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국판 미나마타병 ‘가습기살균제병’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가습기살균제 사건도 ‘미나마타병 학’과 같은 방식의 현장실천적이면서 학문연구를 병행하는 접근이 절실히 요구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인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인명피해 살생물제(바이오사이드) 환경참사다. 농업 목적이 아닌 생활 속에서 균이나 해충을 없애고자 할 때 사용하는 살균 또는 살충제를 살생물제라고 한다. 살생물제의 기본 원리는 세포독성이다. 이 화학물질의 기능은 균과 해충의 세포를 파괴시키는 것인데, 사용자인 사람에게도 폐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기에서 세포독성을 일으켜 장기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심지어 목숨까지 앗아간 것이다.

수은 함유 폐수가 어패류 오염시켜
2016년 6월 말까지 신고된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3698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는 701명이다. 6월 한 달 동안에만 1362명(사망 238명)이나 늘어났다. 1994년 제품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부터 실질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된 2012년 6월까지 19년 동안 20종류가 넘는 가습기살균제가 매년 60만개씩 팔렸고, 국민의 20%가량인 1000만명이 사용했다. 가장 많은 피해를 발생시킨 옥시레킷벤키저가 만든 뉴가습기당번의 경우 2001년부터 11년간 400만개를 팔았다. 질병관리본부와 서울대 등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추산해보면 가습기살균제에 고농도로 노출되었거나 건강피해를 경험한 잠재적인 피해자가 적게는 29만명에서 많게는 227만명으로 추산된다. 앞으로 확인하고 찾아내야 할 피해자가 부지기수라는 이야기다.

미나마타병은 1956년 ‘신일본질소비료공장’에서 바다로 버린 폐수에 포함된 수은이 어패류를 오염시켜 수만명의 지역주민들에게 신경독성을 일으키고 사망케 한 대표적인 공해병이다. 미나마타병 희생자 돕기 모임 관계자가 2014년 5월 구마모토현 정부 등을 상대로 낸 피해보상 소송에서 8명 가운데 3명만 승소하자 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재팬타임스 웹사이트 캡처

미나마타병은 1956년 ‘신일본질소비료공장’에서 바다로 버린 폐수에 포함된 수은이 어패류를 오염시켜 수만명의 지역주민들에게 신경독성을 일으키고 사망케 한 대표적인 공해병이다. 미나마타병 희생자 돕기 모임 관계자가 2014년 5월 구마모토현 정부 등을 상대로 낸 피해보상 소송에서 8명 가운데 3명만 승소하자 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재팬타임스 웹사이트 캡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태아부터 80대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에 걸쳐 있고, 특히 3세 전후의 영유아가 전체의 절반이 넘으며 30대 산모가 다음으로 많은 특징을 보인다. 사회가 가장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생물학적 약자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당한 것이다. 피해자가 전국에 산재해 있고 사망률이 매우 높다는 점도 특징이다. 레킷벤키저나 테스코와 같은 유명한 영국기업, 그리고 롯데·SK·삼성·신세계 등 굴지의 국내 대기업이 가해자라는 점도 손꼽히는 이 사건의 특징이다. 산자부, 복지부, 환경부 등 10여개의 정부부처가 직접적인 책임이 있어 국회의 국정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18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지만 새까맣게 몰랐다는 점과 2011년 사건이 알려진 이후에도 5년 동안이나 사회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는 점도 다른 사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피해의 크기와 사회적 파장의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가습기살균제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면 일본의 미나마타병과 독일의 탈리도마이드 사건, 그리고 인도의 보팔참사를 들 수 있다. 미나마타병은 ‘신일본질소비료공장’에서 바다로 버린 폐수에 포함된 수은이 어패류를 오염시켜 수만명의 지역주민들에게 신경독성을 일으키고 사망케 한 대표적인 공해병이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페니실린으로 유명한 독일의 제약회사 그루넨탈이 만들어 판 콘테르간이란 이름의 신경안정제를 먹은 임산부들이 팔과 다리가 없거나 짧은 기형아를 출산한 대표적인 약물중독 사건이다. 탈리도마이드는 콘테르간의 성분물질이다. 두 사건 모두 1만명이 넘는 피해자를 냈고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인도의 보팔참사는 미국의 농약회사 유니언카바이드가 자국의 환경규제를 피하고 노동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도로 공장을 옮겨 가동하다 독극물 탱크가 터져 인근 주민 수천 명을 숨지게 하고 수만 명이 후유증을 앓게 한 대표적인 공해수출 사건이다.

