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손관승…꿈의 폐활량을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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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아무도 모르게 칼스바트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바로 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품에 안고 책에 나온 여정을 따라 프랑크푸르트에서 렌터카를 타고 7000㎞를 달렸다.

30년간의 직장생활이 갑자기 끝나고 혼자가 되었을 때였다. 익숙했던 것들은 낯선 타자가 되었고, 앞은 캄캄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었고, 퇴직 무렵 첫째는 대학생, 둘째는 고1이었다. 정신적 에너지는 다 타버렸으며, 작동 불능 상태에 다다른 ‘번 아웃’ 증후군에 시달렸다. 어느 날 아침, 길을 떠나기로 했다. 수첩이 든 작은 가방 하나를 메고 집을 나섰다. 50대 중반 남자의 갑작스런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MBC 베를린 특파원과 국제부장을 거쳐, iMBC 대표이사를 역임한 손관승의 이야기다.

콘텐츠 기업의 CEO로서 세계 각국에 미디어 콘텐츠를 수출하다가 갑자기 집 외에는 갈 곳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는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그림형제의 길> 두 권의 책을 펴내며 작가가 되었다.

손관승은 2014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길을 나섰다.

손관승은 2014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길을 나섰다.

체코 칼스바트의 강가와 보헤미안 숲을 걷고, 오스트리아의 한복판을 가르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 구석구석을 걷는 대장정. 누구나 꿈꾸지만 용기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노력하는 인간은 방황하게 마련이다.’ 누구보다 꿈의 폐활량이 컸으며, 누구보다 상처를 많이 받았던 괴테가 던지는 따뜻한 응원가랍니다. 아픔이 많은 이들에게 이보다 더 진한 위로의 말이 있을까요. 고독하게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이에게 이보다 더 큰 용기를 주는 말이 또 있을까요. 괴테가 그랬듯 저도 여행을 통해서 다시 태어났어요. 누군가 남모를 상처로 아파하고 있다면, 그래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더 나아가 찬란하게 돌아오고 싶다면 여행을 권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천재로서의 괴테가 아닌, ‘상처투성이’ 괴테가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 멘토가 되어준 거군요.
“나는 꿈꾸는 여행자로서의 괴테를 봤어요. 엄숙한 성인의 모습이 아닌, 우리와 똑같이 실수하고 웃고 상처받는 보통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왔죠. 어설픈 힐링이 아니라, 난관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라고 권하는 게 괴테였거든요. 내가 고민하고 궁금했던 것을 괴테는 200년 전에 먼저 궁금해 했고, 내가 앓았던 열병을 먼저 앓았던 사람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다가옵니다. 생전에 자기 에너지를 완전히 연소시킨 사람입니다. 요즘 사표(師表)로 삼을 만한 사람이 드문 세상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나와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독문학을 했지만, 실제로 그들에 대한 진한 관심이 생긴 것은 독일 연수를 떠난 1994년 이후부터죠. 괴테는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며 보편적 가치를 추구했던 인간이죠. 호기심과 열정에 있어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해요. 청년 시절 <이탈리아 기행>을 읽은 후 나의 버킷 리스트에는 항상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의 족적을 따라가 보는 여행이 들어있었어요.”

괴테 못지않게 ‘꿈의 폐활량’이 컸기 때문에 아직 ‘학생’인 아이들을 두고(웃음) 긴 여행을 떠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너는 옛날에 미쳤거나 지금 미쳐 있다!’ 이탈리아 여행길에서 괴테가 한 말인데요, 가정도 내 꿈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미쳐 있던 게 ‘옛날’의 나였어요. 30년 동안 기자생활과 대표이사로 지내면서 내일을 위해 오늘을 유보하며 살았던 거죠. 긴장과 격무, 피곤에 지쳐서 ‘번 아웃’ 증상에 노출되어 있는 것도 몰랐죠. 여의도를 떠나서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아무도 길을 가르쳐 주지 않고 로드맵도 없죠. 절박한 심정에서 내 심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요. 괴테처럼 몸도 마음도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오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거죠.”

