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건적·냉전적 상상력 대신 민주적인 상상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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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건적 상상력과 냉전적 상상력의 전횡으로 한국 사회는 반생태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비민주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은 가깝다. 미약한 목소리지만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움직임이 조금씩 꿈틀대고 있다.

낡아빠진 두 개의 상상력이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옥죄고 있다. 토건적 상상력과 냉전적 상상력이다. 토건적 상상력은 토건사업을 통해 지역 발전과 경제성장을 도모하겠다는 발상이다. 전쟁 직후의 가난하고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우리나라에서 토건사업을 통한 지역 발전이라는 처방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중앙으로부터 대규모 토건사업을 잘 따오는 정치인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었다. 이런 추세가 오래되자 지역에서는 토건사업을 중심으로 이른바 성장연합을 형성하였다. 토건사업자들, 정치인들, 관료들, 그리고 (주로 토건사업자들이 세운) 지역 언론들을 중심으로 긴밀하게 패거리를 형성한 것이다. 이들은 토건사업을 통한 경제성장의 과실을 서로 나눠가졌다. 하지만 토건사업이 환경을 파괴시키거나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경우 발생하는 고통과 피해는 성장연합에 속하지 않은 평범한 지역 주민들이 감내해야만 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왼쪽 세 번째)와 박창근 교수(왼쪽 두 번째) 등 4대강 조사위원들이 7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4대강 실태조사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정의당 심상정 대표(왼쪽 세 번째)와 박창근 교수(왼쪽 두 번째) 등 4대강 조사위원들이 7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4대강 실태조사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여야를 가리지 않는 토건사업 집착
토건사업에 대한 집착은 여야를 가리지도 않는다. 지난 6월 말, MB의 남자였던 이재오 전 의원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여전히 4대강 사업은 잘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녹조 발생은 4대강 사업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강물 바닥에 산소가 없어지면서 강이 죽어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데도 4대강 사업을 잘한 사업이라고 평가하는 건 대체 무슨 신앙인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추미애 의원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둘러싼 갈등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전북에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하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왔다. 우리나라 지방공항들의 적자 상황, 그리고 바로 옆의 무안공항이나 청주공항과의 중복 문제가 뻔히 눈에 보이는데도 왜 공항 건설에 집착할까? 약 30조원이 들어간 4대강 사업 이후 토건업자들에게 그 정도 규모의 대규모 토건사업이 필요했고, 공항이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공항담론이다. 세계로 향한 관문인 공항을 우리 지역에 만들어야 지역이 발전한다는 담론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지만, 지역주민들의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이용하여 크게 한몫 잡으려는 토건세력들의 부추김이 뒤에 도사리고 있고, 이를 정치인들이 이용하는 것이다. 신기루 쫓기와 다름없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생태와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토건사업에 여전히 집착하도록 만드는 토건적 상상력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갉아먹고 있다.

냉전적 상상력 역시 우리 사회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냉전시대의 산물인 분단 체제가 남한 사회의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제약해 왔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불행한 역사다. 국시(國是)를 반공으로 하고 체제에 대한 비판과 이견은 모두 빨갱이로 몰아붙여서 억압하였다. 비단 정치적 견해만이 아니다. 냉전구도에서 강요되었던 흑백논리와 진영논리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 만연하여 나의 생각이나 견해와 다른 것들을 차별하거나 적대시하게 하였으며,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 소수자의 인권이나 목소리를 폭력적으로 차단하고 억압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중요한 권리들에 대한 관심 확대
잠시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 ‘참여정부’의 동북아시아 조정자론이라는 평화적 해법을 통해 분단체제가 완화되는 듯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수준의 안보의식과 판단력을 소유한 현 정권이 편집증적으로 북핵문제와 대북제재에 매달리고, 사회적 합의나 토론 없이 독단적으로 개성공단 폐쇄, 사드배치 결정 등을 내림으로써 우리의 삶 자체는 한없이 불안정해지고 위험해졌다. 지난 7월 24~25일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해 “한국의 최근 행위가 신뢰를 훼손시켜 유감”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동안 친한(親韓) 노선을 유지했던 중국이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과의 경제적 협력관계를 축소시키거나 제재할 경우 우리 경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사드 배치를 통해 남한의 지배층이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그러나 적어도 북한 지배층을 도와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은 겉으로는 격렬하게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있지만 핵 보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였고, 사드 배치를 계기로 중국·러시아와의 공조관계를 통해 김정은 체제를 공고화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마련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드 후보지로 결정된 성주군은 투쟁에 나섰지만, 현재 진행되는 상황으로 봐서는 승리를 낙관하기 어려워 보인다. 과거와 비슷한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리가 적당히 방패막이를 하고, 이를 구실로 외부세력 개입설, 폭력 시위와 지역이기주의 비난, 괴담 유포 엄벌 등의 여론몰이를 통해 성주군의 투쟁을 고립시키고, 사드 배치에 따른 핵심적인 문제점(안보 위협과 비민주적 결정과정)을 흐릴 것이 분명하다. 용산참사가 그랬고, 밀양 송전탑 투쟁이 그랬으며, 강정 해군기지 투쟁이 그랬고, 세월호 참사가 그러했다. 이런 사회에서 모든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좋은 사회를 만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덕목과 가치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대신 99%의 구성원들을 개·돼지 취급하는 귀족적이고 반민주적인 사고가 독버섯처럼 자라게 된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 사회적 연대를 위한 노력, 바람직하고 인간적이며 민주적인 사회에 대한 상상력 자체가 차단되는 것이다.

결국 토건적 상상력과 냉전적 상상력의 전횡으로 한국 사회는 반생태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비민주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은 가깝다. 미약한 목소리지만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움직임이 조금씩 꿈틀대고 있다.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고, 탈성장이라는 과감한 목표를 제안하는 흐름도 있으며,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들의 인권 보장에 대한 요구와 더불어 주거권, 도시권, 동물권 등 중요하지만 간과되었던 권리들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토건적 상상력과 냉전적 상상력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에, 정확하게는 지배층의 이해관계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익, 국가안보,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집단주의적 목표에 개인이 동원되는 것을 정당화해온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상상력은 독립적이고 책임 있는 개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사회에서 발생하는 편익을 고르게 나눠가질 수 있는 사회를 꿈꾸게 한다. 따지고 보면 사회에서 생산되는 집단활동의 결과물은 사회적 공동 자산을 활용한 것인데, 왜 특정 집단이 그 편익을 독차지 하는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도 개인이 이루는 성과의 90% 이상은 축적된 과학지식이나 사회제도와 같은 사회 자본에 의존하기 때문에 70%의 소득세를 과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기본소득을 시민배당이라고 부르는 것도 쉽게 이해된다. 공유자원의 활용이라는 집단활동의 결과물을 개인들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단순히 소비자로서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허위의식과 욕망을 쫓아서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정치적 주체로서 살아가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모여 더 좋은 사회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또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생태적이면서도 민주적인 상상력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바로 이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상헌 한신대학교 교수·녹색전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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