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모의 분화 역할 지나고 ‘양성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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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기에 심리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남성의 여성화’와 ‘여성의 남성화’이다. 젊었을 때는 ‘수줍던 아내’가 중년이 되면서 ‘무서운 호랑이’로 변하고, 반면에 남자는 중년이 되면서 ‘수줍은 처녀’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권위자 한성열 고려대 교수와 심리상담전문가 서송희 ‘만남과 풀림’(종합상담기관) 대표 부부가 매주 번갈아 집필합니다. 아래 위 세대에 낀 중년의 고민을 이론과 실제 측면에서, 때로는 남성과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나갑니다. 독자들의 고민도 반영하오니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 필자들의 이메일로 의견을 주시면 됩니다.

중년에 나타나는 재미있는 특징 중 하나는 남성은 여성적으로, 여성은 남성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풍미하고 15대 국회의원까지 지낸 왕년의 인기가수 최희준씨가 부른 ‘엄처시하’의 노랫말에 ‘열아홉 처녀 때는 수줍던 그 아내가… 눈 밑에 잔주름이 늘어가니까 무서운 호랑이로 변했네…’라는 구절이 있다. 바로 중년 남성의 이 실토가 중년이 되면서 남자는 순해지고 여자는 오히려 강해지는 변화를 재미있게 노래하고 있다.

19살 처녀 때는 수줍던 여성이 왜 눈가에 주름이 늘어가는 중년이 되면 호랑이로 변하는지 남자들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왜 남자들은 주름이 늘어가는 부인이 무서워지는 것일까? 중년의 남편은 부인이 샤워하는 소리만 들어도 주눅이 든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이것은 단지 성적인 측면에서만 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진짜 이유는 중년에 남녀가 서로 변하기 때문이다.

중년은 지금까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을 떳떳이 할 수 있는 시기다. 자녀 양육과 남편 내조 등 가정 사정으로 정규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친 만학도들이 학력인정학교 졸업식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중년은 지금까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을 떳떳이 할 수 있는 시기다. 자녀 양육과 남편 내조 등 가정 사정으로 정규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친 만학도들이 학력인정학교 졸업식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호랑이 아내’로 ‘수줍은 남편’으로
태어날 때는 외모나 행동에서 남녀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다. 발달 과정에서도 아동기까지 그 차이가 크지 않다. 오히려 아동기에는 여아들이 남아들보다 체격이 더 크고 더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 발달이 빨라진 요즘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교실에 가면 여학생들이 누나처럼 보인다. 사실 어린이들은 양성적이다. 즉 남성적인 특성과 여성적인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양성적이던 어린이의 특징은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변하기 시작한다. 청소년기는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변화하는 시기이다. 신체적으로 어린이와 어른은 생식(生殖) 능력, 즉 애를 낳을 수 있는지의 여부로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남자애는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몸으로 변하고, 여자애는 어머니가 될 수 있는 몸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신체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를 ‘제2차 성징(性徵)’이라고 부른다. 남자애보다 여자애의 변화가 더 뚜렷하다. 이 변화 중에서도 가장 분명한 변화가 여자애에게 나타나는 ‘생리(生理)’의 시작이다. 남자애에게도 여자애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몽정(夢精)’을 하는 등 부모가 될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난다.

