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대한민국이 아직 망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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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아직도 망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의인 열 명이 어디선가 희생적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의로운 삶이란 무슨 대단한 삶이 아니다. 자기 삶을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지는 지극히 상식적인 삶이다.

우리의 삶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은 두말이 필요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동체의 특성 중 하나는 자기 선택권이 약하다는 것이다. 태어나면서 자기도 모르게 어느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만족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국가공동체도 그렇다. 대체로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나라의 보호도 받고 평안하겠지만, 시리아나 아프리카 등 전쟁 중이거나 지리적 여건 등으로 가난한 나라에 태어난 사람들은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 자기 나라를 탈출해 스스로 난민이 되기도 한다.

지구촌 아시아의 동쪽 끝 한반도에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동안 조상들이 잘 가꾸어온 결과 여러 면에서 세계 10위권의 괜찮은 나라다. 그런데 요 몇 년 사이에 그 사회의 현실과 미래를 가늠하는 여러 지표가 아주 안 좋게 나오더니 드디어 작년에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특히 그 사회의 중추인 청년과 노동자의 삶이 모든 걸 포기해야 될 정도로 악화되면서 절망상태에 빠져버렸다. 민주공화국으로서 그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나라 살림살이를 정치인과 공무원에게 맡겨 꾸려가도록 위임했고, 위임 받은 자들은 반드시 주인의 뜻에 따라 국민들이 잘살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결과가 이렇게 혹독한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통치권을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는 과정에서부터 주인인 국민을 속였다. 거짓 공약으로 속였고, 국가기관을 선거에 개입시켜 부정선거로 속였다. 그렇게 권력을 잡은 후에도 그 권력을 악용하여 오히려 국민을 탄압하며 자신이나 자기 패거리를 위해 써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2015년 12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성과평가해고제 간담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청사 정문 앞에서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들이 이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2015년 12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성과평가해고제 간담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청사 정문 앞에서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들이 이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나와 관련이 있는 교육과 노동 분야도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먼저 교육 쪽을 살펴보면, 초·중등 교육을 장악하기 위해 견제세력인 전교조를 불법으로 몰아 노조 밖으로 쫓아내려고 한다거나, 대학을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 대학 성원들의 총장 선출권을 빼앗아 간다거나, 사립학교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를 어용화하여 부정·비리 사학들을 온존시키는 작태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지금 억지로 추진되고 있는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 가족감정까지 결부되면서 독재를 미화하고 나라의 정통성까지 훼손하는 일을 벌이고 있어 대다수 국민이 극심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유아부터 유치원 교육까지를 감당하는 누리과정도 공약과 다르게 재정부담을 교육청으로 떠넘김으로써 지방교육자치의 혼란과 예산의 심각한 손실을 야기시키고 있다.

노동 분야는 더 심각하다. 집권 초기부터 국가경제의 어려움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노동운동을 범죄시하며, 정치적 파트너인 민주노총이나 전교조를 반국가단체 수준으로 공격하며 몰아붙였다. 법원에서 계속해서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시행규칙으로 헌법 사항인 ‘노조 아님’을 통보한다거나, 확실치도 않은 수배 노동자의 검거를 빌미로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을 군홧발로 짓밟는가 하면, 신고사항인 집회가 불법의 소지가 있었다는 핑계로 총연맹과 산하 조직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감행하는 등 국민의 상식과 법감정에 위배되는 과도한 국가권력의 횡포를 공공연하게 저질렀다.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태도도 그랬다. 민주노총은 NGO, 즉 비정부 국가기구다. 민주노조의 총결집체로 그 상대가 중앙정부인 것은 국민의 상식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개인이 아니라 70만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에 의해 선출되어 그들을 대표하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교섭이나 대화의 상대는 총리나 대통령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그만한 예우와 성실한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어떤가? 민주노총의 간곡한 대화 요구는 무시하고, 도로교통법 등으로 잡범 취급하여 수배자로 만들어 꼼짝 못하게 하더니, 위력적인 집회가 이루어지자 그걸 빌미로 대대적인 검거를 단행했다. 어쩔 수 없이 긴박한 업무 수행을 위해 임시로 피신한 종교시설에서 그 한 사람을 검거하기 위해 조계사 일대의 교통을 마비시키면서 수천의 경찰을 동원하는가 하면, 심지어 소요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아무리 봐도 이것은 엄청난 국가권력의 남용이요 횡포다.

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마음은 더 답답하기만 하다. 어느 한 구석 나아질 것 같은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이 남은 겨울이 두렵고, 어쩌면 봄이 오지 못할 것 같은 절망감이 숨 막히게 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나라인가’ 하며 한탄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에게 정녕 희망은 있는가?

광화문 광장 작은 천막 속 농민과 노동자
희망은 그것을 만드는 힘이 필요하다. 작은 초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초가 녹아야 하고, 호롱불을 밝히기 위해서는 기름이 타야 한다. 희생이야말로 힘의 원천이고, 희생만이 희망을 만들어 낸다. 우리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다면, 아직도 우리 주변에 정의나 공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는 부패가 만연했지만, 결국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했다. 헬조선 우리나라가 아직도 망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의인 열 명이 어디선가 희생적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의로운 삶이란 무슨 대단한 삶이 아니다. 자기 삶을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지는 지극히 상식적인 삶이다. 그 당연한 삶을 특별하게 여기게 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불의한 상황과 조건 때문이다.

오랜 법적 싸움을 통해 불법파견이 인정되고, 그 당사자는 복직시키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이행하지 않는 데 항의하여 복직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행위다. 오히려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사측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것이어서 당연히 싸우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불법파견 노동자들은 그 상식적 요구를 시청앞 전광판 위에서 이 엄동설한에 지금도 하고 있다. 정당한 파업에 대한 위장폐업에 맞서 5년간이나 해고된 상태로 싸우고 있는 유성기업이나 상신브레이크, KEC 노동자들은 자기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대고 수백억대의 손해배상 요구를 하고, 그것을 법원이 인정하는 이 현실 앞에서 그냥 싸울 수밖에 없어 오늘도 농성장으로, 길거리로 돌아다니고 있다. 이런 손배가압류 사업장이 22개나 되고 그 액수만도 1300억원이 넘는다는데, 이게 정상이고 상식인가를 그들은 묻고 있다.

잘못된 농업정책 때문에 지을수록 빚만 느는 농사에 항의하는 농민을 정부는 살인 물대포로 공격하고 있고,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비정규직 양산을 노동개혁이라 하며 국민을 속이고, 대통령이란 자가 연일 국회를 겁박하며 악담을 퍼붓고 있다. 거기에 맞서 농민들과 노동자들은 작은 천막을 치고 싸우고 있다. 그 천막에서 새해를 맞고 있는 그들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다. 광화문 광장이나 광화문 지하도, 국회의사당 앞과 새누리당 당사 앞을 비롯하여 이 나라 곳곳에는 인간다운 삶과 사회 정의를 위해 자기 몸을 태우며 희생의 불을 밝히고 있는 의인들이 오늘도 강추위 속에 밤을 지새우고 있다.
단언컨대 이런 의인 10명이 있는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는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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