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희, 김영란, 그리고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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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전략의 미숙과 불통 리더십의 발현으로 국민들은 수년 만에 찾아온 더위와 함께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도 이화여대 사태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느린 민주주의’ 투쟁 방식을 배워야겠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공부한 최경희씨는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 노무현 정부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을 거쳐 현재 이화여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교육 주체와의 소통이나 동의 없이 정부의 일방적 방침을 무리하게 시행하려다가 학생들의 저항으로 결국 항복하고 그 사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투쟁에 참여한 학생들은 처음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최경희 총장의 용납할 수 없는 행태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퇴를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교육부였다. 교육부는 탁상행정이나 학위장사의 의심이 있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제안했고, 학교는 학생 등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관심 있는 학생들과 졸업생들은 SNS로 소통하면서 학교 측과 대화를 요구하고 토론할 것을 제안했으나 묵살당했다. 결국 집단적으로 학교를 방문하고 대화를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가게 됐다.

10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에서 1만여명이 넘는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기남 기자

10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에서 1만여명이 넘는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이화여대 총장의 불통적 리더십
그런데 학교는 대화는커녕 경찰 21개 중대 1600여명을 투입하여 강제진압에 나서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학생들은 분노하여 더욱 강고한 대오로 투쟁의 수위를 높이며, 이러한 사태 뒤에 최경희 총장의 독단적 불통 리더십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학생들이 분노한 것은 학교의 명예와 미래가 달린 중요한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과 정당한 학생들의 문제제기를 경찰을 학내로 불러들여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더욱 화난 것은 독단적 추진이나 경찰 투입 등에 대해 처음에는 늘 부인하며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학교 본관을 점거하면서 본격화된 투쟁에서 투쟁주체들은 특정한 투쟁지도부를 두지 않았다. 모두가 투쟁지도부라 표명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이른바 외부세력으로 오해 받아 순수성의 훼손으로 공격 받을 소지가 있는 연대 단체나 기존 운동가들의 접근을 공식적으로 차단했다. 이것은 이번 싸움의 적절한 전술적 판단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수언론을 앞세운 왜곡선전이나 본질 흐리기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SNS라는 새로운 소통방식을 중심으로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주장과 목표를 분명히함으로써 정당성과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처절하지만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믿음을 산 것이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다. 또 교섭을 하면서도 대표를 통해 하는 옛날 방식이 아니라, 교섭 내용을 전체 회의에 부쳐 서로 이해하고 합의에 이를 때까지 시간을 가지고 충실히 토론한 것이 내부 단결의 요인일 뿐 아니라 확실한 요구사항을 만드는 힘이었다.

스스로 ‘느린 민주주의’라 부르는 새롭고 지혜로운 투쟁방식으로 농성투쟁 사흘 만에 사업을 철회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학생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비민주적이고 반교육적인 사태에 대한 책임을 최경희 총장에게 물어 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외부세력인 경찰을 불러들인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에 비추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 보고 책임을 묻고 있다. 명분으로나 논리로나 타당한 요구로 보인다.

공은 최경희 총장에게 넘어가 있다. 대학의 총장이면 어떻게 하는 것이 대학의 자율성과 이화여대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는 일인지 판단하고 결단해야 할 것 같다. 그것도 시간을 놓치면 결국은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김영란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되었다. 대법관 시절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많은 소수의견을 내기도 했다. 대법관 퇴임 때도 “퇴임 후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고 대법관 경험을 살려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선언해 스스로 전관예우 관행이 만연한 법조계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그 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시절인 2012년에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을 발의했다. 이 법은 2010년 ‘스폰서 검사’와 2011년 ‘벤츠 여검사’ 사건을 계기로, 기존의 법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비리를 막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법이었다. 부처 간의 갈등과 이해충돌 등 우여곡절 끝에 2013년 7월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나, 국회 제출 이후에도 ‘법의 적용 대상이 광범위하고 위헌소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거듭 표류했다. 그러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 문제가 대두되고 부정부패 척결 여론이 높아지자 새롭게 주목받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때는 조속한 법안 처리를 국회에 요구하기도 했다. 국회 정무위 논의 과정에서 원안에 없던 언론사와 사립학교가 포함되고, 이해 충돌 방지 부분이 빠지면서 2015년 3월 국회를 통과했다.

전관예우 거부한 최초의 여성대법관
그 뒤 결국 헌법재판소의 심의까지 거치면서 일부에서 제기한 위헌 소지에 대해 합헌 판결이 나고 이제 곧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도, 김영란씨의 최초 입법 취지에 따라 법이 잘 시행되도록 함께 힘을 모으기는커녕 이해관계에 얽매여 계속 발목을 잡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법의 핵심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공직자 등 이 법으로 정하는 자의 금품 수수를 처벌할 수 있게 했다는 데 있다. 미국이나 영국 등 다른 선진국들도 이미 이와 비슷한 법을 가지고 있다. 또 우리나라가 국가 청렴도 비교에서 아주 낮은 위치에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이러한 법이 절실히 필요했고, 김영란씨는 그것을 법제화해야 하는 책임 있는 자리에서 그 일을 수행한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의 이해당사자인 보수언론이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을 침소봉대하여 흔들기 시작하고, 마치 이 법이 이대로 시행되면 우리나라 농업과 경제는 곧 망할 것처럼 괴담 수준의 악담을 늘어놓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세월호 참사 정국에서의 태도와는 다르게 이 법이 국회에서 재논의되기를 바란다는 식의 반대 의사를 공공연하게 표명함으로써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오히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기가 발의한 이 법의 통과를 위해 해설집을 만들어 국민과 소통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차분히 대응하는 김영란씨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어, 대통령의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박정희를 등에 업고 이명박에 이어 대통령이 된 박근혜씨는 국정 수행능력 부족으로 국민들을 몹시 피곤하고 불안하게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문제를 2년이 넘게 해결하지 못하고 점점 더 어렵게 만들더니, 최근 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싸고 이웃 나라는 물론 세계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외교전략의 미숙과 불통 리더십의 발현으로 국민들은 수년 만에 찾아온 더위와 함께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도 이화여대 사태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느린 민주주의’ 투쟁 방식을 배워야겠다.

이참에 박근혜 대통령도 최경희씨의 길을 걸을 건지 김영란씨를 따라 배울 건지 결단해야 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어떻게 무사히 채울 것인가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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