중년에도 큰 변화가 있다. 우선 신체적으로 여성이 더 이상 출산할 필요가 적어진다. 중년 이후에 임신을 하는 경우 산모와 태아의 건강이 염려가 된다. 출산 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어린이를 양육하기 어려워진다. 이제는 자신이 직접 출산을 하기보다는 손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식에 필요한 생리를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폐경(閉經)’을 하게 된다. 남자의 경우에도 여자만큼 현저한 생리적 변화가 오지는 않지만 서서히 신체적인 활력이 떨어지고 운동력이 감소한다. 지금까지 어린 자식을 양육하고 가족을 지키는 의무가 줄어들면서 신체 활동량이 줄어든다. 지금까지 가장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막대한 에너지가 점차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중년기에는 심리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남성의 여성화’와 ‘여성의 남성화’이다. 남성은 여성적인 면이 점점 더 많이 더 나타나는 반면에 여성은 점점 남성적이 되어 간다. 즉 젊었을 때는 ‘수줍던 아내’가 중년이 되면서 ‘무서운 호랑이’로 변하는 것이다. 반면에 젊어서는 모든 면에서 자신만만하고 활동적이던 남자는 ‘무서운 호랑이’에서 중년이 되면서 정서적이고 소극적인 ‘수줍은 처녀’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 남자와 여자에게 있어서 중년은 삶의 ‘대역전’이 일어나는 시기인 것이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부모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살면서 제일 중요한 일은 부모가 되는 일이다. 즉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여 대를 잇는 것이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의 변화가 근본적으로 생식(生殖)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이미 말했다. 그렇다면 어른이 되는 것은 심리적으로는 남자는 아버지의 역할을, 여자는 어머니의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발달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역할은 적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고 밖에서 먹을 것을 마련해오는 것이다. 그 역할을 잘하기 위해 남자들은 경쟁적이고 투쟁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하게 된다. 남자들만이 모여 있는 조직에서는 겉으로는 서로 친한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고 전투적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다른 남자는 자신의 가정을 침입하고 아내와 자녀를 약탈하려는 ‘잠재적 적(敵)’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자들은 가정에서 살림을 하고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역할이다. 가정의 평화를 유지해야 하므로 여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협조적이고 타협적이 되도록 교육받는다. 말을 못하는 갓난애를 양육하여야 하기 때문에 감정적 표현에 민감하고, 공격적이기보다는 용서하고 돌보는 성향이 더욱 강해진다.

그동안 못한 일들에 대한 열망 커져
부모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남자들은 여성적인 면을 억압하고 남성적인 면이 더 조장된다. 반면에 여성들은 여성적인 면을 더 드러내고 남성적인 면은 억압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 자녀들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기 위해 부모의 품을 떠나게 된다. 더 이상 삶에서 부모의 역할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모든 잠재력이 잘 실현되도록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된다. 따라서 중년에는 지금까지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일들을 하고 싶은 열망이 강해진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삶의 여정은 남녀가 비슷하게 태어났다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각각의 성역할에 맞게 분화되어 청년기에 그 차이가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다가 중년기를 거치면서 더 이상 분화된 역할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지게 됨에 따라 다시 비슷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정확히 말하면, 중년에는 다시 양성화(兩性化)가 되는 것이다.

중년은 지금까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시기이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1950년 작가가 되려고 국문과에 입학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제대로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채 1953년 결혼하였다. 그리고 곧 이어 태어난 1남4녀의 자녀들을 키우느라 소설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중년의 나이인 40세 때 장편소설 <나목>으로 등단하여 “중년 여성의 섬세하고도 현실적인 감각”으로 주옥같은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한국 문학사에 우뚝 솟은 높은 봉우리로 존경받고 있다.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한 직업공무원은 중년에 이르러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을 그리기 위해 퇴근 후에는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다. 자녀 양육과 남편 내조에 힘쓰며 살아온 한 주부는 오랫동안 혼자 마음속에 품어온 꿈을 실현하기 위해 40대 후반에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며 만학도의 길을 즐겁게 가고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청소년기를 ‘사춘기(思春期)’라고 한다면, 중년기는 ‘사추기(思秋期)’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공통점이 많이 있다. 두 시기 다 생각(思)이 많은 시기이다.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syhan@korea.ac.kr>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권위자 한성열 고려대 교수와 심리상담전문가 서송희 ‘만남과 풀림’(종합상담기관) 대표 부부가 매주 번갈아 집필합니다. 아래 위 세대에 낀 중년의 고민을 이론과 실제 측면에서, 때로는 남성과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갑니다. 독자들의 고민도 반영하오니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필자들의 이메일로 의견을 주시면 됩니다.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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