미나마타병과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2차 세계대전 후 1960년대에 전범이자 패전국가인 ‘일본과 독일이 이루어낸 산업화의 어두운 그림자’였다면, 1980년대 인도에서 일어난 보팔참사는 2차 대전의 승전국가인 ‘미국 자본이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한 국제산업화 과정의 어두운 그림자’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난 ‘한강의 기적’이자 ‘새마을 운동’으로, 그리고 ‘민주화의 나라’로 상징되며 세계 개발도상국들에게 모범적인 발전사례로 거론된다는 ‘한국식 산업화가 1990년대와 2010년대에 걸쳐 드리운 짙고 어두운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한국판 미나마타병’, ‘한국판 탈리도마이드 사건’으로 평가될 뿐 아니라, ‘내노라하는 수십 개의 기업들이 수십 년간 만들어 판 생활용품으로 인해 나라 인구의 20%가 넘는 1000만명이 노출되었고, 그 중 20%인 200만명이 잠재적인 피해자인 지구 역사상 초유의 바이오사이드 환경참사’라고 기록될 것이다.

지난 6월 11일은 미나마타병의 원인을 밝혀낸 일본 구마모토대학의 환경의학자 하라다 마사즈미 교수의 4주기였다. 하라다 선생은 의과대학을 다니던 학생 때 미나마타 문제를 접했고, 미나마타 지역에서 아기들이 뇌성마비로 태어난 원인이 산모가 먹은 수은에 오염된 생선을 먹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미나마타병 학’은 태아성 미나마타병을 밝혀내고 평생 피해자의 친구로 살았던 하라다 선생이 구마모토학원대학에 설치해 미나마타병의 발생과 경과 및 해결과정과 의미, 그리고 교훈을 여러 학문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연구하는 미나마타병 연구센터의 이름이다. ‘미나마타병 학’은 미나마타 현지에 센터를 운영하며 피해자를 치료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하면서 학문적인 연구를 계속하는 ‘현장 실천과 학문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도 ‘미나마타병 학’과 같은 방식의 현장실천적이면서 학문연구를 병행하는 접근이 절실히 요구된다.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피해질환의 발생부위와 기전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인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이 엄청난 사건의 발생 배경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떤 사회적 교훈을 얻어야 하고, 어떻게 제도적·문화적으로 반영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의식을 지속적이고 철저하게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립 가습기살균제 피해 조사연구센터’와 같은 기구를 세워져야 하고,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산모에게서 태어난 뇌성마비 아이들과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살아가야 하는 피해 아이들, 그리고 폐이식을 받고 겨우 살아난 피해자들의 일생을 같이하면서 의학적·사회적으로 지원하고 조사연구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의무다.

살균제 피해 조사연구센터 설립해야
한국에서는 이제 ‘공해’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환경문제’라는 말이 사용된다. 건강피해문제도 ‘공해병’이라고 하지 않고 ‘환경성 질환’이라고 한다. 기후변화나 해양오염과 같은 지구적 차원의 환경문제가 중요해진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는 변화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 문제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본식 용어인 ‘공해병’이나 ‘공해수출’이란 말이 적절한 경우도 있는데, 가습기살균제의 경우도 그런 측면이 있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안종주 박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문제를 ‘미나마타병’과 같은 방식으로 하여 ‘가습기살균제병’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오랜 기자생활을 한 바 있고 사건의 초기부터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추적해 지속적으로 글을 써서 사회에 알려오고 있는 그는 많은 환경문제를 다뤄온 경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려면 사건을 부르는 이름이 잘 지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초기에는 ‘원인미상 폐손상 사건’ 또는 ‘특발성 간질성 폐렴’으로 불리다가 ‘가습기살균제 폐손상 사건’이라고 표현되었다. 하지만 폐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신체 장기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 밝혀져 가고 있기 때문에 특정 신체부위에만 국한해서 이름지어지는 흐름은 바뀌게 될 것이다. 지금은 사건의 진행과정에 있어 사회적인 용어로서 ‘옥시 사건’ 또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라고 불리는데, 의학적으로나 국제적으로는 ‘가습기살균제병’이란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10년 전인 2006년에 미나마타병 50주년을 맞아 구마모토 대학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면서 처음으로 미나마타 현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만난 태아성 미타마타병 남녀 환자 두 분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50세 가까운 나이였는데, 남성환자는 평생을 휠체어에서 살았고 여성환자는 입이 삐뚤어지고 침을 흘리는 심각한 뇌성마비환자로서 살아온 피해자들이었다. 당시 나는 인도 보팔에서 온 활동가와 함께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심포지엄 참석자들과 논의하여 미나마타병을 일으킨 칙소공장 앞에서 시위를 조직했다. 예의 그 여성환자는 시위대열을 힘겹게 따라왔고, 공장 측이 시위대를 막아서자 공장 앞의 다리 난간을 붙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들은 정말 나쁘다. 반성을 하지 않는다”라고….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환경보건학 박사)>

최예용의 환경보건이야기 ‘환경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