여행에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을 텐데요.
“나폴리가 전환점이었어요. 거기서 인생의 타이어를 갈아 끼웠죠.(웃음)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진입하는데, 옆 차선의 운전자가 경적을 울려요. 자동차 뒷 타이어 하나가 폭삭 주저앉은 거예요. 범죄가 들끓는 나폴리의 으슥한 외곽, 영어도 거의 통하지 않는 곳에서 기계에 관한 한 완전히 백치인 제가 얼마나 막막했겠어요? 겨우 스페어타이어로 교체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는데, 뭔가 이상해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자동차 매뉴얼’을 찾아 보니 ‘저속으로만 사용하고 절대로 고속도로를 달려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는 거예요. 계속 고속도로를 달렸다면 끔찍한 사고가 날 수도 있었겠죠.”

고장 난 내 인생에 임시방편 처방을 하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큰 일 나는 거네요.
“‘조급증’이라는 타이어를 버리고, ‘여유와 유머’라는 이름의 타이어로 교체하기로 했죠.(웃음) 위기는 말없이 찾아와요. 자동차도 그렇고 인생도 그래요. 당황하면 더 큰 사고를 당할 수 있어요. 어쩌면 회사를 그만둔 뒤, 나의 모습은 폭삭 주저앉은 타이어 같았는지도 모르죠.(웃음) 누가 일부러 날카로운 것으로 찔렀든, 나의 실수로 그랬든 상관없어요. 남 탓 할 일이 아니죠. 나는 이제 CEO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죠. 겸손하게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거죠. 나폴리에서 나는 인생의 타이어를 갈아 끼웠고, 그건 여행이 준 최고의 선물이었어요.”

지난해 베를린 한국 문화원에서 열린 한류 콘텐츠에 대한 특강을 마치고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지난해 베를린 한국 문화원에서 열린 한류 콘텐츠에 대한 특강을 마치고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너무 빨리 퇴직을 권하는 사회에서 50대 중반 남성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갑자기 변화된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을 것 같아요.
“퇴직하면 변화된 본인의 사회적 위상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그냥 목소리 듣고 싶고, 보고 싶어서 전화했더니, ‘용건이…? 요즘 조금 바쁩니다. 제가 조만간 꼭 전화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 돌아오죠. 이런 경우 백발백중 연락이 없어요.(웃음) ‘조만간 전화하겠다’는 말은 곧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효용가치가 끝났다는 뜻이죠. 대안 없이 바쁘다는 말은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이거든요. 참 곤혹스러웠죠. 하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것은 과거 ‘나의 얼굴’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겨내야 해요. ‘두고 봐라!’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면 답이 없어요. 그 사람과의 인연이 여기까지구나,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울화병이 생기지 않아요.”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부터 해야겠군요.
“화를 다스리는 것, 앵거 매니지먼트가 중요한 것 같아요. 상대방은 변하지 않았는데, 본인의 자격지심 때문에 그런 경우도 적지 않아요. 공연히 전화를 꺼리게 되고…. 약속을 하고도 깜빡하면 서너 달이 훌쩍 지나갈 거예요. 상대방은 현직에 있으니까 늘 바쁜 게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아마 저도 그런 실수를 자주 했을 겁니다.”

경력이 화려한 사람은 퇴직 후에 편안한 노년을 준비할 것 같았습니다. ‘번 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중년 남성들이 많은 줄 몰랐어요.
“한국 중년 남성들 상당수는 우울증을 앓고 있어요. 상대적 박탈감이죠. 어느 날 스스로를 쳐다보니 아무도 자기 자신에게는 관심 없고 ‘월급 기계’로 취급되는 현실에 자괴감이 드는 거죠. 육체적으로 소진되었고, 정신적·심리적으로도 지친 겁니다. 이게 바로 가장 위험한 번 아웃 증상, 미국에서는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정신적 공황을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혼자 있는 연습, 그것이 ‘번 아웃’ 극복의 첫걸음입니다. 한국의 중년들은 원인과 해답을 바깥에서 찾는 습관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죠. 나와 만나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와 정직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때로는 혼자 밥 먹고, 혼자 차도 마시고, 혼자 산책도 하고…. 떼 지어서 등산하고, 떼 지어 술 마시고, 떼 지어 여행하지 말고, 정직하게 나를 만나는 것이 우선이에요. 가장 무서운 것은 사회도 아니고, 마누라도 아니고, 자기 자신입니다.”

