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습기, 정수기 등은 환경정책 실패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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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해법은 살균제를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가습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정수기 니켈사건의 해법은 니켈을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연이어 불거지고 있는 정수기의 니켈오염사건과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에 사용되는 항균필터의 OIT살균제 오염사건은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어 문제가 된 일을 계기로 밝혀지고 있는 사건들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이들 세 가지 가전제품들은 그 자체로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모두 가정과 실내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이다. 둘째, 삶의 질을 높이고 편리함을 위해 사용되는 물건들이다. 정수기는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서, 공기청정기는 맑은 공기로 숨쉬기 위해서, 그리고 가습기는 방안에 습기를 공급해 감기에 잘 걸리지 않고 숨을 편하게 쉬기 위해서다. 셋째는 이들 세 가지 사건 모두 그 분야에서 아주 유명한 국내 대기업과 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만들고 팔았다.

그리고 이들 세 가전제품이 일으킨 문제들에도 몇 가지의 유사한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더 좋은 제품과 더 나은 기능을 위해 사용한 부품 또는 물품으로 인해 발생했다. 정수기의 경우 물을 정수하는 기능을 넘어 얼음을 얼리는 기능이 추가되었고, 부품을 니켈로 도금했다가 문제가 생겼다. 공기정화기와 에어컨의 항균필터는 먼지를 걸러주는 필터기능에다 항균기능을 추가했다가 살균물질이 쉽게 떨어져나와 문제가 되었다. 가습기살균제는 습기를 만들어내는 물통을 살균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된 물건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편리함을 추구했고 얻었지만 더 중요한 생명과 건강을 잃고 위협받는 결과를 낳았다. 세 번째 공통점은 제품의 사용자가 수백만에서 수천만 명으로 엄청나게 많고, 피해자도 그에 비례해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 번째 공통점은 가정을 구성하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피해자들이지만 어린이와 산모와 같이 생물학적으로 약자이면서 가정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들이 더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다섯 번째로 제조회사들이 제품의 안전과 환경문제를 도외시해 제조과정에서 문제를 파악해내지 못했고, 소비자들이 오염물질에 노출되어 건강피해를 입게 됨으로써 문제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홍정섭 환경부 화학물질정책과장이 7월 26일 옥틸이소티아졸렌(OIT) 함유량이 높은 공기청정기 필터 4종과 차량용 필터 3종에 대한 초기 위해성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환경부는 “90일 반복흡입 독성실험에 의한 무영향관찰농도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흡입독성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홍정섭 환경부 화학물질정책과장이 7월 26일 옥틸이소티아졸렌(OIT) 함유량이 높은 공기청정기 필터 4종과 차량용 필터 3종에 대한 초기 위해성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환경부는 “90일 반복흡입 독성실험에 의한 무영향관찰농도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흡입독성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판매, 왜 한국에서만?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터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면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은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데 왜 국제적인 뉴스로 잘 다뤄지지 않는 걸까 하는 점이다. 이 의문에 대해 가능한 설명은 가습기살균제라는 제품을 한국에서만 만들고 한국사람들만 사용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국제언론이 이 문제를 잘 다루지 않는 것이라는 정도다. 정말 그런가 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는 영국의 저명한 생활용품기업 레킷벤키저가 만들어 팔았고, 홈플러스 PB상품은 영국에서 제일 큰 슈퍼마켓 기업인 테스코가 한국의 삼성과 공동으로 운영할 때 만든 제품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판매했다는 세퓨라는 제품의 원료는 덴마크에서 수입된 것이고, 엔위드라는 알약제품은 아일랜드에서 수입했다. 코스트코는 미국 회사이고 다이소는 일본 브랜드다. 한국에서만 만들고 팔았다고 하지만 사실상 7~8개의 외국 기업들이 관여된 국제적인 사건인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 옥시 본사가 있는 영국으로 항의방문을 갔다가 알게 된 사실은 가습기라는 물건을 한국사람들만 유독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방문했던 나라들인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 사람들은 가습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필자가 만났던 사람들은 자신들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가습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아마도 환자가 있는 병원 같은 곳과 같이 특수한 경우에는 사용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는 정도였다. 가습기라는 물건을 사용하게 되는 배경이 기후와 날씨, 그리고 주택의 실내조건과 그러한 가전제품을 만들고 소비하는 사회·경제적 수준일 것이다. 그런 배경이라면 유럽과 미국 쪽에서도 우리와 비슷하게 사용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당혹스러웠다. 가습기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데 가습기살균제라는 물건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공기정화기와 정수기도 마찬가지로 별로 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크게 사회문제화되면서 사람들과 언론들이 유사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주변의 생활용품들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정수기 니켈문제와 공기정화기와 에어컨의 독성필터 문제가 터져나왔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매우 유사했다.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는 몇 차례의 기회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가습기는 살균제가 문제고, 정수기는 니켈도금이 문제고, 공기정화기와 에어컨은 항균필터의 OIT라는 살균성분이 문제야 하는 생각 자체가 틀렸다고. 사실은 가습기가 문제였고 정수기가 문제였고 공기정화기와 에어컨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을 떠나 유럽 나라들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 보고 그쪽 사람들의 삶 속에는 이런 물건들이 전혀 또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비로소 인식하게 된 변화다.

