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가 없거나, 눈치를 안 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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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화 만찬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거나 혹은 아예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전자가 국민 정서에 대해 무심히도 눈치가 없는 것이라면, 후자는 국민 정서 따위는 무시하고 눈치를 안 보겠다는 오만함이다.

대통령이 신임 여당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먹였다는 송로버섯 때문에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서민들은 경제가 어려워 살기 힘들건만 대통령과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이런 값비싼 음식으로 초호화 식탁을 누렸다는 것이 비판 여론의 핵심이다. 그러자 청와대 측에서는 만찬 식탁에 올라간 송로버섯은 향을 내기 위해 조금만 사용했으며 개인당 560원어치밖에 안 되는 비용이라고 해명했다. 당면한 국가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먹는 것 가지고 며칠씩 이런 정치적 공방이 이어지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만찬 메뉴까지 발표하는 청와대 의도는
솔직히 대통령이 이런 음식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제일 반가운 사람을 식탁에 초대했으니 가급적 좋은 것 먹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음식 먹은 것이 이번 처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걸핏하면 외국 다녀와서 앓아누우신다니 이렇게 좋은 음식이라도 드시고 체력 보강해야 되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있다. 게다가 과거 다른 대통령들도 청와대 식탁에 송로버섯 올린 적이 있었겠지 싶다. 아니나 다를까. 포털 뉴스에서 검색해보니 이명박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 만찬에서 송로버섯을 대접한 적이 있었다. 미국 대통령에게 대접했던 음식을 여당 대표라고 대접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니 이 글에서만이라도 먹는 것 가지고 시비 걸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사진공동취재단

개인적으로 정작 놀랍게 생각한 것은 대통령이 여당 대표와 어떤 음식들을 먹었는지 굳이 메뉴까지 시시콜콜 발표하는 청와대의 지나친 세심함이다. 왜 그랬을까?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보자. 첫 번째, 값비싼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 국정 현안과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와대에 계신 분들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고 믿으며 이 가설은 폐기하겠다. 두 번째, 청와대에서는 평소에 늘 먹던 음식이니 그게 이렇게까지 큰 논란을 빚으리라는 판단은 못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통령이라고 이런 값비싼 음식을 매끼 드시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리 귀하고 좋은 음식이라도 너무 자주 먹으면 질리게 마련이다. 하물며 지금의 대통령은 근검절약이 몸에 뱄던 박정희 대통령을 보고 자라며 늘 본받으려 한 분이 아니던가. 따라서 두 번째 가설도 폐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유력한 가설은 이러하다. 대통령이 여당 대표 선출 결과에 대해 얼마나 흡족해하고 계신가를 강조하려고 송로버섯, 샥스핀, 캐비어, 한우 등을 일일이 나열하느라 이런 초호화 만찬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거나 혹은 아예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전자가 국민 정서에 대해 무심히도 눈치가 없는 것이라면, 후자는 국민 정서 따위는 무시하고 눈치를 안 보겠다는 오만함이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나온 황당한 실수
무심히도 눈치 없거나 무시하고 눈치 안보는 오만함은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대통령은 헬조선이라는 말처럼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며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자”고 주문했다. 청년 세대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오죽 암담했으면 이런 말까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도 배어 있지 않은 발언이었다. 대안 하나 제시하지 않고 무턱대고 “할 수 있다”만 주문하니 청년 세대 입장에서는 참 무심히도 눈치 없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명색이 광복절 경축사인데 일본에 대해 고작 한다는 말이 “미래지향적 관계로 거듭나자”는 것뿐이었다. 위안부 합의 문제가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예 일언반구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불과 며칠 전 노구의 독립운동가로부터 상해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건국절 논란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경축사에서 건국 68주년이라고 발언하였다. 앞으로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아직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은 무시하고 더 이상 눈치를 안 보겠다는 것이며, 헌법에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마저도 무시하고 독립운동가들 눈치 안 보겠다는 오만함이 읽혀진다.

심지어 대통령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장소인 하얼빈과 순국 장소인 뤼순을 구분 못하고 실언까지 했다. 기껏 경축사에서 “자랑스러운 우리의 현대사”를 강조하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주문했던 대통령 본인의 발언이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사실 이 해프닝은 그저 써 준대로 원고를 읽은 대통령을 탓하기에 앞서 기본적인 팩트 체크조차 하지 않고 원고를 내보낸 청와대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해야 할 일이다. 역대 어떤 정부에서든 광복절 경축사는 대통령의 비중 있는 대국민 메시지가 발표되는 장이다. 따라서 단어 하나까지도 몇 차례에 걸친 면밀한 검토 끝에 비로소 원고가 완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황당한 실수가 나왔다는 것은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이 그렇게도 강조한 “자랑스러운 우리 현대사”의 일부인 항일 운동사에 대해 무심히도 눈치가 없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대통령의 실언을 두고 비판 여론이 들끓는데도 아직까지 청와대가 이에 대한 사과 발언 한 마디 없이 홈페이지에 슬그머니 수정된 원고만 게시해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그렇게나 주문했던 “올바른 역사의식”에 입각한 비판 여론쯤은 간단히 무시하고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오만함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나 국민에 대해서는 무심히도 눈치 없거나 무시하고 눈치 안보는 정부지만 주변국의 눈치는 차마 안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드 배치의 당위성과 한·미·일 공조체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꽤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다른 자리도 아닌 해방과 독립을 기념하는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렇게 긴 시간 강조하기에는 참으로 민망한 주제였으니 이 정도면 눈치에 더하여 염치마저 없어 보인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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