지난 1월 MBC에서 ‘인생 위기와 여행‘에 대한 강연을 했다.

지난 1월 MBC에서 ‘인생 위기와 여행‘에 대한 강연을 했다.

‘일 중독’에 가까울 만큼 자신을 다 태우며 일하던 사람이어서 정신적 공황을 심하게 겪었을 것이라고 주변 분들도 예측하더군요.
“가장 큰 문제는 ‘성취 중독증’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중독은 많지요. 도박, 알코올….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가장 큰 중독은 ‘성취 중독’, ‘사회관계의 중독’입니다. 하루라도 약속 없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 수첩 일정표에 단 하루라도 비어 있으면 답답해하는 사람들, 퇴직 후 충격이 더 크지요. 정직하게 내 위치를 받아들이고, 한 호흡 쉬면서 쉬는 시간이 필요해요.”

지금은 대학 강의도 많이 하시고, 작가로서 제2의 삶을 멋지게 개척한 모델이 되셨어요.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시점에 서 있는 중년들은 어떤 준비를 미리 하는 게 좋을까요.
“옛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의 길을 끝까지 가 보아야 새로운 길이 보인다.’ 즉 자기의 직업과 일에 전력하다 보면 새로운 일도 생긴다는 뜻이죠. 퇴직 전 제2의 인생 설계는 쉽지도 않고, 자칫 오해받을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자기가 하고 있는 현재의 일을 진정 좋아하고 사랑하고 전력을 다하는 게 우선인 것 같습니다. 일에 대한 노하우, 정보, 인간관계 등은 저절로 따라오겠죠. 이런 것을 가리켜 무형자산이라고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퇴직 이후는 전혀 다른 문법이 작동되니까요. 다만, 시장이 원하는 형태로 무형자산을 바꿔주어야 하는데, 시장이 원하는 형태로 바꿀 줄 아는 감각과 촉매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죠. 그리고 혹시 당신이 갑(甲)의 위치에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면, 수시로 을(乙)이 되는 연습을 해두어야 합니다. 제2의 인생은 무슨 일을 하든, 대부분 을의 입장에 서게 될 테니까.”

꿈의 폐활량을 키우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두려움이 줄어들 것 같아요.
“‘나만의 노트’를 만들 것을 권합니다. 갑자기 출근할 곳이 없어졌을 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서가를 둘러보니 나의 노트 12권이 눈에 들어왔어요. 12라는 숫자는 많은 것을 의미하죠.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고 돌아왔을 때, ‘미신불사’ 미천한 신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나에게는 12척의 배가 아직 남아있다고 말했지요. 그건 용기와 희망을 얘기하는 겁니다. 12권의 노트는 재임 당시에 모든 경험과 깨달음을 기록한 것이었어요. 저 수첩의 기록을 어떻게 잘 활용할까. 나의 기록을 토대로 새롭게 열릴 내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을 토대로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쓰게 된 거죠.”