상수도 수질 좋으면 정수기 필요 없어
이런 생각을 하며 이들 세 가지 가전제품의 공통점을 다르게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첫 번째는 이들 가전제품이라는 게 환경정책과 환경운동 실패의 산물이라고 여겨졌다. 정수기는 상수원 오염과 상수도 수질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사람들이 대안으로 택한 결과다. 정수기 안에 물이 고이면 오히려 더 안 좋다고 해도 사람들은 소독냄새가 나고 녹물이 나오는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다. 공기정화기는 요근래 몇 년 사이에 미세먼지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면서 사용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한반도 스모그의 발생 원인이 중국 탓이라고 하며 미세먼지를 내뿜는 경유승용차와 경유택시를 도입했다. 여기에 폭스바겐 사태까지 터졌지만 대충 넘어가려 했다. 사실은 현대자동차가 만들어 팔고 있는 경유차들도 폭스바겐과 마찬가지로 미세먼지를 다량 내뿜지만 ‘기술결함’이란 변명으로 가려졌다. 공기정화기의 사용 확산은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나타난 정책 실패와 환경운동 실패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가습기의 경우 정책의 실패라는 측면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보다 쾌적한 실내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바람에다 왜곡된 의료문화가 결부된 물품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이들 제품이 정책과 운동이 실패하고 사람들이 무언가 대책을 필요로 하는 지점을 기업들이 파고들어 상품화하고 마케팅한 결과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올바른 환경정책이 취해지고 환경운동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제고시켰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물건들이 바로 정수기요 공기정화기요 가습기라는 것이다.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에 모범적인 모델이라고 여겨진다는 한국식 발전모델과 한국식 산업화의 어두운 그림자와 헛헛한 민낯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사실은 그 책임의 범주에 들어갈 실패한 환경운동을 해온 사람이기에 무안한 생각도 든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해결책이 독성이 약하거나 없는 살균성분을 사용하는 게 아닌 것처럼 공기정화기와 에어컨의 독성필터사건의 해결책은 OIT가 아닌 안전한 살균성분을 사용하고 초기에 살균제가 떨어져 나오지 않도록 단단하게 만든 필터를 만드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수기의 경우도 니켈과 같은 유해중금속을 사용하지 않고 떨어져 나와도 해가 없는 물질을 사용하거나 잘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도금하는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보지 못하니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인 방법들만을 생각할 뿐이다.

사설이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해법은 살균제를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가습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정수기 니켈사건의 해법은 니켈을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공기정화기 OIT 독성필터 사건의 해법은 OIT 필터를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공기정화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따위 물건들을 사용하지 않고 치워버리기 위해서는 올바른 환경정책과 치열한 환경운동으로 환경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환경보건학 박사)>

최예용의 환경보건이야기 ‘환경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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