝샤오강, 하종현, 왕광이 등 몇몇 작가의 작품은 자본에 친절해진 오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

조아나 라이코프스카, 내 아버지는 나를 결코 그렇게 만지지 않았다. 2016부산비엔날레 출품작 / 홍경한

조아나 라이코프스카, 내 아버지는 나를 결코 그렇게 만지지 않았다. 2016부산비엔날레 출품작 / 홍경한

그나마 원폭이 투하됐던 히로시마에 보내진 종이학으로 만든 그룹 ‘침↑폼’의 작품 ‘파빌리온’과 오리모토 타츠미의 ‘26인의 처형’, 야나기 유키노리의 ‘헌법 제9조’ 등이 간신히 체면치레를 하는 정도다. 이 중 ‘헌법 제9조’는 전쟁 포기 및 국가 교전권 불인정 등을 규정한 일본 평화헌법의 근간인 법조문을 조각내 쌓은 설치작품이다.

고려제강 수영공장(F1963)에서 펼쳐진 ‘프로젝트2’는 언뜻 비엔날레다운 모양새를 취한 듯 보인다. 그러나 비엔날레 특유의 낯설고 생경한 퍼포먼스는 엿보이지 않는다.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라는 주제와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채 ‘프로젝트1’과 따로 놀고, 숨 가쁘게 전개되는 날것 그대로의 미술현상을 증명하는 데도 역부족이다. 되레 작품 자체보다는 역동적인 전시공간이 관람자들의 시선에 먼저 꽂힌다.

결과적으로 7개월 만에 국제행사를 치른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역대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준비 부족도 역력했다. 어떤 작품은 개막 이후에도 손을 봐야 했으며, 고려제강 수영공장에서는 정전사고로 작품들이 한순간 멈춰서기도 했다. 덕분에 저우 원도의 와이퍼 설치작품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비롯한 조아나 라이코프스카의 영상작품 ‘내 아버지는 나를 결코 그렇게 만지지 않았다’ 등은 존재감을 상실한 채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당연히 관람객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야나기 유키노리, 헌법 제9조, 1994, 2016부산비엔날레 출품작/ 홍경한

야나기 유키노리, 헌법 제9조, 1994, 2016부산비엔날레 출품작/ 홍경한

당혹스러움은 다른 곳에서도 이어졌다. 비비탄 총을 사용해 직접 인체형상에 붙은 풍선을 터뜨리도록 한 중국 진양핑 작가의 설치작품 ‘풍선 강타 NO.1’이 그런 경우다. 주최 측은 3일 ‘안전’을 이유로 총을 쏠 수 없도록 해 일상적 권력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을 생명 잃은 오브제로 전락시켰다. 하지만 이 작품은 관람객이 참여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관객에 대한 서비스 수준에서도 좋은 점수를 매기기 어렵다. 전시장 내부에 배치된 인력들은 대체로 무표정했고, 곧잘 관리자 혹은 감시자처럼 관람객들을 훑었다. 외국에선 관람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있는 듯 없는 듯 행동한다. 이밖에도 전시작품이 총망라된 도록조차 발간되지 않았으며, 관람 편의를 위해 마련된 ‘QR코드’는 어두운 공간에선 잘 읽히지 않아 절반만 유용했다. 그리고 초점 흐린 2차원 코드만큼 부산비엔날레의 미래도 뿌옜다. 어쩌면 범람하는 비엔날레 중 하나로 또 한 번 국민 세금만 축냈는지도 모른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문화내시경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