꿈의 폐활량이 큰 사람은 12권의 내 이야기를 들고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는군요. 제2의 인생이 펼쳐질 망망대해에 열두 척의 배를 띄우게 되는 것이로군요.
“맞아요. 우린 모두 나이 걱정을 하죠.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를 뿐. 나이의 무게는 누구나 무겁죠. 하지만 발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나이는 ‘나의 이야기가 풍요로워지는 시기’라고요. 제가 대학생과 일반인 대상으로 미디어와 스토리텔링 강의를 해보면요, 요즘은 나이 불문하고 누구나 글을 쓰려는 열망이 강해요. 저는 ‘파워 스토리텔링’을 강조해요. 줄여서 ‘파스텔’.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거지요. 독일인들은 ‘당신의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여 달라. 그러면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하죠. 저도 가끔 수업이 끝나면 수강생들에게 가방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 달라고 합니다. 최근 강의에선 5명이 보여줬어요. 뭐가 있었을까? 5명 다 노트를 꺼냈어요. 글을 적거나 그림이 그려져 있었어요. 노트는 꿈을 이야기하는 거지요. 누구에게나 희망과 열정이 가슴에 있어요. 직원들과 헤어지던 날, 그들이 제게 작은 배낭을 선물해줬어요. 이 속에 꿈을 담아달라고요. 가방을 비워서 떠나는 습관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행을 떠날 때 가득 채워서 떠나면 돌아올 때 채워올 게 없어요. 빈 가방의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손관승이 서재에서 작가를 꿈꾸게 한 노트를 들고 있다.

손관승이 서재에서 작가를 꿈꾸게 한 노트를 들고 있다.

나의 이야기를 풍요롭게 하는 시기, 앞으로는 어떻게 보낼 계획이신가요.
“나는 기자생활을 오래해서 3인칭 인생에 익숙한 사람이에요. 3인칭 인생에서 1인칭 인생으로 옮겨오려면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보여주어야 하죠. 용기가 필요하지만 저에게는 중요한 얘깁니다. 실패한 이야기, 실수한 이야기, 오만했던 시절, 방황했던 이야기 등 나만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진솔하게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담아내도록 노력해야죠. 정보와 교양을 독자들과 시청자들에게 나만의 눈으로 선별해 제공하는, 지식과 문화의 큐레이터가 되고 싶어요. 또 한 가지는 직장인들의 컨설턴트가 되는 것이에요. 대부분 직장인들이 ‘때려치우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말하죠. 나는 내 능력에 벅차게 관찰자도 했고 책임자도 수행해 봤으니, 직장인의 로망을 잘 담아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후회되는 일이 있습니까.
“나의 성과를 위해 때로는 상대방의 입장을 무시, 혹은 경시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죠. 배려심 없이 무심코 던졌던 말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독화살이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 찔려 있을 겁니다. 기자를 하면서 공익을 위해 했다고 하지만, 가끔은 불필요하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던 일들…. 요즘 ‘언론중재위원’으로 일하면서 새삼 거울로 자신을 비춰봅니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행복해요.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내니까요. 글을 쓰고, 강연하고, 알고 싶은 것에 최대한 시간을 내는 시간들이니까요. 행복의 가치가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엔 돈과 사회적 지위라는 가치를 자유와 맞바꿨으니까. 괴테가 나폴리에서 했던 말이 바로 지금 내 심정이에요. ‘너는 옛날에 미쳤거나, 아니면 지금 미쳐 있구나!’”

지금 이 순간, 가장 아름답게 자기 인생에 미쳐 있는 사람 손관승.

독일에는 ‘동화’라는 말로 번역되는 ‘메르헨’ 길이 있다. 하나우에서 슈타이나우, 마르부르크, 괴팅겐, 하멜른, 브레멘까지 그림 동화의 배경을 따라가는 600㎞에 이르는 환상적인 여행길이다. 그는 이 길을 걸으며 고대와 중세의 신비한 문학세계를 찾아 떠난 시간 탐험가이자 동화 수집 학자였던 ‘그림 형제’ 야코프 그림, 빌헬름 그림 두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는 책 <그림 형제의 길>을 최근에 펴냈다. 그는 여행이 끝날 무렵, 베를린의 장크트 마테우스 교회 묘지에서 그림 형제의 목소리를 듣는다. “너의 발밑을 파라! 그 밑에 보물이 있다!”

오늘도 걸어왔던 길을 자신의 색깔로 다시 갈고 닦는 글을 쓰느라 바쁜 작가 손관승. 남이 걷지 않은 나만의 길을 갈 때, 보물은 바로 그곳에 있다는 말을, 그를 통해서 믿게 되었다. 나도 빈 노트를 한 권 가방에 넣고, 길을 떠나야겠다.

<박상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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