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유산으로 남긴 명화의 상속세는 얼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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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반추하면 그리움이 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쇠락해가는 유럽을 반추하면서 낭만적이었던 시절을 추억한다. 호텔 이름에 ‘부다페스트’를 붙인 것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한 향수다. 로비 보이의 여자친구인 ‘아가사’는 영국 여류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를, 부호인 ‘마담D’는 오스트리아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속 여인과 닮았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알프스 자락에 있는 최고급 호텔이다. 이 호텔 지배인 구스타프는 ‘마담 D’와 19년째 연인이다. 1932년 어느 날, 마담D는 구스타프를 찾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죽는다. 그녀는 죽기 전 유언을 통해 구스타프에게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남긴다. 값비싼 집안의 보물을 잃게 된 마담D의 아들 드미트리는 구스타프가 마담 D를 죽였다는 누명을 씌운다. 감옥에 갖힌 구스타프는 탈옥에 성공하고, 마담D가 남긴 두 번째 유언장을 찾아낸다. 유언장에는 “내가 살해될 때 개봉하라”고 적혀 있다.

마담D가 남긴 첫 유언장에는 “구스타프에게 ‘사과를 든 소년’을 주며, 여기에 드는 세금도 면제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명화를 주면서 상속세도 대신 내주겠다는 말이다. 상속세란 죽은 사람의 재산을 물려받을 때 내는 세금이다. 마담D의 유언을 들은 가족과 친지들은 “세금까지 대신 내줘?”라며 놀란다. 도대체 상속세가 얼마길래 그럴까? ‘사과를 든 소년’의 그림가격이 100억원이라고 가정하자. 만약 지금 국내에서 상속된다면 상속세율 50%가 적용돼 50억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구스타프는 가족이나 친척이 아니어서 공제를 받지도 못한다. 마담D는 명화와 함께 엄청난 돈도 함께 구스타프에게 남긴 셈이다. 그러니 친지들이 ‘헉’할 수밖에 없다.

[영화 속 경제]<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유산으로 남긴 명화의 상속세는 얼마일까

상속세는 부의 재분배와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라는 점에서 세율이 높다. 상속세가 부과되는 상속자산에는 망자의 사망 당시 재산뿐 아니라 10년 동안 사전 증여한 재산, 생명보험금, 퇴직금, 사망 전 2년 이내에 처분해 인출한 재산이 일정 규모 이상이면서 그 자금의 사용처를 못 밝히는 재산도 포함된다. 하지만 공제가 많아 아내와 자식이 있다면 실질적으로 10억원까지는 과세가 되지 않는다. 아내와 자녀는 각 5억원씩 공제가 된다. 그밖에 영농공제, 가업상속공제, 금융재산상속공제, 동거주택공제 등 개인이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각종 공제가 많다.

상속세가 우리나라에 첫 도입된 때는 1950년이다. 증여세도 이 때 만들어졌다. 미국의 상속세는 1861년 남북전쟁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득세와 함께 법률로 제정됐다. 미국 역사를 보면 상속세는 폐지됐다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태국은 올해 2월부터 상속세를 부과하고 있다. 극심한 빈부격차로 사회갈등이 심해지자 상속세 도입을 추진했지만 입법까지는 10년이 걸렸다.

현재까지 국내 최다 상속세는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유가족이 낸 1388억원이다. 또 고 설원량 대한전선 전 회장의 유족들도 1355억원을 납부했다. 하지만 이 기록은 조만간 깨질 가능성이 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약 11조원의 상속을 받을 경우 6조원가량을 상속세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전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을 때 썼던 공익재단을 이용한 편법상속이나 차명자산 넘겨받기는 사회여론상 어려워 보인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을 물려받으면서 고작 181억원의 상속세만 냈다.

마담D의 최종유언서에는 자신의 대저택, 무기·직물 등을 만들던 공장,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을 모두 구스타프에게 줄 것을 밝히고 있다. 현행 독일의 상속세율은 64%다. 만약 지금 상속을 받는다면 구스타프가 내야 할 상속세도 천문학적인 액수가 됐을 것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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